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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토르Nestor
자, 이제 스티븐은 마텔로 탑을 나와 학교에 출근했다.
달키 초등학교 수업시간.
아일랜드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이런 걸 배우나?
역사 시간인 듯한데, 고대 로마사다.
피로스 전투에 관해 학생들과 수업 중.
피로스의 승리
피로스(기원전
319년~272년)는 로마
군대에
맞서
싸운, 옛
그리스의
에페이로스
왕.
힘이
훨씬
센
로마군과
싸워서
이기긴
했는데,
전사자가
많아서
‘자신의
승리에
소진”됐다.
“그와
같은
승리가
또다시
있다면
우리는
파멸이다.”
부하가
피로스에게
승전보를
전하자
피로스가
했다는
말이다.
“세상이 다 기억했던
그
말귀.”
플루타르크가 글로
남겼거든. 이
피로스
전투는
패배와
다름없는
승리를
가리키는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도
낳았다.
전쟁이란
대체로
그런
것
아닐까?
이긴다
해도
자기
소모를
피할
수
없으니.
영국에 대면
턱없이
작은
아일랜드도
피로스
군대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인지, 전쟁 자체의 허무함을 내비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티븐은
역사와
아일랜드의
처지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수업
진행.
그런데 학생들이 스티븐의 눈에는 영 시원찮은 가 보다. 아니면 수업이 재미가 없나? 피로스에 관해 아느냐고 묻는데 아이들은 ‘피어’(선창)아니냐고 딴청 부리고,
‘피어’ 라는 말에 스티븐은 ‘킹스타운 피어’를 떠올리고, ‘킹스타운 피어’는 본래 아일랜드식 이름이 있는데,
영국이 영국식으로 붙인 이름이지...그런데 애들이 이런 말을 알아 듣냐고...
"욕망에 도취되고 멸시를 당한 채, 너그러운 주인의 찬사를 얻으며, 그의 주인의 궁전에 있는 한 광대. 왜 하필이면 그들은 고놈의 광대 역을 택했을까? 전적으로 나긋한 애무를 탐내는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또한 역사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주 들리는 이야기, 그들의 영토는 전당포."
아일랜드 사람들을 광대라고 말한다.
그것도 스스로 그 역을 택한.
전당포가 되어버린 내 나라. 분위기 우울하다....ㅠㅠ
수업하면서도 딴생각을 계속하는 선생님 스티븐. 역사 수업이라 그런지,
더 상념이 많다. <율리시스>가 난해하게 느껴진다면, 조이스의 어떤 ‘기법’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법’이란, 바로 의식의 흐름.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가 썼다는 방법. 이상의 <날개>라든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든가.
조이스의 수수께끼는 내 눈에 걸리는 것만 풀고 가면 되고, 각주만으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방식에는 익숙해지면 좋을 것 같다.
익숙해지면, 재미가 있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된다...
여기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은,
조이스의 말을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스티븐의 잡생각을 따라가는 거다. 말 잇기 놀이하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번져가는 지점의 아련함이 아슬아슬하게 와 닿는다. 그런데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든. 서글픔. 그리고 <율리시스>가 생각보다 단순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안도감. 우리 사는 게 그렇잖아, 하고.
“만일 피로스가 아르고스에서 한 노파의 손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율리우스 케사르가 단도에 찔려 죽지 않았더라면.”
피로스는, 머리 위로 한 노파가 떨어뜨린 기왓장 때문에, 말에서 떨어지고, 적의 손에 죽었다.
피로스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케사르가 부루트스에게 찔려 죽지 않았더라면?
역사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가 ‘실현’되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되면 다른 가능성은 바람에 흩어져버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떠올린다.
스티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친하다. 직관을 중시한 플라톤이 아니라, 이성적인 분석과 구조를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조이스의 의식에 떠있음을 생각해보면, 남들은 소설을 몇 달 만에 쏟아내기도 하는데, 그는 <율리시스>를 8년에 걸쳐 쓰고, 또 고쳐 쓰고, 이리저리 스키마를 다듬고 짜놓은 것을 이해할 듯도 하다.
"It is the
epic of two races (Israel-Ireland) and at the same time the cycle of the human
body as well as a little story of a day (life)... It is also a kind of
encyclopaedia. My intention is not only to render the myth sub specie temporis nostri but also to allow each adventure (that is,
every hour, every organ, every art being interconnected and interrelated in the
somatic scheme of the whole) to condition and even to create its own technique." (James
Joyce, Letters, 21st September 1920)
스티븐은, “가능한 것으로서의 가능성의 실현인, 일종의 운동”이라는, ‘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적 정의도 떠올리고.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운동?)
“사고란 사고의 사고인 거다.(Thought is the
thought of thought.)"
생각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의 대상이 되고...
“영혼은 형상 중의 형상이다.(the soul is the form
of forms.)"
아리스토텔레스와 별로 안
친한 관계로…넘어갑니다.
(그런데 조이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자꾸만
더 친해집니다…뒤로 갈수록)
한편, 시는 뭘 배우나?
아일랜드 초등학생들은 진짜 이런 걸 배웠었나?
밀턴의 시 <리시다스(Lycidas)>를 애들이 암송하네. 그 와중에 스티븐은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역사와 시에 대해 생각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하고, 그러다가 수업은 끝나고, 모성애, 햄릿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아침에 멀리건과 나누었던 대화에 아직 사로잡혀 있는 듯.
키워드는, "아모르 마뜨리스"(Amor matris,모성애).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참된 것?"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친구 크랜리가 했던 말.
어머니의 사랑을 말한다.)
그나저나 오늘은 스티븐의 월급날.
