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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는 오딧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깐깐하게 말하자면, ‘오뒤쎄우스’가 그리스어 이름, 라틴어로는 ‘울릭세스’, 영어식으로는 ‘율리시스’가 된다.
<오딧세이아>가 오딧세우스의 10년짜리 방랑기라면, 율리시스는 하루짜리 방랑기요, 동네
산책기라고 할 수 있다.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딧세우스가 온갖 일을 겪으며 1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듯, 더블린 사람들도 집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페넬로페와 오딧세우스가 침대로 서로를 확인하듯, <율리시스>의 마지막 장은 그 무대가 침대다. 그래서 <율리시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조이스의 산책소설 사이 ‘평행’ 구조를 헤집어보고 해석을 내놓는다. (이른바 문학의 ‘상호텍스트성’) 이 평행선 사이를 왔다갔다할지, <율리시스>만 따라갈지는 읽는 사람 마음. 물론, 알고 보면 더 재미나다.
율리시스는 모두 18장, 두껍다.
못 갖고 다닌다. 침대맡에서 보기도 어려움.
더블린의 하루를 이렇게 늘여놓으려면 머리에 생각이 얼마나 많아야겠나. 또는 입심이
얼마나 좋아야겠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생각도 많고, 말도 많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 누군들 안 그러랴마는.
블룸의 아내 몰리도 머릿속이 온갖 꽃과 냄새와 한숨과 감탄사로 가득한 여자인데그걸 주절주절 읊어놓은 것이 마지막 장 페넬로페 에피소드다 침대에 누워서 숨도 안 쉬고 마침표 하나 없는 한 문장으로 영문학사상 가장 긴 문장이란다 일명 ‘몰리의 독백’ (이런 식으로 쓴 건데 마침표가 없어도 읽히긴 줄줄 읽힌다 이 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는 참 만만찮았겠다 싶더라 그런데 몰리의 독백을 읽고나면 자꾸 이렇게 쓰고 싶어짐요)
스페인 최남단 지브롤터에서 태어난 안달루시아 처자 몰리는 아일랜드 남자 블룸을 만나
결혼해서 더블린에 산다. 애인과 섹스를 나눈 날, 생리가 시작된 날,
잠든 남편 옆에 누워 뭔 생각을 할까?
온종일 싸돌아다니다 온 남편은 혹시 다른 여자랑 놀다 온 건 아닐까,
전에도 계집애들이랑 좀 놀았던 것 같은데, 나도 한때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보일런(몰리의 애인)을 떠올리다가,
연애할 때 밀당하던 기억, 블룸의 성적 취향은 이러쿵 저러쿵...
올해 내가 몇 살이더라, 제 나이도 셈해보고
(‘글쎄 상관할 게 뭐람’하고 끝내지만) 남자가 제 젖꼭지를 빨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젖가슴을 살찌게 하려고 계란을 마르셀라
백포도주에 담가 마시겠다는 결심도 하고, 덩치 큰아기처럼 덤비며 뭐든지 입속에 넣고 싶어하는 사내의 입의 촉감을 떠올리고, 그이가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간질여줄 때 긴장 때문에 주름살이 보이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도 하고, 몸매 관리상 저녁에 스타우트 흑맥주는 그만 마셔야 하겠다느니, 살 빠지는 약을 먹어야겠다느니,
남편한테 사오라고 시킨 화장품 이야기와 함께, 구멍, 종마, 쿵덕쿵덕, 정액, 쇠지렛대, 오줌, 똥, 털 따위의 말이 이어진다. 밑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1933년 미국 법원에서 울지 판사가 해금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이 책이 금서가 되게 한 주범은 바로 이 몰리의 독백일
거다.
어찌 보면 소설의 나머지 17개 장도 누군가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들의 독백과 여자의 독백이 이렇게 다르구나 절로 비교가 되더군. 몰리의 독백은
소설 대부분을 이루는 남자들의 지적 유희(허세)와 신중함(찌질함)을 한 방에 날려주는 듯한 후련함도 있다.
