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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험프리스는 싱가포르 체류기, 『Notes From an Even Smaller Island』 에서, 키아수 라는 말을 한 장(챕터)을 할애해서 다룬다. 싱가포르를 이해하는데 키워드가 될 만한 말인 것 같다.
키아수(kiasu,驚輸)는 중국말에서 온 싱글리쉬 단어로, ‘질까봐 두려워’라는 뜻.
제일 먼저 나가려고 넓은 데 놔두고 입구 가까이에 주차하는 것, 먼저 가려고 차선 끼어드는 운전자, 새치기, 이런 행동 뒤에 깔린, 싱가포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 생활의 사고방식을 키아수이즘(kiasuism)이라고 한다. 사실 어디나 이런 모습은 있을 텐데, 싱가포르에서는 유독, 생활 철학으로 굳어져서 도드라지나보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나 공중화장실에 앉아서조차 휴대전화를 받는 것. 결혼식장, 교회, 교실에 있을 때도 걸려온 전화를 놓치면 안되는 것. 최고가 되려는 욕망, 뭔가를 놓치면 안된다는 사고방식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먹고 살만 해졌지만 사회적 안전망 없이 개인이 자기 삶을 책임져야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살 수 있으나, 그 쳇바퀴에서 절대 내려올 수는 없는 사회. 제 탐욕을 만족시키려면 '효율성'을 유지해야 하고, 거기서 '공포'가 오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단기간에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자본주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책에서 키아수이즘을 다룬 부분을 바탕으로 끄적거려 봄.
싱가포르의 키아수이즘(제6장)
온종일 쇼핑하는 여자친구를 따라다니며 지친 닐은, 쇼핑백을 들고 택시 정차장에 섰다. 싱가포르에는 정해진 곳에서만 택시가 서고,(길 가다가 아무 데서나 손을 들어 택시를 타는 나라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음...) 그 정해진 곳이란 물론 내 예상대로 한길가라던가...그렇지 않더라. 그들이 생각하는 택시 정차장이 있기에 ‘적당한’ 곳과 내가 생각하는 그곳은 좀 다르더라.
아무튼 닐은, 줄을 서서 자기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시간이 참 짜증스럽긴 하다. 택시를 기다린다는 자체가 뭔가 절박함이 있는 상황인데, 싱가포르의 바깥 날씨는 아주
무덥고, 택시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줄은 길고, 에휴)
택시가 서자, 중국인 녀석 하나가 와서 잽싸게
탄다. 전화기에다 대고 큰 목소리로 누구에겐가 욕을 퍼부으면서. 새치기를
한 상황인데, 기사가 그걸 모르고 택시는 출발. 새치기한 녀석은 택시
안에서 줄 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사람들은 한숨 쉬며 투덜거리는데, 닐은 격분.
그 녀석을 눈 앞에서 놓쳐 버린 데에 분통이 터졌고, 자기가 떠나온 고향은 자기처럼
그런 인간들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줄 뒤에 서 있던 인도인 한쌍이 택시 잡기를 포기한 듯 돌아서길래,
닐이 측은해하는 찰나, 이들은 큰 길쪽으로 가더니 정차장으로 들어오던 택시를 손
들어 세워 탄다. 닐은 떠나는 택시 꽁무니에다가 ‘개자식아’
‘너 ㅆ ㅈㅁ 키아수 자식아.’ 하고 외쳐댄다.
일요일 밤, 한길가에서 택시에게 지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내가 뭐하고 있나? 생각에 빠지고,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닐을 쳐다 본다. 저 사람 꼭지 돌았네 하는 눈으로.
닐은 이런 자신을 ‘다겐햄의 나’ (다겐햄: 닐의 고향, 영국 어딘가의 후진 동네)라고 부른다.
다겐햄에선 다 나와 같다고. 
키아수이즘이란 이 택시 새치기를 한 사람들의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고작 10분 일찍 가려고, 어린 아이 데리고 서 있는 가족들을 제치고 새치기 하는 것.
택시 기사는, 정차장에 들어왔다 가는 것보다 새치기한
사람을 태우고 가는 게 몇 초라도 빠르기 때문에 새치기에 눈 감는 것.
이 인간들 미친 거 아냐?
하고 닐은 묻고,
아니,
라고 답한다.
하지만 닐이 날마다 한번쯤은 겪는 이 키아수이즘은 싱가포르의 가장 부정적인 면일 거라는 증언. 눈에 드러나는 걸로는.
닐은 키아수이즘의 긍정적인 면도 본다.
예를 들면, 실패할까 두려워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 것. 문제는 이것이 건강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많은 싱가포르인들은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을 좋아하며, 뭔가를 기다리질 못하는데,
지금 당장 뭔가를 가져야 하고, 그게 지금 최우선이기 때문에. 2인자가 되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닐이 예로 든 키아수 가운데 ‘헬로 키티’
유행은 이렇게 분석했다.
“니가 가진 건, 나도 가져야 해" 신드롬이라고. “내가 가진 건,
너는 가지면 안 돼” 신드롬이기도 하고.
