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뉴스

	총 게시물 3,145건, 최근 0 건

[문학] 나는 그 '소녀'를 만난 적 있다.

글쓴이 :

시적모험 날짜 : 2011-04-19 (화) 11:49 조회 : 7507 추천 : 42 비추천 : 0

시적모험 기자 (시기자)

기자생활 : 5,132일째

뽕수치 : 62,093뽕 / 레벨 : 6렙

트위터 :

페이스북 :

최신기사

얼마 전 잠깐 언급 (http://umz.kr/03HbV) 한 < 백년 마담 > 을 만난 날. 의 상세

후기 올려둔다. 오래전껀데, 오늘 바람이 햐 수상하여 '낮술 대신해' 올리는거다.

그대들 반응이 좋으면? 담엔, 대낮에 길거리에서 가스통 테러 당한 어느 건달

얘기를 해줄께. 얘들아? '아름답게' 살자.

-------------------------------------------------------------------------------------------------------------

동네 담뱃 가게에서 빌려온 간이 의자에 앉아 삼일내내 나를 기다렸다는,

사십대 후반의 그 여인을 대문 앞에서 마주친 게 벌써 6-7년전 일입니다.

깔깔한 목소리와 거친 머릿결. 얼굴 한 켠에 녹아든 겹겹의 그늘만 봐도

이 여인의 인생은 심상치 않았으려니... 짐작키 무섭게, 여인은 자신을

화류계 생활 이십여년의, 쓴물 단물에 잿물까지 다 맛 본, 정통 바닥계

마담이라고 소개하더군요.

그런 여인이 나를 왜 기다렸느냐? 란 긴 내력은 구차하니까 관둡니다.

그냥 그녀는 채권자로서 내 집을 찾았고 나는 어쨌거나 채무자측 입장에서

그녀를 맞은 셈이니 이건 뭐 누가 봐도 거시기할만치 불편한 만남이였습져.

건장한 체격의 사내까지 하나 대동하고 까칠스럽게 나를 추궁하던 여자.

사실과 거짓을 고루고루 섞어 교묘하게 대답하던 나.

시간은 흐르고 밤은 깊어 가는데, 실타래는 풀릴 생각을 않으니.

여자는 급기야 내 집안까지 봐야겠다며? 사내를 돌려보낸 뒤,

내 뒤를 졸졸 밟아 오더군요.

하필이면 그 날 열쇠를 잃어버려, 자취방 현관문 앞에 그녀와 나란히

쪼그려 앉은 한 시간여. 이런 불염치의 당사자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라곤?

씁쓸한 세상에 대한 전언들 뿐이라는 사실에 서로가 최초 공감하기까지.

우린 꽤나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담배 하나를 빼내 문 그 여인이 의외의 고백을 던지더군요.

아까 사실... 아가씨네 쓰레기통을 뒤졌거등. 근데 거기 보니까, 주문한

책 목록이 나오드라구... 그냥 책 좋아하는 아가씨라니까, 반갑드라구.

내가 그 순간 놀란 건, 이 여자가 내 집 쓰레기통을 뒤지기까지 했단

사실이 아니라, 쓰레기통까지 뒤져야하는 절망에서? 이 여인이 기껏

주시한 게 내가 '주문한 책 목록' 이였단 사실 때문이였습니다.

이 여자의 진짜는 뭔가. 라는 의구심.

열쇠 수리공 아저씨가 왔다 가고 그녀에게나 내게나 그 순간에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아랫목, 일꺼란 지극히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를 내 방에까지 들여 놨습니다.

없는 돈을 긁어모아 닭 반마리에 소주 하나까지 시켜 놓구, 몸부터

녹이란 말을 예의상 던져 놓으면서도, 원체 불편하게 마주친 사이다

보니? 경계는 쉽사리 늦추지 않았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뜻밖의 한마디에, 이 모든 정적과 팽배한 반목이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방을 꼼꼼이 둘러보던 여자의 눈길이 내 책장에 꽂힌 책 한권에 가닿더니

천천히 꺼내 들더군요. 여자는 그간의 얼음장 같던 인상을 저도 모르게

무너 뜨리곤, 입술을 잘근 씹은 채로 울컥였습니다.

내가 이 책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이걸 여기서 보네..

