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만엽집(萬葉集)≫을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숭앙하고 있다. ≪만엽집(萬葉集)≫은 일본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문학으로서 일본인이 세계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일본의 고대 문화유산이다. 뿐만 아니라 단가(短歌) 및 장가(長歌) 등의 노래가 총 4500여 수에 달해 양에 있어서도 손색이 없는 일본의 대표적 시가집이다.
≪만엽집≫이 생산된 시기1)는 4세기부터 8세기까지로, 약 450년간 불린 노래들을 담아놓았는데 대개는 조메이 천황(舒明天皇) 시대인 629년부터 준닌 천황(淳仁天皇) 시대인 759년까지 약 130년간에 집중되어 있다. 더 나아가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 있던 645년을 시점으로 759년까지 115년간을 속칭 만엽시대(萬葉時代)라고 한다. 이 시기는 정치사회사적으로 일본이 고대국가, 즉 율령국가가 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율령국가란 당나라 및 우리나라의 율령을 규범으로 제정한 다이호(大寶)ㆍ요로(養老) 율령, 즉 법전에 의한 절대적 권력을 가진 황실에 지배되는 국가라는 의미다. 곧, 덴지(天智)−덴무(天武)−쇼무(聖武)로 이어지는 강력한 천황이 나타나는 시기이고, 수도로 말하자면 아스카(飛鳥), 나니와(難波), 오미(近江), 후지와라경(藤原京), 나라(奈良)로 기반이 고정되어 가는 시기다. 이렇듯이 모든 관인들이 황실을 옹립해 한마음으로 율령국가의 성립과 완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가는 상승적 시기에 만엽 노래는 창작되고 수집된 것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는 ≪만엽집≫은 사실 서명 및 그 외 제반 사항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없다. 그래서 몇백 년간에 걸쳐 작자, 저작 연대, 편자, 제본, 내용 및 조직 등에 관한 실로 다양한 연구가 있고 그 양 또한 방대하다. 여기서는 위 사항에 대해 독자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주된 사항만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먼저 ≪만엽집≫이라는 서명의 유래다. 이에 대해서는 고래로 여러 설이 제창되고 있으나 크게 두 가지 설로 집약된다. 첫째는 엽(葉)을 시가(詩歌)로 해석해, ‘많은 시가를 모은 책’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둘째는 ‘엽’을 ‘대(代)’, ‘세(世)’의 의미로 해석해 ‘만세에까지 영원히 전해져야만 할 가집’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만엽집≫이 하나의 가집으로 정리된 시기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으나 대개 몬무 천황(文武天皇) 말엽인 7세기 후반부터 고닌 천황(光仁天皇) 시대인 8세기 후반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게다가 전 20권2)으로 되어 있는 ≪만엽집≫은 권마다 구성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한 사람의 편자에 의해 수미일관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편찬자에 대해서는 천황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는 칙찬설(勅撰說),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설,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설 등이 있다. 처음 1, 2권을 중심으로 16권까지 편찬되었고, 야카모치 노래 일기적 체재의 네 권이 더해져 두 번째 편찬이 이뤄졌다. 이후, 현존하는 형태처럼 마지막으로 정리한 것은 야카모치의 손을 거친 것으로 추찰된다. 순서는 대략 ① 권1의 전반 부분(1∼53번 노래), ② 권1의 후반 부분＋권2 증보, ③ 권3∼권15＋권16의 일부 증보, ④ 나머지 권 증보순으로 성립되었다고 하겠다.
