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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ice on how to cope withgrief; how to be frank about death in the age of its denial; . . . how to walk and think at the same time"– Declan Kiberd, <Ulysses and Us: The Art of Everyday Living>
영원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건가?
스티븐은 학교에서 나와 더블린 시내로 가다가- 제1장에서 친구들과 '더 쉽’ 술집에서 만나 햄릿 이야기를 하기로 했던- 약속 시각인 12시 반 보다 일찍 도착해서, 바닷가에서 빈둥거린다.
공간 : 샌디마운트 바닷가
시간 : 오전 11시쯤?
사건 : 스티븐은 걷는다. (<율리시스>가 더블린 사람들의 산책 소설이라고 할 때, 걷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이다.) 동시에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더블린 사람들은 걸으면서 생각하는 게 주특기) 말하자면, 이 장은 스티븐의 잡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샌디마운트 해안을 따라 나는 영원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건가?”
스티븐의 잡생각들은, 누구라도 언젠가 한 번쯤은 해봤음 직한 것들이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 클롱고우즈 우드에서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신학과 철학과 라틴어를 배웠다는 점이 나와 다를 뿐.
데덜러스가 되려고(“너는 기적을 행사하려고 했었지.” “열화의 콜룸바누스를 뒤따라 유럽으로 간 전도사”) 파리에 의학 공부하러 가서, 지독한 가난 속에 지내다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돌아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어수선해진 집안과 자기 자신을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이다.
글을 쓰겠다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열망이 없다면, 오늘 학교에서 받은 급료로 친구들과 ‘혀를 풀’ 생각만 하고 있을지도 모를 젊은이. 철학이나 신학이 아니라 기술이나 부기를 배웠더라면, 바닷가를 거니는 이 청년은,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돈 벌어 잘 살아갈 궁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티븐은 잡생각조차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고, 그것도 라틴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로 한다. 어쩌겠나. 조이스가, 스티븐이, 허먼 멜빌이었다면, 이 장면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고래와 포경업 이야기로 가득했을지도. 키버드Kiberd라는 사람은 이 소설이 '걸으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법'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스티븐의 잡생각에 심히 짜증스러웠다면, 조금만 기다려보자. 다음 장부터는 그와 정반대 성향의 인물이 '걸으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형이상학보다는, 실질적인 생각을 하고, 실제 뭔가를 관찰하며 걷는, 한풀 꺾인 중년 사내 블룸이 나오니까.
나의 영혼은 나와 함께 걸어간다. 돈 생기면 저축하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나이, 물질주의에는 발가락도 담그지 않겠다는 냉소, 내 육체를 넘어서겠다는 의지, 세상이 나를 이해하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패기, 그리고 열망.
“매일 밤 일곱 권의 책을 각각 두 페이지씩 읽는 거다.”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큰 도서관들에다 기증하게 될 너의 책들을 기억하라. 수 천년, 억만년 후에도 어떤 이가 거기서 읽게 되리라” “우리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린 저자의 이러한 신기한 책을 읽게 되면 그 저자와 자신이 한때 같이 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현실은…(그래도 현실로 좀 내려왔다) . 주변엔 왕위찬탈자나 개밖에 없는 것 같다. 죽음과 영원에 대한 생각도 끊이지 않고.
“밤이 다가와도 나는 거기서 자지 않겠다. 묵묵한 탑의 닫혀진 문, 그들의 몽매한 육체를 무덤처럼 가두고 있다, 표범나리와 그의 사냥개.”
멀리건과 헤인즈가 있는 마텔로 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달키 초등학교로도 아마? 스티븐은 이제 어디로 갈까? 내 생각엔, 그가 <율리시스> 쓰러 갈 것 같다. 더블린 시내로.
“모두 빼앗아, 다 가져. 나의 영혼은 나와 함께 걸어간다, 형태 중의 형태.”
날마다 부딪치는 다른 이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떤 영감은 찾아온다. 에피파니. 묘궁구(墓宮口, moomb) “그의입술이 대기의 살기 없는 입술을 핥고 입맞추었다 :그녀의 묘궁구에의 입구. 자궁, 모든 자궁의 묘. “ (His lips lipped and mouthed fleshless lips of air : mouth to her moomb. Oomb,allwombing tomb.)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잡생각으로 빠질 수 없는 게 섹스, 여자 아니겠나. 스티븐이 이쪽으로 영 숙맥은 아니다. 좀 어설프긴 하지만…
유치한 노랫말 같은 이런 구절들이 나는 좋더라.
"Touch me. Soft eyes. Soft soft soft hand. I am lonely here. O, touch me soon, now. What is that word known to all men? I am quiet here alone. Sad too. Touch, touch me."
스티븐에게서 시상이 펄펄 살아 뛰며 터져 나온다. <율리시스>를 아예 시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된다. 따라 읽으면 내 가슴도 막 뛴다. 시詩는 말의 사원. 말의 힘을 믿으며, 그 사원의 제사장이 되어, 언어를 만들어 내는 자, 조이스가 만든 단어 하나. Moomb. Mouth와 womb의 합성어다. tomb으로 이어지는. 여자의 입, 여자의 자궁. 섹스와 출산. 그리고 죽음. 조이스는 어쩐지 여자를 ‘입’과 연결하는 듯한 느낌. ‘말’ 말이다. ‘글’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스티븐의 의식의 흐름 중에서, 존재의 아이러니를 친부와 친자 관계로 다루는 부분이 있다. 저 자신도, 가정도 제대로 건사 못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스티븐에게는 생물학적 아버지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나를 만들었지만, 나는 분명 그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없다.