현실내 무겁게 자리한 산술적 관계를 떠나, 인간이 그저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접점' 위에서 우리가 상봉한 그 순간. 여자의 손에 들렸던 책의 이름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 이였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 그녀라는 채권자와 나라는 채무자가 만나 꼴딱 밤을 새며

나눈 대화라곤, 마콘도 마을의 비밀과 우르슬라의 삶. 게리넬도 대령과

남미 판타지 문학 속 대를 잇는 인간 개개의 고독에 대한 비탄. 그리고,

잘잘한 시와 문학 얘기들 뿐이였습니다.

해가 뜨고 자신이 왜 여기 왔었는지도 잊은 냥. 말갛게 상기 된 얼굴로 집을

나서며 "다신 못보려나..?" 라고 아쉬워 하던 그녀에게 달리 화답해 줄

따뜻한 인삿말을 못찾아 그저 그녀의 손에다 기껏, 제가 쥐여준 거 또한,

달랑 두권의 시집이였습져.

최문자의 <울음소리 작아지다> 와 허수경의 <혼자가는 먼집>.

빚 받으러 왔다가 시집 두권을 들고 간 여인. 인생... 참, 재밌지요?

내가 이 여인을 백년간은 족히 기억할 수 있는 건, 단순히

말갛게 보낸 그 하룻밤이 희귀해서가 아니라? 삶의 소용돌이,

그 와중에도 맘을 내밀면 충분히 가닿을 수 있는 '접점' 이 생각

이외로 가시거리 내에 있단, 귀한 비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심장 어딘가에 귀(鬼) 로 묻어뒀을, 자신의 '소녀' 에게 말을 걸어 준

누군가를 만난 그날 밤, 을. 그녀 또한. 족히 백년은 그리워 할테지요?

-----------------------------------------------------------------------------------------------------------

그 날. 그녀에게 건넨 최문자 시인, 의 詩 한편 남겨둡니다.

아래 음악과 함께 들으세요.

Sungha - The Last Waltz (Mido's Theme of Movie 'Oldboy')

흔적들

식탁 위에 놓인 붉은 사과

한쪽 얼굴이 발갰다

나는 사과에게 물었다 피 묻은 뺨에 대하여

사과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

말이 답답할수록 우리는 바벨의 언어로 말했다

사과와 나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잠시 후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다

흔적들은 소리 내지 않고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흔적들로 가득하다

사과가 떠나올 때 울었던 흔적

나무에서 갑자기 잃어버린 어느 한 부분

그 한쪽에 피가 몰렸다

피 한 방울 없이도 핏발 선 얼굴로 지냈다

사과나무 속에도 사과가 들어갔던 흔적이 있다

가슴팍에 머리를 처박고 이별을 버티던

쑥 들어간 부분

사과를 씻어주면 소리 없이 눈물이 고이던 그 자리

아, 생각난다

단칼에 잘라 먹던 사과의 눈물

칼에도 도마에도 묻어 있던 사과의 눈물

사과나무가

아팠던 자리마다 다시 사과를 배는 것은

그 자리에 열린 사과가 더 빨간 것은

떠난 사과들의 흔적 때문이다

흔적들이 다 말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푸른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글쓴이 :

시적모험 날짜 : 2011-04-19 (화) 11:49 조회 : 7507 추천 : 42 비추천 : 0

[1/14]

구가네

2011-04-19 (화) 11:55

아팠던 자리마다 다시 사과를 베는 것은

그 자리에 열린 사과가 더 빨간 것은

떠난 사과들의 흔적 때문이다
[출처] 박봉팔닷컴 - http://www.parkbongpal.com/bbs/board.php?bo_table=B02&wr_id=3260

추천 0 반대 0

[2/14]

왜그래자꾸우

2011-04-19 (화) 11:59

고전을 통해서나
만날만한 일이 있었군..
올린 글들..
처음부터 봐야겠군..

추천 0 반대 0

[3/14]

은어

2011-04-19 (화) 12:20

잘 봤따. 추천한다.
대충보면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같아.

추천 0 반대 0

[4/14]

만각

2011-04-19 (화) 14:24

와 존내용이다, 그래 인간이 살면서 의외성이 있어 살만하다
사채업자와 문학의 만남, 나는 옛날 청소년 영화중에서 잊지못하는
제목이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이게 맘에 들어,좌우명성격도 있지
비록 발은 이풍진 세상의 먼지속에 있지만 우리의 이상은 하늘을 향해...
가끔은 하늘을 볼수 있다는 여유,각박한 현실에서의 유쾌한 도피???!!!

