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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피 사건
새천년의 초에 설립된 다단계회사인 주식회사 제이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여, 설립한지 불과 3년이 지나자 매출액 3조원에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굴지의 중견그룹이 되어있었다. 사기 전과가 있는 회장 주수천의 기상천외한 회원 모집 방법 덕분이었다.
사기적인 수법에 말려들어 회사 성장의 밑거름으로 희생된 5만 여명의 회원들의 원성 때문에 제이피와 주수천의 이름은 세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급기야는 국정원의 내사를 부르기에 이른다.
5국장 최수용 이름으로 작성되어 청와대에 보고된 보고서에는 그들이 저지른 갖가지 불법행위들과 그 불법행위들을 무마하기위해서 정관계에 뿌려진 엄청난 규모의 로비자금 등 의 자세한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기발한 로비의 방법과 광범위하고도 전 방위적인 로비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정부 각 부처와 검찰, 경찰, 사법부, 정치권, 언론계, 시민단체 인사들의 가족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특혜수당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수사의 방패막이로 나서도록 하는 한편 그들을 로비의 연결통로로 활용했다.
그들을 통해 뿌려진 뇌물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인사들의 명단에는 검사, 판사, 경찰 간부, 공정위 간부, 언론사 간부 등 70여명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해 7월 25일 청와대 제4 회의실에서는 제이피 사건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민정수석인 문정인이 주재하고 참석자는 검찰에서 파견 나온 이재선 사정담당 비서관, 국정원에서 파견 나온 이춘호 민정비서관, 국정원 5국장 최수용, 그리고 서석준과 김인철이었다. 이례적으로 서석준과 김인철이 참석한 것은 그들의 당면 관심처인 검찰과 관련된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30여 분 간의 열띤 논의를 마칠 즈음 문정인은 생각난 듯 최수용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최국장, 어찌된 일이요? 우리가 받은 보고서 내용이 왜 시사 잡지에 한자도 안 틀리게 실린 거요?”
“글쎄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부서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청와대에서 빠진 건 아닐까요?”
“나 참, 청와대에서 그 보고서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나와 이 비서관 그리고 대통령님뿐입니다.”
“그러시다면 저희 쪽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최수용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조사하겠습니다.”
국정원 내부의 일을 조사할 권한을 가진 사정국을 맡고 있는 서석준이 말했다. 서석준은 정작 최수용을 의심하고 있었다.
“국정원이 아직 청정지역이 아닌가 보구려.”
문정인이 서석준에게 시선을 주면서 뼈있는 농담을 했다.
“죄송합니다.”
국정원에 정보도둑이 아직 있다면 자신의 책임이라 느낀 서석준이 대답했다.
“최 국장, 검찰에서 효율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협조하세요.”
문 수석이 최수용에게 다짐하듯 말하자 최수용이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예, 저는 준비가 되었는데 검찰에서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 사건은 곪을 대로 곪아서 터지기 직전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댄 것인데 검찰은 우리가 쓸데없이 벌집을 쑤셨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검찰이 청와대 눈치를 안보니 참......... 살다 살다.........”
문정인은 답답하다는 얼굴을 한 채로 이재선을 돌아보았다.
“이 비서관, 검찰에서는 수사를 시작했습니까?”
“예. 사건이 동부지검에 배당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찰도 수사하기가 곤혹스러운 것 같습니다. 워낙 정관계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아서....... ”
“그럴수록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지, 바다이야기다 뭐다해서 우리를 음해하는 소문이 많은데 흐지부지하면 또 여론이 우리를 겨냥합니다. 다시 한 번 검찰에 강력하게 전달하세요.”
“수석님께서 총장님께 직접 한번 말씀하시지요. 저는 아직 검찰 소속으로서 총장님께 강하게 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러지요.”
문정인은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할 말 있냐는 뜻으로 김인철에게 시선을 주었으나 그는 침묵을 지켰다.
다음 날 대검찰청 총장실에 딸린 회의실에는 6명의 고위층 검사가 모였다. 송강식 검찰총장을 위시하여, 검찰 2인자인 김도환 대검차장검사, 기획조정부장 한영관, 정책기획 과장 홍진표, 동부지검장 박민규, 동부지검 차장검사 하용수가 그들이었다. 인사들을 나눈 후에 송강식이 입을 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늘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제이피 사건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법조계를 포함하여 우리와 소통하는 여러 경로로부터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은 깊이 파헤칠 것이 못 된다는 의견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문정인 민정수석으로부터 상반되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소. 내용인 즉은 신속, 철저하게 수사를 해 달라는 것이었소. 청와대는 한 마디로 자신 있으니 법대로 하자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런지 모르겠소. 국정원측 정보에 의하면 관련된 인사 중에 청와대 참모와 여권 인사도 포함되어있는 것 아니요? 어떻소? 박 지검장.”
총장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차장 검사인 하용수였다.
“국정원에서 넘겨준 자료는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나 액수 등이 없고 첩보 수준의 정보여서 수사를 해보기 전에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상당수의 판사와 검사도 관련이 되었다고 합니다.”
홍진표의 말이었다.
“수사를 담당할 사람이 누구요?”
송강식은 홍진표의 말을 못들은 듯 무시하고 다시 박민규를 향해서 물었다.
“제이피 불법행위 수사는 황상규 검사이고 로비 및 뇌물 수수 관련자에 대한 수사는 백성일 검사가 맡았습니다. 두 사람 다 총장님이 아시는........”
“둘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긴 한데, 백성일은 판사 하다가 검찰로 온 친구 아닌가? 중요한 사건인데 그 사람 괜찮겠소?”
