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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청사 주차장에 차를 세운 김용호는 차에서 내리기 전 양복 안주머니의 엠피쓰리 녹음 장치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자신을 고양이 앞에 끌려온 생쥐쯤으로 여기는 백성일 검사의 의심을 살 염려는 추호도 없었다.
그는 제이피 창업 멤버로서 상품담당이사로 재직 중이던 1년 전에 한 상황버섯 납품업자로부터 3억 원을 받아 착복한 사건으로 이미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이었다. 물론 주수천이 납품 대금을 부풀려서 뒤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그가 착복한 돈이 그것 뿐 일리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수많은 회사 측의 약점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그냥 쫓겨나오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두 달 전 제이피 사태가 터지자 현직도 아닌 그가 몸을 피한 주수천보다도 먼저 구속되었다.
일주일간의 혹독한 취조 과정에 그의 입에서 학습지 ‘저스트’를 납품한 회사의 대표이며 이재선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형부로 둔 강정아의 이름이 나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사하는 검사의 태도가 부드러워 졌고 그는 즉시 보석처리 되었다. 검사는 그에게 그가 강정아와의 거래에서 납품 대금을 부풀리고 부풀려 진 액수만큼 그의 요구로 강정아가 이재선에게 전달했다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죄가 가볍게 처리될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거듭 조사를 받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이미 기소되어 보석 상태에 있는 그가 청와대 비서관을 엮어 넣자고 자신이 새로 만들어 낸 죄로 추가 기소를 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검사가 그 자신에게만 선처를 하려고 해도 형평성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구형을 해야 할 것인데 양형은 판사의 몫이므로 형이 더 가벼워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 불확실한 이득 때문에 자신과 좋은 관계인 강정아와 얼굴도 모르는 청와대 비서관을 모함하여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는 청와대 사람이 아닌가? 처음에 그가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백성일은 절대로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는 두 달 동안을 검찰 청사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버텼으나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가 들어서자 백성일은 그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반겼다.
“어서 오시오. 자 오늘은 결말을 내야지?”
“..................”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요. 도와줘, 깨끗하게........”
“깨끗하게 도와줘요?”
“응, 도와줘.”
“어떻게요?”
“벌써 몇 번이나 말했잖아. 당신이 제이피에 있을 때 납품업자 강정아에게 제품 대금을 부풀려서 청구한 다음 이재선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그리고 강정아로 부터 돈을 전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액수는 한 3억으로 하고. 그렇게만 말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해. 아주 쉽잖아.”
“그렇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죠.”
“잘못됐든 어쨌든.........”
“그건 아니죠.”
“그래? 야, 김용호! 좀 더 강하게 해야 듣겠구만, 응? 말로 해선 잘 안 들어. 그렇게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 사이가 멀어지잖아.”
“저 혼자서 거짓으로 자백한다고 될 일도 아니잖아요?”
“이건 김용호씨 진술이 아주 절대적이거든, 사건의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연결고리 아니에요, 둘 사이에........, 그러니까 해결해 줘야지. 김용호가 나자빠지면 해결이 안나.”
“상대방이 위증을 증명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입증해요? 입증할 방법이 없잖아요. 본인이 그렇다는데.”
“그래서 제가 거짓말을 하라고요?”
“거짓말 하고 법원에 가서도 거짓말 하세요. 이것은 그게 실체에 맞아, 거짓말이든 뭐든.”
“..............”
그가 대답이 없자 그는 수사 보조를 불렀다.
“강 주사 그런 내용으로 심문 조서 작성해. 김용호가 오늘 서명하고 끝내게. ‘저는 사실 피해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스트 납품과 관련하여 강정아로 부터 한 푼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김용호 유리하게 이런 말도 넣어.”
강주사라 불린 사람이 조서를 작성하는 사이에 그는 서랍에서 손톱깎이를 꺼내었다. 그는 책상에 걸터앉아 손톱을 깎으면서 말을 이었다. 김영호의 엠피쓰리에는 ‘딱 딱’하는 손톱 깎는 소리도 녹음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씨는 깨끗하게 희생타 날리면 되는 거야.”
“그러면 양형은 어떻게 할 거죠?”
“최대한 약하게 가야지, 2년?”
“그게 약한 겁니까?”
“2년이면 약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선고유예 정도로 만들어야지. 그렇게 안하면 당신 최소한 실형 2년 이상이야.”
“그리고 나중에 말 바꾸면 안 돼. 괜히 무슨 뭐 검사가 진술을 강요했네, 그런 소리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김용호를 믿고 하는 건데, 그러면 우리가 적이 되는 거지 뭐.”
잠시 후 강주사가 작성이 끝난 조서를 뽑아서 그에게 내밀자 조서를 훑어본 그가 김용호를 향해 다시 말했다.
“됐군, 이거 하나 서명하고 가면 되겠어.”
“시간을 주세요.”
“뭘 더 생각하겠다는 거야? 못 하겠다 이거야? 희생타를 날리라니까!”
“................”
그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양해를 구하는 동작을 보이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박 사장? 어쩐 일이신가? 아 통화 괜찮아.”
“...................”
“무슨 사건?”
“.....................”
“쯧쯧 꼬리를 잡혔구먼.”
“......................”
“그 정도면 유능한 변호사만 선임하면 무난히 해결될 거야.”
“....................”
“변호사 선임과 관리 3원칙 몰라?”
“..................”
“반드시 연고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갖다 바르고, 탬버린을 흔들어야 한다. 이거 몰라?”
“..................”
“이사람 완전히 숙맥이군, 뭘 갖다 바르겠어? 돈이지, 탬버린? 룸살롱도 몰라? 그것도 인간관계니까 술로 시작해야지. 상대방이 만족을 느낄 만큼 좋은데서.”
“...................”
“아, 있지. 그야 내가 소개하면 확실하지, 잠깐만.......”
그는 전화기를 손바닥으로 막은 다음 김용호를 향해 말했다.
“김용호, 내일 와서 서명해. 어차피 서명하지 않고는 못 배겨. 시간 끌면 손해야.”
밀을 마친 그는 김영호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김영호는 검사실을 나와 곧바로 자신의 승용차로 가서 차 문을 잠그고 엠피쓰리의 녹음 상태를 확인했다. 녹음은 완벽했다.
김용호로부터 녹취록을 건네받은 강정아는 검찰총장 앞으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녹취록 사본과 함께 올렸다. 그런데 검찰총장은 강정아의 탄원서와 녹취록을 동부지검으로 다시 내려 보내 처리하라고 하였다. 동부지검에서 녹취록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자 기겁한 강정아는 녹취록을 방송국으로 가져갔고 그 내용은 뉴스 시간에 방영되었다. 그것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검찰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그들은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당사자인 백성일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으려하였다. 그리고 나서도 여론이 멈추지 않고 들끓자 꼬리를 자르듯 동부지검장 박민규가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옛날 독재정부 시절 그 무섭다던 중앙정보부 요원들도 오금을 저려야만 했다는 청와대 비서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던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조용히 덮어졌다.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이 등신이어서 그렇다고 수군거렸다.
주수천과 그의 측근 몇 명이 사기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정작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로비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김용호를 포함하여 뇌물과 로비 혐의로 잡혀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찰로부터 뺨을 맞은 격인 청와대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수사를 촉구하는 언론도 더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건은 검찰 조직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려고 노력했던 대통령에게는 커다란 뉘우침을 주었고 검찰 개혁을 준비하고 있던 한영관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품고 있던 한 가닥의 가책마저 날려버렸다. 당연히 그들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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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