추천 0 반대 0

[5/14]

언제나마음만은

2011-04-19 (화) 14:59

시적그림은 쏟아내는 글 한소절한소절이 다 시네

추천 0 반대 0

[6/14]

다시라기

2011-04-19 (화) 16:30

낯술 대신 좋은데
다음에 또 부탁해
기대할께

술 댕긴다.ㅋ

추천 0 반대 0

[7/14]

산과들

2011-04-19 (화) 18:22

소싯적, 내가 혼자 자취할 때였어.

어떤 여자아이가 늦은 시각에 우리집을 찾아왔어. 그리고 물었어.
이 집이 아무개가 사는 집 아니냐고.
아니라고, 내가 이사온 지 얼마 안되는데, 혹시 그 전에 살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해놓고 보니 그 여자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시각을 넘겼지 머야.
그래서 내가 '호의'를 베풀었어. 자고 가라고.
겁이라곤 없던 청춘기였거던, 그 때 내가.

몇시나 되었을까. 자다말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깻어.
헉~ 그 여자아이가 내 지갑을 뒤지고 있더라구.

어처구니없었지만 몸을 슬쩍 뒤척여서 내가 자지 않고 잇음을 알려주고..
그리고는 서로간의 소통을 끝냈지.

그 곱상하던 여자아이는 이후로 오래 내 마음에 머물렀어.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분노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때 내 형편은 참을 수 없이 처절했지만, 그래도 월급쟁이엿다구.
차비라도 조금 건네줄 걸..
그런 마음이엇다구.

그걸 모티브 삼아 소설 한 편 쓰고 싶을 지경이었음둥~

피에쑤. 너, 글 참 잘 쓴다.

추천 0 반대 0

[8/14]

khalki

2011-04-19 (화) 23:15

참 슬프고 아픈 글이다.

추천 0 반대 0

[9/14]

시적모험

2011-04-19 (화) 23:56

산과들 //

나도 20살 자취하던 시절에 그 비슷한 일을 겪은 적 있었다.
어느 날엔가. 웬 또래 머슴애가 찾아 어떤 여잘 찾더라고.
얘길 들어보니 내가 이사오기 전 그 집에 살던 애인였나봐.
아 얼마나 그리웠으면 옛 사랑을 뒤늦게 찾아왔을까, 그치?

없다 하고 나는 그녈 모른다 하고 대략 돌려 보냈는데
담날 또 찾아왔더라. 사귀자나? 헐..옛사랑 좋아하네. ㅎ

추천 0 반대 0

[10/14]

시적모험

2011-04-19 (화) 23:59

나머지 //

영화 '올드보이' 엔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드라이브 갈 때 틀어놓으면 좋아. 특히, 야밤 드라이브.

추천 0 반대 0

[11/14]

스나이퍼

2011-04-20 (수) 02:13

백년동안의 고독....
95년도에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딱 한 권...이런 소설 하나 써보겠다고 문학공부를 시작했드랬지..
이 책을 읽고 나는,
박경리의 토지 같은 장편소설이 어쩌면 쓰기 더 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
신춘문예 뒤지던 때가 생각나네...

추천 0 반대 0

[12/14]

시적모험

2011-04-20 (수) 15:17

스나이퍼 //

예비 작가들한텐 이 책이 로망인 것 같으이.
내 아는 애도, 이런 책 한권 써보는게 평생의 소원이라던데.

난 그냥 '독자' 팔자가 편코, 좋코. :D

추천 0 반대 0

[13/14]

제이

2011-04-20 (수) 16:49

문예방 이동네는 나한테는 감당이 잘 안되는 동네네....

여튼 열분덜 마이 배운다 ... 감사^^

추천 0 반대 0

[14/14]

베일

2011-04-21 (목) 14:05

난 언제부터인가
아픈게 무섭드라.
아파해야하는것에 대해서 두렵고.
생각조차 무섭고.