“죄의 암흑에서 수태된 채 나도 역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아버지를 낯선 존재로 처음 자각했을 때, 그 낯선 존재에서 나를 봐야만 할 때, 얼마나 고통스럽나. 그것이 삶의 비밀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느끼며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프로테우스처럼 나도 변신하고 싶다.
영웅 스티븐
산책하면서 스티븐의 공상은 물리적 현실로 얼마간은 내려온다. 아무리 이상이 드높아도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나. 오줌도 누고, 콧구멍도 후비고...
그런데 코딱지빛손수건을 안 가져 온 바람에, 코딱지를 바위 위에 붙여 놓고 온다. 이 장에서 우리는 “영웅 스티븐”을 본다. 코딱지를 바위 위에 붙이고 다니기나 하는, 이런 애가 어떻게 영웅이냐고?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원래 제목이 <영웅 스티븐>이었다. 율리시스의 여정 열 여덟 개 장에서 스티븐의 이야기는 첫 세 장까지다. (나중에 블룸과 만나긴 하지만) 스티븐의 여정은 <율리시스> 전체에서는 도입부가 되고, 본격적인 스티븐 이야기로써는 마지막이 된다. 이 장은 호머의 오딧세이아에서 프로테우스 에피소드와 병행을 이루는데, 바다도, 개도, 모든 것이 변화한다. 프로테우스가 누군가. 형상을 만드는 신이다. 어떤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형하고 부활하고 재생산된다. 하나의 요소는 에피파니를 통해 다른 요소로 변신한다.
샌디마운트 해변
더블린 남쪽의 바닷가 샌디마운트 해변(Sandymount Strand)은 <율리시스>에서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제3장, 스티븐이 산책하며 공간과 시간과 영원을 생각하는 장소로, 다른 한 번은 제13장 나우시카 에피소드에서 블룸이 여자 치마 속을 보며 자위하는 장소로. (사진 : 위키피디아)
버지니아 울프
<율리시스>의 인물들은 똥도 싸고 오줌도 누고 코딱지도 파는데…
인간이면 누구나 다 하는 이런 행위가 버젓이 문학에 등장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섹스 관련해서야 외설이라고 변명하면 된다지만, 오줌이나 똥은 뭐라고 할 거냐.
제임스 조이스와 동갑내기이자, 읽기 만만찮기로도 막상막하인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율리시스>의 ‘오줌’에 심기가 불편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연재 중이던 <율리시스>의 앞부분을 읽어보고는, 그리 호평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기까지는 조이스가 소설을 완성하기까지만큼 시간이 걸렸고, 다시 읽는 노력도 필요했다. “먼저, 오줌싸는 개가있어. 그 다음에 오줌싸는 남자가 있어, 그리고 누군가는그 주제에도 지루해할 수 있거든.” (L 2: 234).
1918년 4월, 조이스의 후원자이자 잡지 <에고이스트>에 관여했던 해리엇 위버(Harriet Weaver)는 울프에게 <율리시스>의 첫 네 장을 가져왔다. 울프 부부가 하던 출판사에서 혹시 출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울프는 가내수공업 같은 그들의 출판사에 이 어려운 장편소설이 맞지 않다고 여기기도 했고, 이 소설에 썩 열광하지도 않았다. 첫인상은 천박함과 지루함이었다. 울프는 위버 여사에게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다른 편지에서는 ‘실험으로써 흥미롭다’고 썼다. 이야기 대신에 생각이 있다, 그런데 조이스가 뭔 흥미로운 얘기할 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개가 오줌 싸는 거나 사람이 싸는 거나 다를 것도 없고, 너무 지루한 거 아니냐, 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는 다리 하나 올리고 찍 오줌 갈긴다만, 남자 오줌 누는 건 개처럼 묘사하지는 않았는데도 말이야. 이런 식인데. (▽ 각주 없으면 오줌 누는 장면인지 알아채지도 못하겠구만)
“코크 호반으로부터 긴 올가미를 이루며 물이 넘쳐흘렀다, 모래의 푸른 황금빛 개펄을 덮으며, 솟으면서, 흐르는 것이다.”
울프 역시 이 소설이 당혹스럽고 짜증스러웠던 게다. 첫 네 장만 보면 그럴 수도…. 그러나 1922년 <율리시스>가 겨우 출판됐을 때, 울프는 책을 완독했고,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그녀가 조이스의 특히 ‘점잖지 못함’과 ‘비범함’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했었다는 것만 일단 짚고 갑니다. (울프의 <율리시스> 비평은 다음 기회에)
싸는 걸로 따지자면, 스티븐은 오줌을, 블룸은 똥을 쌉니다. 몰리는 달거리를 하고요.
※ 참조
제임스 조이스 전기(리처드 엘먼)
율리시스(김종건 역)
Woolf's Reading of Joyce's Uly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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