“예, 그렇습니다만 백성일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백성일은 진짜 검사가 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엉뚱한 짓은 절대로 안할 사람입니다.”
“검사가 한명이라도 피의자로 이름이 오르내려서는 안 됩니다. 내부에서 징계를 하더라도 말이요. 수사도중 관련자가 있으면 나한테 보고해 주시오.”
“수사의 인과 관계상 혐의자중 검사만 빼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요? 옳지도 않고 말입니다.”
한영관의 말이었다.
“잘못이 있어봐야 로비를 받았다는 것일 텐데 그만한 일로 검사가 다른 혐의자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소? 물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벌은 우리 내부에서 내립니다. 아무튼 검사는 일반인들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취급되어서도 안돼요. 검찰이 국민에게 우습게 보이면 나라가 개판이 됩니다. 그래서 검찰에 기소독점권이 있는 겁니다.”
“그래도 이미 국정원에서 내사하여 청와대에 보고한 사건인데 그렇게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언론도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주수천 사기혐의 본건에 수사를 집중하고 로비 혐의는 흐지부지 만들어서 전체를 기소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언론은 우리가 무마시킬 수 있을 것이고 관련자들이 많은 정관계는 좋아할 것입니다. 다만 청와대에서 어찌 나올지가 문제입니다.”
홍진표의 말이었다.
한영관은 이런 자리에서 일개 과장급인 홍진표가 거침없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송강식과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사이일 것으로 추측했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청와대에도 관련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틀려지겠지.” 송강식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 정부의 방침이 지금 자신들에게 정권이 있을 때 검찰을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는 것인데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제 식구 몇 명 보호하자고 이런저런 조정을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법대로만 하면 될 텐데요.”
한영관이 참지 못하고 말하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한 부장, 왜 그리 순진한 소리를 하시오? 인사권이 저들에게 있는 한 완전한 독립이란 공염불일 뿐이요. 우리가 저들의 뜻대로 하지 않고 우리 뜻대로 하는 것만이 그나마 독립에 근접하는 것이고 인사권으로 우리를 아무리 주물러도 검찰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해줘야 하는 거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단결이 필수적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요.”
“현 정권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법치와 공명정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 한 정부의 일개 부처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국민의 선거로 뽑힌 정권에 대립해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현 정권이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공산주의자와 온갖 내외의 위협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온 근간이고 현 정권은 국민의 반짝 인기로 등장했다가 곧 사라질 세력이요. 우리 중 나나 한두 사람이 정권의 미움을 사서 검찰을 떠나는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의 검사들 모두를 몰아내지 못하는 한 검찰은 변하지 않을 것이요.”
“.................”
한영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송강식은 입맛을 몇 번 다시고는 박민규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지만 내가 오늘 한 말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모두들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 지검장, 제이피 건은 일단 한번 뚜껑을 열어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서둘러서 해야 우리가 정리를 할 시간을 벌 수 있어요. 그럼 오늘은 이정도로 끝냅시다. 두 분은 멀리서 왔으니 오랜만에 식사나 같이 합시다.”
송강식은 이 말과 함께 먼저 일어섰다.
한영관은 참으로 한심하고 낯 뜨거운 회의가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더 오간다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송강식의 단골집인 서초동의 고급일식집 시부야에 들어선 세 사람은 안쪽 방으로 안내되었다. 커다란 쟁반에 종잇장처럼 얇게 포를 떠서 연꽃 모양으로 장식한 복사시미와 검은색 도자기 잔에 복어의 지느러미를 그을어서 띄운 따끈한 정종 4잔이 나왔을 때 홍진표가 송구한 표정을 짓고 들어왔다.
“같이 식사하자고 내가 불렀소.”
송강식은 박민규와 하용수가 그를 전갈을 가지고 온 사람이 아니라 식사에 초대된 일행임을 알 수 있도록 이렇게 말했다.
“총장님이 홍과장을 총애하는 줄은 진즉 알고 있었습니다.”
박민규의 대답이었다.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씩 마신 후에 다시 송강식이 입을 열었다.
“박 지검장, 국정원 보고서에도 올라있으니 샅샅이 뒤져서 청와대 사람을 꼭 찾아내도록 하세요.”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를 염탐하는 놈들이 있는 것 같아.”
“예?”
감짝 놀란 박민규와 하용수가 동시에 소리쳤고 뒷말은 하용수가 이었다.
“어떤 놈이 감히 총장님을?.........그게 사실입니까?”
“대한민국에서 검찰총장을 손댈 수 있는 자들이 누구겠소?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그러겠소?”
“정권이 개입된 것이라면 국정원이겠군요.”
침착한 어조로 대답한 사람은 홍진표였다.
“그런 것 같아. 홍과장이 국정원의 최수용과 이한세를 통해서 좀 알아봐. 청와대에 있는 우리 쪽 사람들에게도 말해놓고........, 그리고 한영관이 잘 지켜봐야해. 그 친구가 오고부터 아주 느낌이 좋지가 않아요. 이력이 어떤 사람인 줄은 다들 알고 있지요? 그리고 조금 전에 말하는 것 봤지요? 현 정권이 목적을 가지고 그 자리에 보낸 사람임에 틀림없어요. 현 정권이 우리를 상대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적당한 때에 선수를 쳐야지. 정치인 중에 털어서 먼지나지 않을 자가 과연 있을까? 두 분도 책잡힐 일 있으면 미리미리 대비하고........, 아무튼 조심하세요.”
이어진 총장의 말에 역시 홍진표가 대답했다.
“기조부장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쪽에서도 저를 조심하니 엿볼 기회가 잘 오지 않는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박민규는 입안에 넣으면 녹아버리곤 하던 복사시미의 맛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자신도 외부의 내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풍랑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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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