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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공부를 무지막지하게 많이 시키던 학교였는데 방학 때도 보충수업이니 해서 학교를 줄창 나가야 했었다. 물론 지금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황금같은 일주일간의 시간을 얻게 되서 친구들하고 어떻게 하면 보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일단 참가인원은 나를 포함해서 남자친구 넷, 여자친구 둘이었고 장소는 속초와 강릉 중간쯤에 있는 죽도라는 해수욕장이었다. 속초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죽도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깐, 누군가 "야, 우리 텐트 어디있냐?" 하고 외치는 소리. 아뿔싸! 넘 들뜬 기분에 버스 제일 뒷자리에 실어 놓은 텐트 두 개를 그냥 놓고 내렸던 거다.
우리가 속초에서 탔던 버스는 제천까지 가는 버스였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냥 돌아와야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친구놈 한 명과 피같은 회비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쫓아가서(물론 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있는대로 밟아 달라고해서) 터미널에서 간신히 버스를 잡아서 텐트를 건졌다. 올때는 돈을 아낀다고 버스를 잡아타고 죽도까지 돌아왔는데 왠걸 애들이 안보이는 거다. 그때 죽도 버스정류장 옆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그 파출소에서 친구 한 놈이 나오며 "야, 들어와" 하는 거다. 상황파악이 안 된 상태로 파출소에 들어가니 친구들과 경찰 아저씨들이 화기애애하게 미소지으며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닌가?
사연을 들어보니 학생들이 남녀 혼성으로 놀러온 것이 문제가 되어 파출소까지 끌려갔는데 마침 파출소장님이 고등학교 선배여서 이번 한 번은 특별히 눈감아 주는 데다가 의경 중에 또 학교 선배가 있어 그 선배에게 우리의 편의를 봐주라는 엄명까지 내려 놓은 상태였다. 처음엔 이게 왠 떡이냐고 쾌재를 부르며 텐트도 공짜로 치고 각종 편의시설도 무료로 이용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은 놈들이라고 노래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모아온 회비도 다 쓰고 돌아가기 전날 모두들 배고픔에 기타고 노래고 귀찮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방송에서 '속초에서 오신 카이사르씨! 속초에서 오신 카이사르씨! 지금 방송실로 와주세요'하는 멘트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첨엔 애들이 막 깨울 때는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됐지만 방송실로 뛰어 가면서는 혹시 선생님들이 단속 나와서 잡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막상 방송실에 가니 세째누나랑 매형이랑 환하게 웃으며 '너희들 여기로 놀러 왔단 얘기 듣고 맛있는 거 사주러 왔다' 하는 거다. (그 때 둘은 연애하는 사이라 아마 우리 핑계대고 데이트하러 왔지 싶다) 어쨌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텐트로 돌아와서 배터지게 맛난거 얻어 먹었다. 술 빼 놓고는 팔방미인인 매형은 뭐든지 척척이었고 특히 빼어난 수영솜씨로 본의아니게 같이간 여친들의 넋을 빼서 우리들의 원성까지 사곤했다. 갈 때는 용돈까지 듬뿍 쥐어주며 잘 놀다 오라고 했던 그런 매형이었다.
누나가 결혼하고 매형 집안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매형과 누나도 미국으로 떠났다.
내가 미국에 공부합네하고 갔을 때도(매형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물심양면으로 날 챙겨줬던 매형이었다. 누나에게 한소리씩 듣고 집앞에 쭈구리고 앉아서 같이 담배 피며 누나 흉을 봤던 매형이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한국에 올 때마다 누나 몰래 뭉치돈을 쥐어주며 어머니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했던 정많은 매형이었다.
그런 매형이 돌아가셨단다. 식도암으로 고생하다 가셨다. 쉰여섯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가셨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엄마 아버지 비행기표 끊어 드리고 장례식에 참석 시켜 드리는 일밖에 없다. 먹고 살아야 해서 그동안 까먹은 돈이 많아서 일을 팽개치고 훌쩍 다녀올 입장도 못된다. 떨어져 살다 보니 돌아 가셨다해도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다.
술을 진탕 먹고 잘려고 누웠더니 자꾸 매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마땅하게 상대를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주절주절 썼다.
매형!
이제 편안하시죠? 이제는 아프지 않죠? 아픈 데도 운동해야한다는 누나한테 쌍욕을 하며 성질을 부렸다죠? 점잖은 분의 입에서 그런 얘기까지 나왔다는 얘기 듣고 저 좀 울었답니다. 어차피 가야할 곳인데 조금 일찍 가셔서 그게 좀 아쉬워요. 어차피 가셨으니 물 좋은 곳으로 물색 해 놓세요.자리 잘 잡고 계셔야 저도 갔을 때 매형 빽 믿고 좀 편하게 적응하죠. 옛날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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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