노래 중 시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노래는 닌토쿠 천황(仁德) 황후의 노래라고 전해지는 것(85∼89)으로 4세기 초두의 작품이다. 가장 새로운 노래는 759년의 노래로 야카모치의 노래(4516)다. 대표적 작가는 누카타노 오키미(額田王),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柿本人麻呂), 다케치노 구로히토(高市黑人), 야마베노 아카히토(山部赤人), 야마노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 다카하시노 무시마로(高橋蟲麻呂), 오토모노 다비토(大伴旅人), 오토모노 야카모치 등이다. 작자는 천황, 황족, 귀족, 관리, 사키모리(防人),3) 유녀, 거지 등으로 다양하며 동쪽 지방의 민요라고도 할 수 있는 아즈마 노래(東歌)4) 등이 있어, 천황이나 귀족뿐만이 아니라 민중의 노래까지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다.
수록된 노래는 4500여 수 외에 한시문이 몇 편 있다. 다만 사본(寫本)의 이전(異傳)으로 인해 정확한 노래 숫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오늘날은 국가대관(國歌大觀) 번호에 따라 4516수라고 하고 있다.5) 노래의 가체는 5ㆍ7ㆍ5ㆍ7ㆍ7의 다섯 구로 이뤄진 단가가 대부분이고 장가,6) 선두가(旋頭歌), 불족석가(佛足石歌), 연가(連歌)를 포함한다. 내용상으로는 공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서 궁정 관계의 노래, 수행ㆍ자연ㆍ사계를 읊은 노래인 잡가(雑歌), 주로 남녀의 연정을 읊은 상문가(相聞歌), 죽은 이나 병자를 애도하거나 애상하는 만가(挽歌)의 세 종류로 나누고 있다. 표현 양식상으로는 사랑의 감정을 자연에 빗대어 표현한 기물진사(寄物陳思),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정술심서(正述心緒), 계절의 풍물을 읊는 영물가(詠物歌),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비유한 비유가(譬喩歌) 등으로 나눈다.
가풍은 화려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솔직한 인간성을 풍요롭게 그리고 있어 격조 높은 노래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는 이런 ≪만엽집≫의 노래를 남성풍인 ‘마스라오부리’7)라고 평했다.
수록된 노래들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다음 4기로 나눈다.
제1기는 조메이 천황 즉위(629년)에서 임신란(壬申亂, 672년)까지로, 황실의 행사와 사건에 밀착된 노래가 많다. 대표적 가인으로 누카타노 오키미가 잘 알려져 있다. 그 외 조메이 천황, 덴지 천황, 아리마노 미코(有間皇子), 가가미노 오키미(鏡王女),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의 노래도 있다.
제2기는 헤이조 천도(平城遷都, 710년)까지로, 대표 가인은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 다케치노 구로히토, 나가노 오키마로(長意貴麻呂) 등이다. 의례적 장에서 관인들이 부르는 궁정 찬가나 여행 노래가 유명하다. 그 외 덴지 천황, 지토 천황(持統天皇), 오쓰노 미코(大津皇子), 오쿠노 히메미코(大伯皇女), 시키노 미코(志貴皇子) 등이 있다.
제3기는 733년까지로, 개성적인 노래가 탄생한 시기다. 대표적 가인은 자연 풍경을 그려내 듯한 서경가로 뛰어난 야마베노 아카히토, 풍류와 서정이 넘치는 장가를 읊은 오토모노 다비토, 인생의 고민과 하층계급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 야마노우에노 오쿠라, 전설 속에서 본래의 모습을 발견한 다카하시노 무시마로, 여성의 애감을 노래한 오토모노 사카노우에노 이라쓰메 등이다.
제4기는 759년까지로 대표 가인은 다비토의 아들인 야카모치, 가사노 이라쓰메(笠郞女), 사카노우에노 이라쓰메, 다치바나노 모로에, 나카토미노 야카모리(中臣宅守), 사노노 오토가미노오토메(狹野弟上娘子), 유하라노 오키미(湯原王) 등이다.