남자들이란 자기들이 나온 곳으로 도로 들어가고 싶어서 죽고 못 살지 그들은 결코 속
깊이까지 도달할 수 없는 것 같아 사실이든 아니든 사랑이란 당신의 하루 종일과 인생을 가득 채워서 언제나 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고 당신의 주위를 신세계처럼 보이도록 하지 침대 속에서 편지를 쓸 수 있을 지 몰라 그이가 생각하도록 짧고도 몇 마디 말로만 써야지 당돌함에서가 아니고 솔직한 정직성으로 행동하는 거지 세상의 가장 위대한 행복을 얻기
위해.
그 밖에도 남자가 바람 피는 지 알아보는 방법(양파
먹기를 거절하는가. 수첩에 콘돔을 가지고 다니는 가)이나 여자를 유혹할 때 바이런 시집과 장갑을 선물한다거나 하는 정보를 접하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
여러 번 읽고, 조이스는 뭐라고 써놨나 궁금해서 원서를 찾아보기도 했던 부분은 역시, 블룸이 몰리에게 청혼하는, 몰리가 블룸에게 청혼하게 하는, 회상 장면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다 스티븐을 떠올리고 그래서 꽃 이야기가 나오다가 결국 그날의 기억을 읊는다.
당신을 위해 태양이 비추고 있소 그이는 우리들이 호우드 언덕과 만병초꽃 숲속에 누워
있었을 때 내게 말했지 회색 스코치 나사 복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어 그날 나는 그가 내게 구혼하도록 해주었지 그렇지 먼저 나는 입에 넣고 있던
씨앗 과자 나머지를 그의 입에 살며시 밀어 넣어 주었어 그런데 그해는 금년처럼 윤년이었어 그렇군 벌써 16년 전이야 맙소사 저 오랫동안의 입맞춤이 끝나자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 그래 그이는 나를 야산의 꽃이라 했어 그렇지 우리들은 꽃이야 여자의 몸은 어디나 할 것 없이 그래 그것이 그이가 생전에 말한 단 한
가지 진실이었어 그리고 오늘은 태양이 당신을 위해서 비친다고 말이야 그래 그것이 그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였어 왜냐하면 그이는 여자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거나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거니와 그이 같으면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내가 소녀로서 야산의 꽃이었던 지브롤터 그렇지 내가 저 안달루시아 소녀들이 항상 그러하듯
머리에다 장미를 꽂았을 때 혹은 난 붉은 걸로 달까봐 그렇지 그리고 그이는 내게 무어의 성벽 밑에서 어떻게 키스했던가 그리고 나는 그이를 당연
다른 사람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했지 그런 다음 나는 그이에게로 눈으로 요구했지 다시 한 번 내게 요구하도록 말이야 그래 그러자 그이는 내게 요구했어
내가 그러세요 라고 말하겠는가고 그래요 나는 야산의 꽃이여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의 팔로 그이의 몸을 감았지 그렇지 그리고 그이를 나에게 끌어당겼어
그이가 온갖 향내를 풍기는 나의 앞가슴을 감촉 할 수 있도록 그래 그러자 그이의 심장이 미칠 듯이 팔딱거렸어 그리하여 그렇지 나는 그러세요 하고
말했어 그렇게 하겠어요 네. [...]And how he kissed me under the Moorish wall and I thought
well as well him as another and then I asked him with my eyes to ask again yes
and then he asked me would I yes to say yes my mountain flower and first I put
my arms around him yes and drew him down to me so he could feel my breasts all
perfume yes and his heart was going like mad and yes I said yes I will Yes.
몰리의 독백은 Yes로 시작해서
Yes로 끝난다 떠난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듯 몰리의 독백도 남편에게로 되돌아가는 거야 정절을 지켰다는 페넬로페는 밤새 실을 자았고 몰리는 애인과 오후 4시의 섹스를 나누지만 밤이면 남편 곁에 누워 ‘눈물의 골짜기’를 넘어 자신이 야산의 꽃이었던 때를
떠올리는 거지 제임스 조이스는 yes가 여자의 말이라고 했는데 그게 뭔말인지는... <율리시스>를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야.
▼ 블룸이 몰리에게 청혼한 곳. 더블린에 있는 이 호우드 언덕(Howth Head)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율리시스> 인용문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낸, 김종건 번역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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