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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출장 -
일주일 후 김인철과 한지숙 그리고 황태산은 독일의 뮌헨으로 날아갔다.
김정수는 유사시 일에 대비하느라 한국에 남았다.
인도네시아법인 쪽에서 헨니와 법률팀장 유숩, 그리고 법률고문인 변호사 하리얀또가 날아와서 합류했다.
그들은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틀어박혀서 계약서 초안검토와 그란트 팀버사 와의 사소한 이견을 조정하는데 몰두했다.
3일이 지난 후 그란트팀버 본사 사옥에서 치러진 조촐한 조인식에서 김인철과 하퍼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김인철 소유 인도네시아 법인 ‘피티 누산따라 스자띠’의 주식 중 49%가 미화 4천 구백만 달러에 ‘그란트팀버’ 사로 양도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임시 주총을 열어 그란트 팀버 측의 두 사람을 ‘누산따라 스자띠’의 임원으로 선임했다. 부사장으로 선임된 뮐러와 재무이사로 선임된 요한슨이 그들이었다.
그날 밤 하퍼는 김인철 일행이 투숙하고 있는 힐튼 호텔의 그랜드볼룸에서 디너파티를 열었다.
"부인이 참 아름다우시군요."
하퍼의 삼촌인 독일 외상 슈나이더가 말했다.
마침 한지숙이 테이블을 비운 사이에 도착한 그가 막 테이블로 돌아와 앉는 한지숙을 보고 김인철의 부인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오해라고 김인철이 말하려고 했으나 하퍼가 눈을 찡긋하여 만류했다.
그 때 모든 상황을 파악한 한지숙이 슈나이더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슈나이더 장관님이시군요? 제 남편이 만나 뵙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이를 잘 부탁드려요.”
슈나이더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춘 다음 대답했다.
“이렇게 이름다운 분을 부인으로 가진 사람은 어디서나 좋은 대접을 받는답니다.”
즐거워하는 한지숙을 보자 김인철도 능청스럽게 연극에 동참하였다.
“제 아내를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슈나이더는 한지숙의 자태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본분을 잊지는 않는다.
“잊어버리기 전에 약간의 용무를 마쳐야겠소. 김 선생이 이곳에 공무로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 대통령의 특보 신분으로서 수상님을 뵙고 가도록 하십시오. 마침 우리가 비공식 경로로 한국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던 참이요. 내일 오전에 약속을 잡아도 되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여기서 런던으로 갈 계획입니다. 일주일 후에나 한국에 도착할 텐데 어쩌지요?”
“상관없어요. 시간적으로는 얼마든지 여유가 있는 사안이요. 음, 내 조카에게서 당신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가 작년 2월이니 1년 6개월 전이로군요.
하퍼는 한국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내게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지요. 그 시기에 한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온통 부정적인 것 들 뿐이었소.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정보 부처의 보고서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지요.
당신이 정부에 들어간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이루어진 한국의 변화는 우리가 보기에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오. 그 변화가 당신의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신은 러키가이요.
그 때 총선에서 집권당의 승리로 정치적인 안정이 마련된 것이야 말로 한국 국가운명에 신의 가호가 내린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기세는 경이로움을 떠나 두려움을 느낄 정도요. 탄탄한 경제 성장은 아무것도 아니요. IT, 의료, 조선, 자동차 주요한 전 분야에서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빠른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특히 정보통신 분야는 이미 세계최고 수준에 올랐고 말입니다. 외교와 대북관계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얄미울 정도로 실리를 취하면서 대미관계도 대북관계도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행스러운 것은 당신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국민에 헌신적이고 대외적으로 당당한 이 정부의 가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민의 생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요언론이 자신들의 특권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현 집권세력을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당신 나라 대통령은 천재임이 분명한데 또 바보이기도 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여론과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매스컴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당근을 던져서 달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요.”
