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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가서 살 수밖에 없게 된다면 무엇 무엇을 가지고 가겠다, 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그 무엇, 생의 최종적인 의미를 생성시키는 그 무엇, 고립의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 나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대답할 것이다. “오월 나뭇잎들”이라고. 무인도에도 나무가 있지 않느냐고? 그때 무인도란 어떤 지리적 공간에 대한 개념은 아니다. 그것은 <생의 극단적 상황>의 알레고리일 터이니까.
오월이 처음 시작될 때, 나는 우정 심술을 부린다. 나는 입을 빼물고 마음의 문을 닫아건다. 아무래도 이 계절은 늙은 나랑은 맞지 않아. 나는 지난 해와는 달리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에게는 가을이나 초봄이 어울려. 그 정도가 늙은 내가 감당할만한, 이미 기울어 버린 아름다움이야.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정작 오월이 시작되고 나뭇잎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기 시작하고, 바람이 햇살을 타고 대지의 향기를 실어나르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주책바가지 연인이 된다.
오월의 아름다움은 특히 나뭇잎들의 아름다움이다. 오월에 나뭇잎들은 절대적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그것은 봄의 나뭇잎들처럼 겨우 비형태를 벗어난 흐릿한 형태의 비실비실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봄 나뭇잎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무기로 세계를 향해 어리광을 부린다. 나한테 잘 해 줘야 해, 안 그러면 안 클 거야. 장난감 안 사주면 학교 안 가. 그러나 오월 나뭇잎들은 이미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자기가 누구인지를 안다. 그러나 그것들의 색깔은 6월만 되면 벌써 뻔뻔해지는 짙은 초록이 아니다. 6월 나뭇잎들은 너무나 잘난 척한다. 그 나뭇잎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잘 알고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는 어떤 미인들 같다. 6월 나뭇잎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그 말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타인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맛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6월 나뭇잎들의 짙은 초록색 안에서 나는 그런 권력적 냄새를 맡는다. 아름다움은 순수한 자리를 이미 떠나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
오월의 초록은 연두색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엷은 초록색은 아직 온전한 색깔을 가지지 못해서 하늘이라는 화선지를 배경으로 언제나 번져나와 흐릿해져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봄의 연두색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미 초록색 쪽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색깔은 얼마나 미묘하게 흔들리는가. 얼마나 미묘하고 겸손하게 당당한가.
나는 오월 나뭇잎들이 너무나 여러 가지 색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사랑한다. 그 연두-초록은 수천 가지의 자기 버전을 만들어낸다. 6월이 되어, 벌써 어떤 짙은 초록의 전체주의 안으로 밀려들어가지 전에, 그것들은 너무나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다. 오월 나뭇잎들은 존재의 바탕이 자유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눈좋은 당신은 벌써 알아챘으리라. 오월 나뭇잎들이 제 각각의 자유로운 자기 버전의 연두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숲의 전체와 기막힌 조화를 유지하는지. 그것들은 중뿔나게 잘난체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율 안에서 마음껏 자기다움을 펼치지만, 그것들은 숲의 조화 안에 고요하게 통합되어 있다. 색채뿐이 아니다, 키들도 가지런하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키는 가지런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등성이는 마치 재주 좋은 미용사가 방금 잘 다듬어놓은 동그스름한 상고 머리처럼 보인다.
오월 나뭇잎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들이다. 그것은, 혼자서 잘난체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함께, 겸손하게 어울려있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반드시, “나무”라는 개별적 주체 뒤에 쉼표를 찍고, “들”이라는 복수 접미사를 붙여 불러야 하는 아름다움이다. 나무들은 혼자이면서 동시에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 뒤에는 말없음표를 붙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아름다운 보석 나뭇잎들은 언젠가 시들어 떨어질 것이고, 그리고 다시 새로운 존재들을 그 죽음의 자리에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월나뭇잎을 통해 이해한 생은 닫혀 있지 않다. 그것은 어딘가를 향해 한없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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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