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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국 법이 채택하고 있는 기소독점주의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어떤 범법 사실에 대해서 기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은 오로지 검찰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과 일본의 법을 모방한 한국에만 존재하는 검찰의 엄청난 권능이다. 그러나 언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 시절에는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그들의 권리가 그것을 기술해 놓은 법전에 쌓인 먼지만큼이나 하찮은 것이었다. 범법자들에게는 저승사자보다 두려운 존재인 그들도 정권에 거슬리는 짓을 했다가는 다른 기관에 끌려가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계와 마찬가지로 그 시절 지조 있는 검사들은 자의 또는 타의로 모두 떠나고 독재 권력의 주구로 살기를 마다하지 않은 자들만이 남아서 검찰 조직을 꾸려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어 민주화와 함께 독재 권력이 사라지고 법치를 신조로 삼는 정부가 들어서자 살아남은 자들로 이루어진 이 조직은 감당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법률상 권력을 통째로 떠안게 되었다.
대통령은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권력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이 진정으로 검찰조직에 원한 것은 그들의 충성과 정권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 내지는 청산하고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집권 초부터 수시로 그 취지를 밝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자신의 측근에 대한 배려 없는 수사도 달게 받아들임으로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해 주기까지 했다.
김인철은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그러한 기대가 난망한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검찰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의 면면은 독재권력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정의감이 부족하고 비굴한 성품의 소유자들일 확률이 높았다. 또한 독재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많은 구태의 불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많을 것이었다. 현 검찰총장인 송강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이 수뇌부를 구성하는 조직이 국가와 정의만을 위하는 기관으로 스스로 변화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인적쇄신이 개혁의 핵심이라고 그는 진즉 결론짓고 있었다.
그렇다고 검찰조직 내에 정의로운 사람의 씨가 아주 말라버린 것은 아니었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고자하는 사람들 중에 운 좋게도 정권과 마찰할 기회를 만나지 않아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에 옳고 그름이 바로서는 때가 왔다한들 검찰조직 내의 주류에서 이미 밀려난 상태인 그들은 여전히 아웃사이더 일수 밖에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에는 독재정부 시절부터 형성된 검찰 내부 권력의 견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서울 법대 출신에 사법 연수원 수석 졸업자로서 그럭저럭 동기생들과 엇비슷하게 진급은 하였으나 한직으로만 돌다가 작년 말 인사이동시 제주 지검장으로 간 한영관이 그런 사람이었다.
오전 나절에는 입질이 좋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잔챙이와 잡어들 열 두어 마리는 도로 놓아주고도 팔뚝만한 감성돔을 일곱 마리나 챙겼다.
시간제 파출부이면서 마음을 내어 음식은 물론 홀아비살림까지 챙겨주는 송이 엄마가 무척이나 좋아할 것이었다.
서귀포 근처에서도 이만한 바위 낚시 명당자리는 없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거의 사십분 정도를 꼬불꼬불한 들과 산을 질러야 나타나는, 바위가 많고 인적이 없는 장소이다. 해안선에서 오백 미터쯤 되는 곳에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들이 줄지어 있어서 물살이 세지 않아 고기가 모인다. 그는 제주 지검장으로 온 이래 지난 1년 동안 낚싯대를 차에 싣고 제주시에서 두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모든 해변을 탐색한 끝에 이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닿는 길이 험해서 그런지 근처에 사는 어부들 외에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을 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곳이 더욱 좋았다.
처와 2남 1녀를 서울에 두고 온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거의 이곳에서 혼자 보내곤 한다. 몇 달 전에 차도 오프로드용 SUV로 바꾸었고 그 이후로는 가끔 차를 이용해서 야영을 하기도 했다. 부하 직원들이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따라오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직업 탓인지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했으므로 혼자가 오히려 편했다. 그는 물고기와 씨름하기도 하고 낚싯대를 드리운 채 사색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입질이 뜸해지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일어나 낚싯대를 묶어놓고 차로 가서는 뒤 트렁크를 열어 칼, 도마, 머그 컵 크기의 알루미늄 술잔, 얼음이 들은 보온병, 초장, 와사비, 간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술 - 공항 면세점에서 미화 30불이면 살 수 있는 보통 양주 조니워커 블랙이었다. - 을 꺼냈다.
별로 애국적이지 않지만 그는 외국산 양주만을 마셨다.