김인철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한국의 사정을 정말 잘 알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론사를 당근으로 달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외국인으로서의 통찰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론사의 궁극적 목표를 (심판으로서의)보도와 의견 표명을 통해 독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영향력을 확대하여 보다 많은 (매체)판매와 광고 수익을 올리겠다는 사적인 목적과, 그들이 속한 국가와 사회를 옳다고 믿는 모습으로 변모시키거나(개혁) 유지시키겠다는(보수) 공익적 목적 두 가지로 국한해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언론 자체가 기업(언론이 아닌)과 정치 세력의 일부로서 자신들의 권익에 도전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자신들 그룹에 이익이 되는 법률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등 직접 선수로서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론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고 말했다.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참 사회 구조가 특이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요. 저소득층의 교육수준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나라가 한국이죠. 그런데 그렇게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자기들의 편이 누군지 구분을 못해요. 교육수준이 세계최고인 한국의 저소득층이 중산층 이상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행태는 정치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김인철이 더 이상 한국정치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지숙이 테이블 사람들의 건배를 제안했다. 그리고 건배에 자기 잔의 술을 깨끗이 비운다음 슈나이더에게 춤을 청했다.
슈나이더는 숙녀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춤 솜씨를 뽐냈다. 그는 한지숙을 능숙하게 리드하면서 플로어를 지배했다.
김인철은 황태산과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선홍색 파티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그란트팀버의 젊은 금발의 미녀들을 압도하고 파티의 여왕으로 군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랬다.
춤이 끝나자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술을 권했고 그녀는 사양하지 않았다. 김인철이 말렸지만 그녀는 작심한 듯 술을 마셨다. 파티가 끝나도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는 않던 그녀가 김인철이 슈나이더와 하퍼를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부축하여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김인철이 그녀를 침대에 누이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 쪽으로 당겼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완력에 김인철의 얼굴은 본의 아니게 그녀의 가슴을 덮쳤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던가, 김인철은 한동안 그 자세에서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마음껏 느꼈다. 그 사이 한지숙은 이미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상체를 일으키려하자 그녀는 다시 양손에 힘을 주어 그의 얼굴을 아래로 당겨서 입술과 입술을 포개었다.
김인철은 오랫동안 참았던 자신의 남성이 불끈 솟아오름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그녀의 손을 그의 목덜미에서 떼어냈다. 그녀가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호응해 주지 않았다. 그녀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지만 문제는 맨 정신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는 자유의지가 불확실한 상태의 여자를 범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진정시킨 다음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자신과 싸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벽에 걸린 시계는 자정에서 15분이나 더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가 찾아 올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문에 달려있는 렌즈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호텔 종업원 복장의 한 남자가 음식 배달용 트롤리와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문을 열지 않은 채 영어로 물었다.
"누구세요?"
“룸서비스입니다. 스파게티와 실로인 스테이크를 시키지 않았습니까?"
“안 시켰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문을 열자 종업원으로 위장한 킬러가 트롤리 위의 음식을 덮은 하얀 천 밑에서 권총을 꺼내는 장면은 영화에나 나오는 것이었고 그가 총을 맞을 일은 없었다. 배달을 잘못 온 종업원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는 것은 좀 심하다 싶어서 그는 문을 열었다.
“방 번호를 잘못 안 모양이요.”
그럴 리가 없다고 잠시 고집을 피우던 호텔 종업원은 곧 머리를 여러 번 조아리며 백배사죄를 한 다음 문을 닫고 물러갔다.
하지만 권총대신 그의 제복 속에 감추어진 소형카메라가 헝클어진 와이셔츠 차림의 그와 침대 위의 심하게 흐트러진 한지숙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충분히 담아낸 다음이었다.
런던에서의 투자 설명회는 오롯이 하퍼의 덕으로 이루어졌다. 유럽 각국의 예비 투자자들을 선정하고 초대하는 일은 본인이 직접 챙긴 것이었고 행사장 준비는 그란트팀버의 런던지사에서 모두 맡아서 해 준 것이었다. 심지어는 투자자를 상태로 뛰어난 언변을 구사하며 김인철 측으로부터 교육받은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설명한 프레젠터도 그란트팀버의 홍보담당 직원이었다.