≪만엽집≫ 표기는 전문이 한자로 쓰여 있고 한문 체재를 이루고 있다. 편찬되었던 무렵에는 아직 가나(假名) 문자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한자의 음과 훈만을 차용해서 일본어를 표기하려고 한 만엽가나(萬葉假名)라고 불리는 독특한 표기법을 사용했다. 만엽가나는, 나라 시대 말기에는 자형을 조금 달리하거나 획수도 적은 문자를 많이 썼는데, 헤이안(平安) 시대에 이르면 그 경향이 더욱더 강해져 조금이라도 빨리 효율적인 문자를 쓰려고 자형을 극단으로 간략화하거나 자획을 생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한자의 흘림체인 초서체에서 ‘히라가나(平假名)’가, 한자의 부수에서 ‘가타카나(片假名)’가 만들어지게 된다.
일례로 만엽가나로 쓰인 야카모치의 노래(권20, 4516)를 든다.
(만엽가나) 新年乃始乃波都波流能家布敷流由伎能 伊夜之家余其騰
(일본어음) あらたしき としのはじめの はつはるの けふふるゆきの いやしけよごと
(해석) 새해 첫날 오늘 내리는 경사스러운 이 눈처럼 앞으로 더욱더 좋은 일이 많이 쌓이기를 바란다.
완본이 전해지지 않는 ≪만엽집≫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본과 완본이 없는 ≪만엽집≫의 본문을 어떻게 교정하고 바르게 해석할 것인가’다. 이에 발을 들여놓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데 그 자료와 연구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본문은 고텐(古點),8) 지텐(次點),9) 신텐본(新點本)10)을 거쳐 현대(1926∼1989)에 와서는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 박사의 주도로 ≪교본 만엽집(校本萬葉集)≫,11) ≪신훈 만엽집(新訓萬葉集)≫, ≪정본 만엽집(定本萬葉集)≫이 출간되어 이를 토대로 일본고전문학대계본 ≪만엽집≫(岩波書店)이 완성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를 기점으로 더 많은 만엽 연구서가 출간되어 그 수가 방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에 많은 ≪만엽집≫ 연구자가 등장하여 다각적인 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로 된 ≪만엽집≫ 완역은 정작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고 김사엽(金思燁) 님이 ≪한역 만엽집(韓譯萬葉集)≫(성갑서방, 1984∼1991)을 시도했으나 제16권까지로 그쳤으며 해석이 예스러운 고어 투다. 그 의의는 크나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감상할 때는 노래 자체를 그대로 음미하여 서정 세계를 맛보는 것도 좋으나, 그 시대사적인 배경을 알고 읽어보면 색다른 맛을 볼 수 있다. 작가란 결국 그가 속한 시대의 조류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정치사회의 부조에 의해서 노래의 맛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현대 작가보다 더 두드러진 고대 작가의 한 특징이다. 모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만엽집≫은 일본을 대표하는 서적일 뿐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 고대문화를 재구현해 줄 자료로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존재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가치 있는 작품이다.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서정이 솔직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는 세계사적인 자료로서도 가치 있다.
각주
1) ≪고사기≫의 편찬 시기와 겹치기에,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시리즈 ≪고사기≫에 그 시대 배경을 개설했다.
2)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로 일본에서는 마키(まき)라고 부르는데, 이 책에서는 편의상 권으로 한다.
3) 사키모리는 아즈마(東國) 지방에서 징집된 병사를 말하고, 사키모리 노래는 이들이 읊은 노래라는 뜻이다. 권13이나 권14에서도 소량 보이나 가장 저명한 것은 권20의 ‘天平勝寶七歳乙未二月、相替遣筑紫諸國防人等歌’ 84수다. 이것은 755년에 징집된 사키모리가 읊은 노래를, 이들을 이끌어 온 각 지방의 부령사(部領使)에게 명하여 기록하고 올리게 한 것이다. 수준이 낮아 반수 가깝게(82수) 버려졌지만, 채용된 노래에 대해서는 작자명에서부터 출신 지방(지방에 따라서는 군명까지)까지 기록되어 있다. 나아가 ≪만엽집≫에 채록됨에 따라 내용은 물론 만엽가나(萬葉仮名) 표기에 이르기까지 올릴 때 그대로 개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아즈마 지방 방언 자료로서의 가치는 아즈마 노래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 아즈마 지방 노래라는 뜻으로, 아즈마[지금의 간토(関東)ㆍ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도카이(東海)까지 포함된다]에 전하는 노래를 수집해, 어느 지방의 노래인지 판명된 노래(勘國歌: 90수+5수)와 불명의 노래(未勘國歌: 140수+3수)로 나뉘어서 수록되어 있다. 많은 노래에서 상대(上代)의 아즈마 방언이 쓰이고 있고, 노래의 성립 연대나 작자의 출자, 기록의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고대 방언의 구체적인 기록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분량이 많은 것도 매력이다. 권14에만 아즈마 노래가 있다.
