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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의 마지막 장 ‘몰리의 독백’을 읽고 나니, 이 책이 꽤 재미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의 ‘변태성’(외설스럽다는 말이 아니고)은 누누이 들어온바, 책 앞뒤를 뒤적이며 요약된 줄거리도 읽어보고 숨 고르기를 하다가 제13장으로 바로 갔다. 몰리의 독백을 들었으니, 이제 블룸의 독백이닷! (사실은, 블룸이 집 나와서 싸돌아다니다가 바닷가에서 자위하는 장면이 나온다길래...)
블룸의 불꽃이 터져 오르는 묘사를 읽고, 조이스 아저씨 좀 웃기네, 하고는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친 것이다. 여차하면,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실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저마다 재미난 부분만 읽은 셈. 활자를 눈으로 다 읽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여기까지는 율리시스 제1장 얘기를 해보려고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피에르 바야르의 말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다루면서 아니나다를까 율리시스 얘기를 한다. “율리시스? 안 읽었찌.” 하는 투로.
나는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결코 “읽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 안 읽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책 “내용”(content)은 대부분 내게 낯설다.
내용은 낯설지만, “위치”(location)는 그렇지 않다.
나는 율리시스를 놓고 대화할 때 아주 편안하다.
다른 책들 사이에서 율리시스의 위치를 잡을 수 있으니까.
하며 율리시스의 위치를 이렇게 읊는다.
나는 이 책이 오디세이를 다시 쓴 책이라는 것, 의식의 흐름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더블린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점 등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말의 불안도 없이 조이스를 언급한다.
조이스를 읽지 않았다 해서 이런 언급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다음은 피에르 바야르가 분류한 비독서법 네 가지.
1) 모르는 책(Books You Don’t Know) : 전혀 안 읽는다. 제목, 목차 빼고.
2) 훑은 책(Books You Have Skimmed) : 대충 훑는다.
3) 들어본 책(Books You Have Heard of) : 어떤 식으로든 많이 듣고 읽었다.
4) 잊어버린 책(Books You Have Forgotten) : 읽었으나 내용은 잊었다.
▼ 율리시스(제임스 조이스)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바야르에게 율리시스는 ‘아주 많이 들어본 책’이다. 바야르식으로 말하면, 내게는 ‘대충 훑은 책’이 되겠다. 이 책을 뜯어먹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율리시스를 읽은 사람보다 율리시스 연구자가 더 많다던가, 논문 발표자가 더 많다던가 하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조이스 산업’(Joyce Industry)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
피에르 바야르는 비독서법의 첫 번째 카테고리인 “전혀 읽지 않는 경우”를 설명하면서 율리시스 얘기를 꺼냈다. 그에 앞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나오는 사서를 소개하는데, 이 사서가 바로 책을 “읽지” 않는 독서인이다. 그가 도서관의 책 하나하나를 아는 이유는, 바로 그 책들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 책을 들춰보지도 않는 건 아니다만, 제목과 목차 이상을 읽지 않는 것이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이라고. 도서관이나 이 세상이나, 책은 무한하고, 개인은 유한하다. 무질의 사서는, 책 속에 빠져들어 책을 읽는 이는 사서로서 자격 박탈이라고 말한다. 어떤 “관점”을 잃어버린다는 말. 원근법을 유지하면, 책 사이의 연관과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책의 내용(content)과 위치(location)에 관심을 갖고, 책의 내용과 위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책 그 자체에 얼굴을 파묻는 것 보다 그 책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에 착 감기는 책, 침대맡에서, 지하철에서, 읽는 동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주는 책 한 권, 그 숲으로 들어가 길을 잃곤 하는 것이 독서라고 우린 생각해왔다. 그러다 때로는 율리시스처럼 한 손에 들 수도 없고, 언뜻 지도나 안내자가 필요해 보이는 책도 만난다. 수많은 각주와 해설서를 따라 이리저리 헤맨다 해도, 어느 지점이 되면 우리는 저마다 '내적 도서관'의 사서가 된다. 그리고 그 내적 도서관이 모여 ‘집합적 도서관’을 만든다. 세상에 나온 어떤 책의 가장 슬픈 운명은 세상에 이런 도서관 하나 짓지 못하는 거 아닐까? 제임스 조이스는 도서관에서 나아가 ‘산업’까지 일으켰으니 불멸이라 할 만하다. 율리시스를 낳은 호메로스처럼.
▲ 제임스 조이스 / 피에르 바야르
Books aren't so much made to be read, as they are to be lived with.
- 피에르 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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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