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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살찌우기 -
그가 부장을 따라서 들어간 곳은 12층에 있는 논설 고문 최만호의 방이었다. 그곳에서는 업계에서 신과도 같은 존재인 세 사람과 날카로운 인상의 오십대 남자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만호, 조일신문의 김달중, 중심일보의 홍석천과 삼송그룹 구조조정본부 전무인 이기용이 그들이었다.
두 사람이 노크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말을 하고 있던 최만호는 잠시 멈추었다가 시선을 그에게 준채로 하던 말을 계속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김인철이 들어온 것을 기점으로 저쪽이 달라졌어요. 그자가 모사꾼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일들은 확실하지 않지만 이번 검찰 사태는 그자와 국정원의 서석준이 개입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말이 끊어지자 그 틈에 부장이 문성국을 소개했다.
“우리 회사 정치부의 문성국기자입니다. 김인철을 따라다닌 지는 삼 개월째입니다.”
문성국은 영문을 모르는 채 말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중 김달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기자의 ‘신극동’시절 글들은 내가 거의 다 읽었는데 글재주가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을 직접 보니 더 믿음이 가는군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것을 기다려 최만호가 문성국에게 말했다.
“문기자가 김인철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보게.”
문성국은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듯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예, 김인철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인도네시아로 가서 사업을 하여 꽤 성공한 사람입니다. 대학 선배인 참민정부 실세 문정인의 천거로 탄핵 직후 대통령특보로 임명되었습니다. 사직동에 개인 사무실을 두고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를 도와 일하는 한국방송기자 출신 한지숙과는 사귀는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대목에서 쓴 웃음을 짓는 이기용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 사람과 김인철 사이에 사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말을 이어갔다.
“최근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전 태산그룹회장 황 태산을 새로운 멤버로 끌어들여 모종의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세 사람이 독일과 영국을 다녀왔는데 뮌헨에서는 그의 인도네시아 현지회사 지분의 절반을 그란트 팀버라고 하는 독일회사에 팔았고 런던에서는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었는데 종합하면 그는 자신의 회사 일부를 팔아서 마련한 돈과 투자 유치를 받아서 마련할 자금으로 한국에 회사를 설립한 다음 인도네시아의 대형 건설공사를 시공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황태산은 그 건설회사를 맡아서 운영할 인물입니다. 그가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를 만났는데 그건 특별한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신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역시 김달중이 대표로 말했다.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오겠는걸, 여자 문제, 국정농단, 권력남용, 기업비리 ........ 종합선물세트로 포장할 수 있겠군요.”
홍석천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잘하면 크게 써먹을 수 있겠어. 잘 보관해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써야 될 카드야.”
끝으로 최만호가 정리를 했다.
“자 그럼, 정리를 해 봅시다. 김인철 케이스는 가능하면 대선용으로 씁시다. 아주 작은 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만들기 나름이고 이것만큼 다양한 요소를 가진 건이 또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잔치 날이 오기 전까지는 돼지를 살찌워야 합니다. 즉 그때까지는 꾸준히 김인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서 국민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고 현 정부에서 그의 비중이 높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에 관한 모든 기사는 문기자가 혼자서 쓰고 싣기 전에 우리가 조일, 중심에 제공하겠소. 이 건으로는 우리가 취재경쟁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조기에 터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을 사전에 막아야 합니다. 두 분께서는 동의하시겠지요?”
두 명의 신은 각각 대답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동의합니다.”
“김부장, 문기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예”
대답을 기다려서 최만호가 문성국에게 다시 말했다.
“일단 오늘 첫 기사를 한번 써보지. 작문을 멋지게 한번 해보게.”
그 다음날 3대 일간지에는 일제히 1면 상단에 김인철의 유럽 방문 사실 기사가 그리고 뒷면에 그에 대한 해설 기사가 실렸다. 정계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김인철의 인물비중으로는 격에 도저히 맞지 않는 자리였지만 대통령의 비밀 특사라는 점을 강조하여 격을 높였다.
약간의 사실을 근거로 한 창작이 대부분인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복심인 김인철 특보가 유럽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대통령비밀특사자격으로 외무부와 대사관도 배제하고 독일 총리와 비밀 회담을 하고 돌아왔는데 청와대와 본인은 회담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부시행정부내의 강경파들 사이에서 선제공격 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적인 해결책을 미국에 촉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간 것으로 관측된다. 김특보가 독일 정계 실력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어서 해결사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김특보는 독일 일정을 마친 후 런던으로 옮겨서 영국의 몇몇 주요정치인들과의 회담을 가지는 한편 전 유럽 기업가들을 상대로 한국 투자유치 세미나도 개최 했는데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그의 영국행은 독일에서의 비밀 임무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민 정부의 숨겨진 실세인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 기사들은 그를 단숨에 문정인에 버금가는 참민정부의 실세로 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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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