학교 교장인 듯한 디지씨(Mr.Deasy)는 급료를 주면서,
저축하라는 잔소리에 이어...
디지, “자네는 영국 국민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는가?
자네는 영국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항시 듣게 되는 가장 자존심 강한 말이 뭔지 아는가?”
스티븐은 영국인 헤인즈를 생각한다. 바다의 지배자.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역사인 것 같아, 라고 말했던.
스티븐, “ 그의 제국에는 결코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디지, “내가 말해 주지,
무엇이 그의 가장 자만심 강한 자랑인지. '나는 빚을 지지 않고 살았다'라는 걸세. '나는 빚을 지지 않고 살았다.
나는 결코 일생에 한 푼도 빌리지 않았다.' 자네 그걸 느낄 수 있나? '나는 빚진 것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있어?"
그러자 스티븐은 돈 빌린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ㅎㅎㅎ, 멀리건한테는 돈뿐만 아니라 양말 세 켤레도 빚졌고 ㅎㅎㅎ, 커런한테는 10기니를 빚졌꼬... 커런(Curran)은, 1904년 모자 쓴 조이스의 사진을 찍어준 그 대학친구다. 사진 찍을 때, 저놈이 나한테 돈 빌려줄까, 생각했다더니...ㅋㅋㅋ
역사는 깨어나려고 애쓰는 악몽
디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신한 죄를 범했지.
그래서 그들은 지구 상의 방랑자들이야”. 예수의 피 값으로 박해받고 방랑한다는 전형적인 논리다. 19세기 말, 당시 유대인들은 러시아와 폴란드 등의 동유럽에 많이 살고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대규모 유대인 박해(포그롬)가 일어나자, 20세기 초 미국으로, 서유럽으로 대거 이주했고,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도 공공연했다. 스티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역사는, 제가 거기서 깨어나려고 애쓰는 일종의 악몽입니다.”
(History is a nightmare from which I am trying to awake.)
디지씨에게 역사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일어난 일이므로? 속죄양이 필요한가.
디지, "조물주의 길은 우리들의 길과는 달라.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커다란 목표, 하느님의 계시를
향해 움직이지."
스티븐, "저것이 하느님입니다. 거리의 한 가닥 고함소리 말입니다." ㅋㅋㅋㅋ
디지씨에게 역사란
‘목적론적’이고 신의
계시에 따른
것.
스티븐에게 신은
‘거리의 고함소리’이며, 역사란 악몽. 스티븐에게 역사란 거창한
국가적, 민족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내 삶에
이미 들어와
있는 개인적
문제다.
디지씨는 역사에서 여자가 문제라며, 유대인에 이어 여자에게 책임을 또 묻는다. 영국인 헤인즈는 역사를 비난해야 한다고 하더니, 이 사람은 유대인과 여자가 문제라네.
디지, "우리는 많은 과오와 많은 죄를 범해 왔어. 한 여인이 이 세상에 죄를 가져왔지. 행실이 좋지 않은 한 여인, 메넬라오스의 도망간 아내, 헬렌을 위하여, 10년간을
그리스 사람들은 트로이를 공격했던 거야. 한 사람의 부정한 아내가 여기 우리들의 해안으로 낯선 사람들을 처음
데리고 왔지. [...] 파넬을 실각시킨 것도 역시 한 여인이었어."
성서의 이브, 트로이의 헬렌, 그리고 아일랜드 독립운동 지도자
파넬의 여인.(파넬은 간통 스캔들로 실각했음)
텔레마코스가 집을
떠나 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 네스토르의 훈도를 받듯, 디지씨는 스티븐에게 이것저것 조언한다. 별 도움 안 되는.
디지, "아일랜드는, 모두들 말하기를, 명예롭게도 유태인을 결코 박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자네는 그걸 알고
있나? 아니.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왜냐하면 그들을 결코
나라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야."
제18장 페넬로페 에피소드가 Yes로 시작해서 Yes로 끝나던 거
기억하지요?
제1장 텔레마코스 에피소드는 Stately(당당하고)로 시작해서 '찬탈자'로 끝나는데, 첫 자의 S를 일부러 크게
해놨다고 해서, 다른 장과
비교해보니 진짜
그러네. (S는 스티븐의 S라는 설이 있음.) 각 장의 첫말은 몰라도, 끝말은 조이스가 특별히
신경 쓴
거라 해서, 제2장에서도 챙겨보니, 끝말은 “coins”.
달키 초등학교
더블린 남동쪽 바닷가 마을 달키에 있는 학교다.
달키Dalkey라는 마을에 관해 찾아보니, 작가도 많이 나고, 풍광도 좋은 바닷가인가 보다. U2의 멤버 보노, 엔야, 크리스 디 버그 같은 가수들이 여기 산다네.
(요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소설 <A Week in Winter>의 작가 메이브 빈치Maeve Binch도 이 마을 출신이고, 지난해 작고하기 전까지 달키에 살았음. 조이스의 소설<피네간의 경야>에서 온 "피네간"이라는 이름의 술집 옆에. 빈치는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버나드 쇼 따위의 아일랜드 작가 계보를 잇는, 그리고 가장 많이 읽히는 아일랜드 작가라고 할 수 있음.)
더블린 교외의 달키 마을(사진. 위키피디아)
조이스는 1904년, 달키 초등학교에서 몇 주 동안 교사로 일했다. 디지씨는 달키 초등학교 교장이던 어윈Irwin을 모델로 한 것. 친영(pro-British) 인물이었다고.
※ 참조 도서
제임스 조이스 전기(리처드 엘먼)
율리시스(김종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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