대부분의 다른 모범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소주 네 잔을 받아 마시고 그는 기절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한데 혼자만 기절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충격을 받았지만 빈속에 술을 마셔서 생긴 현상으로 치부하고 다시 도전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다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전한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세잔 만에 그날 먹은 모든 음식물을 게워내야 했다. 그 후 막걸리, 맥주, 동동주, 매실주, 술이란 술은 모두 도전해 보았지만 그 어느 종류의 술도 그의 몸은 받아주지 않았다. 단 양주는 지레 도전해 볼 엄두를 못 내어 입에 대어보지도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도록 그는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사가 되어 첫 출근을 한 날 신임들에 대한 환영회식 자리는 술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선배 검사들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음주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유쾌하게 취해가는 동료들을 보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묘한 소외감을 처음 느꼈었다. 아무튼 술에 알딸딸하게 취하여 신경이 이완된 상태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은 그에게 있어서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을 뻔했다.
그런 그가 술을 알게 된 건 1985년 처음으로 맡은 사건 때문이었다.
그의 첫 임무는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시국사건을 맡은 한 부장 검사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전국 단위의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그와 같은 또래 나이의 늦깎이 대학생들이 피의자였다. 그의 판단에 법률적으로 자질구레한 몇 가지 실정법을 위반하기는 했어도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하여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로서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되는 그들에게, 간첩 혐의와 국가전복 혐의를 덮어씌우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조작될 범법의 내용과 구형할 형량에 이르기까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그의 상사인 부장검사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의 의도를 좇아 일을 진행했다. 그는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검사가 되어 악인을 벌주고 약자를 보호하여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부도덕한 권력의 도구가 된다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열등감을 안기부에 대해서는 굴욕감을 느꼈다. 갈등 끝에 그는 작업을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를 지휘하는 부장검사는 즉시 그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퇴근 무렵 먼발치로만 본적이 있는 서울지검장이 그를 불렀다. 그는 지적인 용모의 삼십대 여자가 운영하는 단출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단골 술집으로 한영관을 데리고 갔다. 그때 그가 주문한 술이 조니 워커 블랙라벨이었다. 한영관은 마시고 죽자는 심정으로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마신 즉시 상대방에게 술을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마셔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알고 싶어 하던 알코올의 힘에 의해 두뇌가 이완됨으로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양주가 몸에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술에 알맞게 취한 상태에서 술의 기운을 빌어 하늘같이 높은 상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둘이서 한 병을 다 비웠을 때 지검장은 말했었다.
“자네 자신에 대해서 회의하지 말게. 자네에게 징계를 하는 조직이 틀렸고 자네가 옳다는 것은 내가 보장 하겠네. 비록 나도 자네에게 징계를 주는데 가담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일세. 제발 그만두지 말게. 우리 검찰 조직을 위해서 부탁하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왔을 때 이 검찰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조직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이 안에 몇이라도 남아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자네 같은 의인들이 다 도태되고 쓰레기들만 남아있는 검찰 조직이 좋은 세상이 와서 법대로의 권력을 찾게 되면 어찌될 것 같은가?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새로운 악의 괴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많네. 나는 이 자리에서 퇴임 시 까지 자네 같은 의인이 도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을 할 것이야. 사표를 도로거두고 가벼운 징계를 받아들이게. 그런 다음 한직으로 발령 날 걸세. 가능하면 튀는 자리, 튀는 일을 피하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때를 기다리게.”
지검장의 말은 그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생생할 정도로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하늘처럼 어려운 지검장을 지도교수처럼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준 술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었다.
그는 그때부터 외국산 스카치위스키만을 즐기는 애주가가 되었다.
그는 꺼내온 것들을 자리위에 펼쳐놓은 다음 물가로 갔다. 물에 담가놓은 어망 속에서 생포된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듯 절망적으로 퍼덕거리는 놈들 중 가장 작은 놈을 한 놈 꺼내었다. 잘 벼려놓은 칼로 아가미를 딴 후 훑어서 피를 뽑아내었다. 죽인 즉시 피를 잘 뽑아내야 비린내가 없고 육질이 쫄깃해 진다. 그런 다음 그는 최대한 살점이 반듯한 모양으로 보존되도록 회를 떴다. 몇 년 전 낚싯배 선주에게서 처음 배운 솜씨지만 지금은 자못 능숙하다. 그는 알루미늄 잔에 얼음을 대 여섯 개 넣고 컵의 절반 쯤 위스키를 따랐다. 습관대로 그는 허공을 향해 잔을 부딪친 후 한 모금을 마셨다. 불처럼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익숙하고도 짜릿한 쾌감이 목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왔다.