5)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 학자들에 의해서 국가대관이 간행되면서 노래마다 번호를 붙였다. ≪만엽집≫은 1번 노래에서 4516번 노래까지 있으며, 이 번호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편의상 노래 제목보다 번호로 부를 때가 많다. 이 책의 노래 앞에 붙은 번호가 바로 이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현대의 모든 연구서는 이 번호를 따른다.
6) 5구 이상으로 된 노래로, 10여 구에서부터 149구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5ㆍ7ㆍ5ㆍ7을 쭉 이어서 노래하다가, 제일 끝에 7을 덧붙여 5ㆍ7ㆍ7로 끝나는 형식의 노래다. 장가는 단독으로 불리는 것도 있고, 장가 뒤에 단가가 덧붙는 것도 있다. 이를 반가(反歌)라고 한다.
7) 근세학자 가모노 마부치가 제창한 상대의 문학 이념으로 ≪만엽집≫의 꾸미지 않고 소박한 가풍을 ‘대장부스러움’을 뜻하는 ‘마스라오부리(ますらをぶり)’라고 했다. 반면 ≪고금 와카집(古今和歌集)≫의 가풍은 기교적이고 우아하며 여성스러운 ‘다오야메부리(たをやめぶり)’라고 했다.
8) 헤이안 시대에 당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모든 기록이 한문체로 바뀌고 만엽가나는 차츰 사라져 가나가 일반화된다. 951년 칙령에 의해 만엽의 한문체에 일본어 읽기[훈독(訓讀)]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고텐(古點)이라 하는데 약 4000수에 읽기가 정해졌다고 하나, 실제 이 고텐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9) 고텐 이후 고텐에서 훈독하지 않은 노래에 차츰 히라가나가 더해졌는데 이를 지텐본(次點本)이라 한다. 지텐본은 여러 종이 전해져 헤이안 후반에 5종, 가마쿠라기(鎌倉期, 1190∼1336)에 6종이 있고, 무로마치기(室町期, 1390∼1466)에 들어서면 많은 것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제각각이고 어느 것도 완본은 없다.
10) 가마쿠라 중기에 센카쿠(仙覺)가 지텐본 수십 종을 한데 모아 훈독했다. 이를 신텐본(新點本)이라 하며 완본이다. 이후 에도 시대(江戶時代, 1596∼1868)에 국학운동으로 인한 고대사 연구가 유행해 1643년 활자부훈본(活字附訓本: 목판본)이 간행되어 세상에 널리 유포된다. 이를 기반으로 1686년 게이추(契沖)가 처음으로 ≪만엽집≫ 전체의 훈독과 해석을 엮어 내어 ≪만엽집≫ 연구에 첫걸음을 내딛는 선구자가 된다.
11) 20세기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 하시모토 신키치(橋本進吉), 다케다 유키치(武田祐吉) 등이 그간의 20종에 달하는 고사본(古寫本), 고간본(古刊本)을 대조, 비교해 만든 것이다. 이 ≪교본 만엽집(校本萬葉集)≫에 의해서 ≪만엽집≫은 한 체계를 이루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게 된다.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