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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따바루 프로젝트 -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그들의 계획은 대부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김인철은 공직을 사임하고 한지숙은 청와대 홍보실 비서관으로 들어갔다.
언론사의 마왕들은 김인철이 사직한 사실에 대해서는 매우 섭섭해 했으나 한지숙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기사에서 김인철의 사직에 대해서 문정인이 처음의 민정수석 자리에서 사임한 뒤 나중에 비서실장으로 돌아온 것에 비유하며 얼마 안가서 장관이나 수석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예언했다. 잠시 자리를 떠난 이유는 사업상으로 처리해야할 개인적인 이유이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변함이 없어서 직책이 없는 상태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조언은 계속될 것이라는 추측도 했다.
김인철에 대한 가시 돋친 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지숙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자로서의 경력도 과장해서 소개하고 미모도 언급하며 촉망되는 홍보 통으로 소개했다. 김인철과 함께 일하던 사이임을 소개하며 그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단정적 추측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김인철과 엮어놓으면서도 부정적인 코멘트는 한 군데도 없었다.
김인철은 마련된 오백억 원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한 다음 그 법인이 전액 출자한 태산건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재단법인의 명칭은 ‘사람들’로 정하고 박제승 변호사를 위시한 명망인사 5명을 이사로 선임했다.
태산 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이 된 황태산의 주도로 해외건설업 면허가 있고 자산가치가 최소한 이 백억은 되는 부도직전의 동광 건설을 백억 원에 인수하여 태산 건설에 합병시켰다. 자격요건을 갖춘 태산건설은 광화문에 위치한 왕보빌딩의 1개 층을 임대하여 사무실을 꾸미고 전 태산건설의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이렇게 하여 진용이 갖추어지자 그들은 인도네시아 ‘꼬따바루’ 공사의 수주 전에 돌입했다. 황태산은 정확한 견적 산출을 위해서 여덟 명의 직원을 동반하여 현지로 나갔다. 그사이 김인철은 김정수와 함께 인도네시아 진출에 관심을 보이는 L과 H백화점그룹 그리고 고구려호텔과의 협상에 집중했다. 물론 유럽 쪽에서 관심을 표명한 회사들과의 협상도 병행해서 진행했다.
황태산이 견적 팀을 이끌고 인도네시아로 출국한지 석 달이 꼬박 지난 다음에야 김인철은 입찰서 제출 시 함께 Proposal을 제출할 업체로 한국의 H백화점과 프랑스의 라마다 인 호텔그룹으로 확정하고는 김정수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맞이한 새해가 한 달이나 훌쩍 달아난 다음이었다.
그들이 출국하는 날 눈이 많이 내렸다. 길이 막힐 것에 대비해서 그들은 일치감치 공항으로 나갔다. 수주 확정시 까지는 석 달 이상 걸릴 것이므로 짐이 상당히 많았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다 부친 다음, 20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한지숙이 허둥대며 나타났다. 김인철이 나올 필요 없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그녀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한지숙의 얼굴은 차가운 겨울공기 때문인지 까칠해 보였다. 커피숍으로 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그녀는 철없는 소녀처럼 말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녀가 청와대로 들어간 이후로는 김인철과의 사이가 조금 서먹해 진 느낌이었다. 한지숙은 김인철과는 달리 청와대에 상근을 해야만 했고 거기서 무척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으므로 김인철과 거의 만나지를 못하고 지냈다.
그들이 소원하게 지낸 이유는 어쩌면 일 보다는 독일에서의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인철은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는 자신이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미래에 자신에게 생길 수 있는 변수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 우선 일에만 몰두하면서 시간이 더 흐르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지만 안보고 지내는 시간에는 그녀가 그리웠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자신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김인철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김정수가 대답했다.
“청와대 고위관리께서 말씀하시는 것 좀 보세요. 우리가 놀러가는 줄 아세요? 이번 출장은 기간도 길고 임무도 막중해서 엄청 고생해야 되요.”
그사이 여유를 찾은 김인철이 보탰다.
“대통령님 임기 끝나면 어디든지 데려가 주지.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 거야. 몸조심하고 대통령님 잘 도와드려.”
그녀는 계속 시무룩했다.
“나는 혼자 남아서 이런 일 못하겠어요. 가고 싶은데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게 좋은데....... 들어가자마자 그만둘 수도 없고 ..........”
“천하의 한지숙이 이렇게 약한 소리도 하네, 잘 해낼 거면서......... 우리 일 이 잘 되도록 빌어줘.”
그녀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커피만 마셨다. 커피 잔을 비운 다음에는 마음을 추스린 듯 목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공사 꼭 따오세요. 몸조심하시고, 여자도 조심........,”
김인철은 커피숍을 나와서 그녀와 가볍게 포옹한 뒤 헤어져 출국장으로 향했다. 출국장으로 나가기 전 그녀 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와의 관계로 눈물을 보인 두 번째 여자였다.
김인철이 인도네시아로 와서 황태산 일행과 합류한 지 며칠이 지났다. 견적요원들은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요원들 한 사람당 하루에 평균 8건의 벤더 미팅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입찰 준비는 일견 순조로워보였다. 그러나 전에 생각지 못했던 두 가지 요인이 그의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다.
그 하나는 밤방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밤방은 원래부터 심장의 판막에 기형이 있어서 그의 나이 사십대 때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 최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서 심장의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의 조카사위이며 비만또로 사의 상무이사인 에르윈이라는 사람이 대부분의 일에서 그를 대신하고 있었다.
자카르타에 도착한 다음날 그가 병원에서 갓 퇴원한 밤방을 만나러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에르윈과 함께 있었다.
김인철을 보자 밤방은 그가 자신의 병을 금방 낫게 해줄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되는 듯 반가워하면서 병이 다 나아버린 듯 굴었다. 그러나 꼬따바루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김인철의 회사로 확정된 듯 말하면서도 옆에 있는 에르윈을 의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르윈이 발주처 내부에서 태산건설에 내켜하지 않는 의견을 자주 표현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첫눈에 비친 에르윈은 똑똑하면서 자만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다루기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었다.
밤방은 건강상으로 아직 건재해보였지만 그의 아들이 장성할 때 까지 더 많은 일들을 에르윈에게 위임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다른 하나는 경쟁사인 다이세이 건설이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산건설이 수면에 떠오른 이후 발주처의 태도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고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던 그 업체가 최근 견적 팀을 교체하고 심기일전하여 적극적으로 수주 전을 펼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발주처의 내부사정에 관한 정보를 전해준 사람은 김인철이 은행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낸 비만또로 사의 자금 담당 책임자인 미국 국적의 중국인 피터웡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인철이 한 군데 출처의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정보는 헨니를 통해서 보고된 그것과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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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