그가 마음속으로 잔을 부딪친 생전의 지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불행히도 그는 검찰 조직에서 청춘을 보내는 동안 존경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딱 한사람 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지검장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그가 말하던 좋은 세상이 오자 그가 예언 한 대로 검찰 조직은 스스로 권력집단화 하여 그들의 집단 이익에 반하는 개혁에 교묘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검찰 조직에는 쓰레기들만 남아서 손쓸 수 없이 썩어버린 것일까? 한영관은 조직 내의 아웃사이더로 떠돌고 있었지만 아직 꿈을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가 세 모금 째를 허공에 부딪쳤을 때 뒤쪽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돌아보았다. 거기에 옅은 갈색의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세련되고 캐주얼한 옷차림에 흰색이 약간씩 골고루 섞인 잘 정돈된 머리를 한 성공한 기업인의 풍모였다. 리조트를 개발할 토지를 보러 왔다가 짬을 내어 해변을 찾아서 이곳까지 온 것이리라. 그러나 먼발치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감색 정장에 짙은 색안경을 낀 사내를 보자 자신의 추측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의 연령대나 얼굴로 봐서 위해를 가하려는 자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먼저 다가온 사람이 선글라스를 벗고 석양에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잠시 방해를 해야 될 것 같군요.”
“설마 나를 찾아오신 건 아닐 테고.........”
“왜 아니겠습니까? 한영관씨를 찾아서 온 해변을 헤맸습니다.”
“한영관이라......”
자신의 이름이 무척 생소하게 들리는 한편 지검장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른 이 사람에게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검사가 된 이후 남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의 말에 놀라서 하마터면 술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저는 대통령 특별보좌관 김인철입니다. 저 사람은 국정원 사정국장 서석준이고요. 대통령님의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25년간 기다려왔던 사람이 이제 막 도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통령이 그에게 전갈을 보낸다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는 추호도 의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 국정원 요원으로 소개된 사람이 처음 나왔을 때의 이동전화처럼 생긴 커다란 전화기를 들고 왔다. 도청방지 보안장치가 탑재된 위성 전화기였다. 서석준이 열 몇 개의 버튼을 누른 후 신호음이 들리자 전화기를 김인철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기다리자 저쪽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형 수고 많소. 나요."
"대통령님 한영관 제주지검장과 함께 있습니다. 통화를 하시지요."
"그럽시다. 그분을 바꿔주세요."
김인철이 전화기를 한영관에게 넘기자 그는 무척 무거운 물건을 받듯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서 귀에 대고 말했다.
"제주지검장 한영관입니다."
"대통령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전화로 처음 인사를 나누지만 저는 한 지검장님 뒷조사를 하도 해서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하하. 한 지검장님에게 참 어렵고도 중요한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검찰을 바로세우는 일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김인철씨가 알려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곧 나라고 생각하고 모든 사항을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 같이 합시다. 아니 참 양주만 마신다지요. 내 양주로 준비하지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낸 후 수화기를 서석준에게 건넨 후 한영관은 두 사람에게 술잔부터 권했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은 정권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에 대한 집착이 아예 없었던 데다 자신을 향한 그들의 호의와 기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뜻이 맞는지 가늠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속에 야릇한 흥분이 일었다. 결과가 어찌되든 오늘 밤 두 사람의 술친구가 생겼으니 그것만 해도 횡재였다.
"이리 와서 일단 술이나 한잔 합시다. 얼마나 권력에 가까이 있는 분들인지는 모르지만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감성돔을 안주로 마셔보지는 못했을 거요."
김인철과 서석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양하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권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울 뻔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과 파도 철썩대는 바다가 더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서 그들은 대학 시절로 돌아가 야영을 하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친구 사이처럼 열정과 진심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담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살아온 길, 인생의 경험을 차례로 이야기 했으며 조국이 겪었던 변혁의 고비 고비에서 각자가 처해있던 위치와 처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비슷한 연배의 그들은 공감하는 바가 많았으며 정치적인 성향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체로 일치했다. 그리고 김인철은 적절한 시점을 찾아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검찰개혁의 목표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각자의 역할 및 일정에 대해서 의논했다. 밤이 지나기 전에 만주로, 일본으로, 조선으로 헤어져서 떠나야하는 독립투사나 된 듯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동안에 해야 할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자리에서 그들은 엄청난 크기의 동지애와 신뢰를 쌓았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이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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