추천 2 반대 0

		총 게시물 3,145건, 최근 0 건


번호	사진	제목	글쓴이	점수	조회	날짜

		문예, 과학 게시판 안내	미래지향	2	47016	2013 09-17

		노무현 대통령님의 글쓰기 지침 [22]	팔할이바람	30	101988	2014 01-15

145		영어 문법, 어디까지 해야 하나? [10]	박샘	16	7224	2011 04-20

144		그리움이 지면 별이 뜨고 [2]	희망찬내일위해	12	4803	2011 04-19

143		노근이 들려주는 서양 철학 이야기 2 [28]	노근	63	9311	2011 04-19

142		영어교육의 문제 [13]	박샘	35	7886	2011 04-19

141		나는 그 '소녀'를 만난 적 있다. [14]	시적모험	42	7508	2011 04-19

140		영어 한마디2 [28]	만각	48	5133	2011 04-19

139		영어 한마디2 [28]	만각	48	5246	2011 04-19

138		머더 테레사의 희생! [2]	여행마케터	7	5186	2011 04-18

137		봄에는 짐승처럼 예민해져야 한다 [22]	또또	69	7575	2011 04-18

136		노근이 들려주는 서양 철학 이야기 [21]	노근	68	10146	2011 04-18

135		노근의 소학 강독 4 [8]	노근	16	7197	2011 04-18

134		자식들 영어 공부 땜에 머리 아파? [26]	박샘	45	11491	2011 04-18

133		컵속에 달 담기 프로젝트 [3]	희망찬내일위해	13	4571	2011 04-18

132		영어 한마디 [29]	만각	61	5763	2011 04-18

131		영어 이야기 여섯 [12]	지여	28	5473	2011 04-18

130		[사진] 조선왕조 사생활 [15]	아마테라스	28	5754	2011 04-17

129		오죽헌..오천원..오만원 [4]	벤자민	14	6091	2011 04-17

128		1889 [7]	희망찬내일위해	25	5056	2011 04-17

127		바람의 넋 [6]	다시라기	11	5205	2011 04-17

126		살구꽃 [8]	인삼의향기는담장을넘…	23	6341	2011 04-16

125		낙 화 [7]	초립동	17	4999	2011 04-16

124		동영상및 음악이 전부 실행되지 않는데 [3]	초립동	1	5405	2011 04-16

123		졸시, 자전거 [5]	내몸의봄	20	6551	2011 04-16

122		노근의 소학강독 3 [5]	노근	11	7500	2011 04-16

121		진달래 캐러 왔다가 [6]	시적모험	35	7347	2011 04-16

120		그대에게 (시)	여울목	11	3429	2011 04-16

119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12]	봉숙이	41	6296	2011 04-15

118		고우영 만화의 추억. 閑里慧星, 헬리혜성 [4]	박봉추	15	6897	2011 04-15

117		신의 지문 [7]	홍매화	19	9004	2011 04-14

116		제8극장, 대항해시대 [5]	라우비즈	2	5711	2011 04-14

115		극대와 극미의 세계 [17]	홍매화	28	6285	2011 04-14

114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뒷걸음 치는 말"	노란c	3	4309	2011 04-14

113		박(朴)흥부일까? 연(燕)흥부일까? [22]	박봉추	37	7651	2011 04-14

112		피리 [3]	희망찬내일위해	7	4356	2011 04-13

111		[펌] 잉카제국의 몰락 [5]	오리날다	30	7433	2011 04-13

110		굵은 소금 안주로 술 두잔을 올린다. [2]	박봉추	12	6543	2011 04-13

109		성석제 소설을 보고 나서.... [2]	자바라말야	11	7728	2011 04-12

108		마음의 바탕 [5]	희망찬내일위해	11	4707	2011 04-12

107		영혼이 새처럼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눈물이 날 … [2]	희망찬내일위해	7	4790	2011 04-12

106		노근의 소학강독 2 [8]	노근	15	7419	2011 04-12

105		[펌] '머리의 언어' 전복시키는 '… [5]	해인	6	5390	2011 04-12

104		꿈에도 몰랐습니다. [1]	해아를꿈꾸며	11	4806	2011 04-12

103		추모시 댓글 짜깁기 [1]	해아를꿈꾸며	4	4622	2011 04-12

102		어우동을 보는 같은 듯 하면서 다른 시각 [1]	죽전리	14	7175	2011 04-11

101		가지 않은 길 [1]	희망찬내일위해	5	4681	2011 04-11

100		왕과의 인터부 [1]	한량	6	4732	2011 04-11

99		주입식역사교육에 없는 역사- 이성계 [5]	지여	15	5934	2011 04-11

98		유교는 종교인가? 아님 실천인가? - 틀 위에서 놀… [4]	밥솥	9	4770	2011 04-11

97		중편소설 <달) - 유시민 [9]	인삼의향기는담장을넘…	25	6798	2011 04-11

96		A little [2]	희망찬내일위해	8	4574	2011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