이
못 생긴 고양이 인형 한정판을 사려고 전날부터 줄 서고 난리가 났던 일을 보고, 놀랐던 이야기다.
줄서기가 국민 취미인 영국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줄서기에서도 키아수가 있는 거다. 1인 1키티여야 되는데, 다른 사람 주문 받아서
10개씩 사가고, 줄 서기 알바도 생겼단다. 그리고 이 키아수 행동한 사람들은 체포되서 벌금 내고 그랬단다. (믿을 수 없지만,
arrested and fined for disorderly behaviour로 책에 쓰여있음) 새치기 하다가 폭력사건도 났다고.
줄 서기가 국민취미인 듯한 영국사람들 보는 듯했지만, 닐의 고향 다겐햄의 우체국에서 만약 새치기를 한다면, 막 살인을 저지른 사람 보듯이 사람들이
대할 거라고.
닐의 분석은 이렇다. 싱가포르의 삶이란 너무나도
분주하여, 시민들이 줄 서거나 기다릴 인내심은 커녕 숨 쉴 시간도 제대로 없다. 그래서 동네 은행에는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번호표
뽑기. 싱가포르는 점점 ‘줄 없는 지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쓸 때 닐의 고향 촌동네 은행에는 아직 번호표 뽑기 시스템이 없었나 보다.
이해한다. 내가 사는 동네 은행에도 번호표 뽑기 시스템 없다 ㅠㅠ.
줄 선다.
잼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네덜란드엔 영화관 입장할
때도 줄 선다. 지정좌석제가 아니거든. 표 산 다음, 홀에서 한 줄로 쭉 줄 서서 기다리다가, 문 열리면 들어가는 극장이 하나 있고,
다른 극장은 홀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냥 길에 줄 선다. 매표소 문 열면 표 사면서 입장함. 어릴 때....동네
동시상영하는 극장에서 그랬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긴 하는데, 아무튼 그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어리둥절함은 생략하겠고, 이것들 생각보다 참 멍청하네,
하고 넘기려고 애쓴다는 말만 전한다. 영화 보러 안 간다.
시청에는 번호표 시스템인데, 일반업무는 번호표 뽑고(여기서 일반 업무란, 등본 발급 등의 단순업무) 뭔가
공무원과 좀 얘기해야 될 경우는 사전 약속해야 한다. 그것도 전화로 약속하는 게 아니고....편지로.
(이러니 더치 촌놈들이 한국 패스트푸드 점에서, 부저 주잖아, 그거 보고, 뿅 가는 거 상상되겠지?
정말 기막힌 시스템이라고. 네덜란드에도 도입해야 된다고. 나보고 수입상하래.)
싱가포르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니 싱가포르에서
은행 번호표 뽑기 시스템 보고 감동한 닐이, 헬로 키티 사려고 밤새 줄 서는 현상 보고 얼마나 놀랬을지 나는
이해 됨. 
닐은 키아수를 탐욕의 논리라고 보는데, 탐욕을
넘어서 다른 면도 꺼낸다.
자신이 일등이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헬로 키티든 뭐든 자기가 처음으로 그걸 가져야 한다는 키아수. 거의 집착증. 이등이 될까봐, 질까봐.
닐이 이어서 드는 키아수의 사례는 전철, 버스
등인데, 한국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 생략함.
닐은 이 키아수 현상을 싱가포르 정부가 만들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키아수의 근원은 탐욕(greed)인데, 인간 속성 중의
하나인 탐욕을 발전시켜 온 것은 바로 정부라는 것이다. 1965년 건국 때 상황에서부터 움튼 것.
말레이시아도 영국도 모른 체하고. 맨손으로 일궈야 했던 상황. 지금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것은 지구상 가장 생산적인 노동력이었고,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안전한, 방 세 개짜리 아파트. 괜찮은 수준의
학교 교육, 이런 것을 이렇게 빨리 이루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결국 이루었고, 좀 더 하면, 방 다섯 개짜리로 옮기고 애들은 대학도 갈 수 있을 거고...그래서 전국민이 좀 더 좀 더 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우리는 잘 아는 스토리다.
거기에 정부는 효율적인 공공서비스, 주택제도, 간선시설을 제공하여 효율과 생산성이 최고 가치가 되었다는 것.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와 함께 불가피하게 따라
온 것이 탐욕과 공포다.
욕심을 충족시키려면 효율성을 유지해야 하고, 거기에서
공포가 생긴다. 잃을까봐, 효율성을 잃고,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봐.
닐도 버스와 전철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다닌다. 왜? 그 ‘지랄 맞은 것’을 타야 하니까. 죽이느냐 죽임을 당하느냐의 문제이니까. 그는 그런 자신이 싫다.
그리고 이런 결론.
온 나라를 맨땅헤딩 정신(self-help)과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도록 하는 것은
유아기일 때는 필요하지만 자라면 필요없다. 그러나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에, 경쟁과 일등되기를 끝장낼 필요는 없다. 그러니 어느날, 일가족이나 쇼핑백을 든 여성들 뒤에 줄서서 택시를 기다린다면,
새치기 하지 마라. 곧 다른 택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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