설명된 내용의 핵심은 이랬다. 김인철이 한화 오백억의 돈으로 우선 재단법인을 설립한 다음 그 법인이 전액 출자한 건설회사를 만든다. 그 회사가 비만또로 사와 전체공사에 대한 MOU를 체결하고 1차 공사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다. 그 상태에서 유럽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500억의 유상증자를 하여 자본금을 1천억으로 늘리는데 희망 투자자들은 주식을 액면가에 인수하는 대신 100%의 프리미엄을 별도로 내야한다. 그 프리미엄은 기부금 형태로 재단 법인으로 들어간다. 즉 건설사의 자본금은 일천억 원이 되고 그 지분은 재단이 50%, 투자자들이 50%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면 재단은 오백억 원 상당의 건설사 지분과 오백억 원의 현금으로 구성된 일천억 원의 총자산을 갖게 된다.
프레젠터의 설명이 끝나고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황 태산이 연단으로 나섰다.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서였다. 예의 단정한 백발에 쥐색 정장 차림의 황태산의 용모는 분위기를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황태산과 머리카락의 색깔이 비슷한 사람이 먼저 손을 들었다.
"요는 우리가 새로 설립되는 건설사의 주식을 액면가의 두 배를 주고 사는 셈이군요. 계획대로 진행만 된다면 뭐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닌 듯한데........., 설립될 회사의 시공능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겠습니까? 자료가 좀 있습니까?"
황태산은 기다리던 질문이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한국의 태산건설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설명 드리자면 너무 길어질 터이고...........,여러분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비만또로 사와 본 건설회사 - 편의상 태산건설이라 칭하겠습니다. - 간의 계약이 성립된 후에 계약조건을 모두 검토한 다음 투자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당사의 시공능력에 대해서는 여러분 보다 훨씬 더 관심이 많은 비만또로 사가 평가해 줄 것입니다. 그 회사와 건설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시공능력은 믿어도 될 것입니다.
백발의 신사는 수긍의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입을 떼었다.
“추진하는 공사의 규모를 볼 때 모집하고자 하는 자본의 규모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소. 그리고 우리의 투자 시점이 발주처와의 계약이 성립된 이후라면 부족한 자본을 론을 일으켜서 충당하지 뭐 하러 주식을 내다팔려고 합니까?”
역시 예상된 질문이었다.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건설공사의 특성상 태산건설의 초기자본금 오백억 원이면 자본은 충분합니다. 계약과 동시에 공사대금의 20%를 선수금으로 받게 되어있고 공사 진행시에도 공정에 따라 월별 기성의 형태로 대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식을 파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중 하나는 여러분들 중에서 우리가 짓는 신도시에 계획되어 있는 백화점, 호텔, 또는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다면 공사에도 지분으로 참여할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점은 발주처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설립하는 회사가 한국의 정치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겠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회사의 설립자는 현 정부와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정권의 힘을 이용해서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리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혹시 정권이 바뀌거나 하는 경우에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의 정치발전을 지원하고자 설립되는 재단법인이 - 여러분이 지급할 태산건설 주식인수 프리미엄(지불가격과 액면가와의 차액)이 도너의 형태로 들어갈 재단입니다. 여러분은 의결권이 없는 주주가 되는 것이죠. 이 재단은 언론사와 깨끗하고 자질 있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투명하게 공개된 방식의 자금지원을 통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을 할 것입니다. -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시작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황태산의 영어 발음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가 천천히 똑똑 끊어서 말했기 때문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확신이 들어차있는 것처럼 들렸다.
백발의 신사는 만족한 듯 미소를 보냈고 밤색의 정장에 노란색의 행커치프를 주머니에 꽂은 흑인 신사가 다음 말을 받았다.
“좋은 조건입니다. 그런데 실제 투자를 받겠다는 시점, 즉 발주처와의 계약이 이루어지고난 다음에는 경쟁률이 무척 높아지겠군요. 그때 가서 프리미엄이 올라간다든지 하지는 않겠지요?”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더도 덜도 안 되고 한 구좌 오백만 불 씩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완공 후의 그 곳 시설물에 투자하실 의사가 있는 업체에게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는 예약순서대로입니다. 지금 예약하셔도 됩니다. 예약에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본인의 서명이면 됩니다.”
투자설명회는 대성공이었다. 태산 건설에 지분참여를 예약한 사람은 37명 이었고 백화점 체인 세 군데, 호텔 체인 두 군데에서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들이 체류하는 내내 런던에는 비가 내렸지만 세 사람의 가슴속은 더없이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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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