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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상가 중에는 소설가가 여럿 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양반전>이나 <허생전> 같은 소설에서 조선 사회를
풍자할 즈음,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1759)라는 풍자소설을 내놓았다. 루소도 <신 엘로이즈>(1761)같은 연애소설을 썼으니 소설가로서 빠지지 않는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는 ‘캉디드’라는 청년의 좌충우돌 모험을 그린 콩트인데, 작품 배경과 맥락을 챙겨보고 읽으면 더 맛깔 난다.
조선 후기 소설을 읽을 때에도 얼마간의 기초학습과 각주가 필요한 것처럼.
주인공 이름 ‘캉디드’(Candide)는 ‘솔직한, 순진한, 숨김없는’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순진무구한 태도로
스스럼없이 몸을 던져, 닥쳐오는 일을 겪어내는 인간형이다.
이 순박한 청년 캉디드의 선생인 ‘팡글로스’(Pangloss)’는 ‘pan’ + ‘glossa’으로 만든 이름인데, ‘all tongue’,
‘all talk’이라는 뜻이다. ‘뭐든지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볼테르는 이 이름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따로 적어놓았다. 팡글로스는 16세기 프랑스 인문주의자 라블레가 쓴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에 나오는 파뉘르쥐Panurge라는 이름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팡타그뤼엘 이야기에는 주인공 팡타그뤼엘이 파뉘르쥐라는
인물과 나눈 우정과 모험이 담겨있는데, 파뉘르쥐는 여행을 하며 만난 세상을 풍자로 들려준다.
파뉘르쥐는 all energy,
all work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볼테르는 이 짧은 콩트 곳곳에 여러 장치를 드리워놓았고, 사람들은 볼테르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각주를 저마다 만들며 읽는다. 그 중 여럿은 여전히 토론거리이다. 볼테르는 어떤 의도를 갖고 이 소설을 썼으며 그리하여 <캉디드>는 풍자소설을 넘어 철학 소설로 남았다.
◆ 리스본 지진과 신의 섭리
1756년, 루소는 44세, 볼테르는 62세 때다.
아내 테레사와 장모와 함께, 에피네 부인이 마련해 준 에르미따쥬의 시골집에 살려고
내려온 그해 여름, 루소는 볼테르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볼테르가 쓴
시였다.
1755년 리스본에서는 1만 5천 명이 죽고,
1만 5천 명이 다친 지진이 일어났다. 그것도
11월 1일, All Saints’ Day에.
죄 없는 자, 죄지은 자 구분 없이 이런 재해를 겪게 하는 것이 과연 신의 섭리인지,
사람들은 고민했고 원망하며 비관적이 되어갔다.
어디 누구보다 신앙심이 투철한 리스본 사람들에게, 그것도 축일 오전
9시 40분에.
볼테르는 리스본 지진 소식을 듣고 그해 말에 <리스본 지진에 대한 시(1755)>를 쓴다. 왜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겼는가, 왜 신은 그것을
허용하는가? 세상의 불행이 필요악이라고? 왜 악이 정의를 넘어서는가?
왜 우리는 불공평한 주인(신) 아래에서 고통받는가?
그리고 이 시를 루소에게 보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둘은 이렇게 서로의 저술, 사상에 대해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루소에게 이 시는 ‘비관주의’였다. 인간과 자연의 불행에 대한 절망.
루소는 볼테르에게 25쪽의 긴 답장을 보낸다.
(Letter sur la Providence,
1756.8.18.) 편지는 아주 정중하고 찬사로
넘쳤으나, 볼테르에게 할 말은 했다.
리스본 지진을 놓고 인류의 불행을 비난하지 마세요…
인류의 불행이 신의 섭리 탓은 아닙니다.
리스본 시가지에 6~7층짜리 집들을 2만 호나 지은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므로. 그렇게 시가지에 밀집해서 살지 않고, 듬성듬성 살았다면, 지진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고, 피난하기도 쉬웠을 것 아닌가요.
합리적인 생각처럼 들린다. 그런데 루소는 선과 악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의 섭리는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다. 선도 악도 전체의 부분을 이루는데, 어떤 특별한 사건은 자연법칙이나 부차적 원인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의 섭리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랄까? 악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볼테르에겐 루소가 너무나 순진하게(어리석게) 보였을 것 같다. 캉디드처럼.
◆ 낙관주의
볼테르가 이 콩트 제목에 쓴 ‘낙관주의’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낙천적이네, 비관적이네’ 하며 쓰는 뜻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독일 사람 라이프니츠(G.W.Leibniz,
1646-1716)가 사용한 철학용어인 ‘낙관주의’를 볼테르가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낙관주의’는 ‘앞으로 잘 될 거야’ 하는 마음가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all is well’. 모든 것이 괜찮다. 이 세계는 현재는 최선의 세계다. 왜냐하면, 신은 전지전능해서 모든 가능한 세계를 알고 있고, 최선을 다해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이 최선을 다해 세계를 만들었으므로, 그 안에 악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최선이 된다. 즉, 필요악이다.
이 ‘낙관주의’는 현실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열심히 해서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지, 가 아니라 현 상황에 별 모순이 없다는 관점이다. 현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당시 프랑스의 논객들 사이에는 이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가 대세였다. 가톨릭 교회 논리도 결국 그런 거 아닌가. 세계는 선한 것이고, 그를 위해 악도 존재한다는 것. 세계는 결국 선을 향해 나아가므로, 즐겁게 살아가자는 낙관. 다 잘 되게 되어있으니 걱정 말라...불행도 신의 섭리 안에 있다.
신이 다 예정하신 것이다...
신의 뜻이다...
◆ 볼테르와 루소
볼테르에게 이 ‘낙관주의’는 “불행을 다독거리는, 잔인한 철학”이었다. (1756.2. Elie Bertrand에게 쓴 편지) 인민의 아편처럼. 그리고 운명론, 결정론적인 철학으로
보았다.
리스본 지진을 다룬 볼테르의 시에 루소는 반박 내용을 담은 정중한 답장을 보냈으나 볼테르는
그에 대한 반박 또는 비판을 담은 대응은 하지 않았다. 답 잘 받았다는 편지에 한번 다녀가라고 초대했을 뿐이었다. 루소는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고,(볼테르를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음...) 볼테르는
<캉디드>라는 소설로 루소에게 재반박을 했다.
제목도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1759)>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에 대한 반박이다. 또한 루소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실 놀리고 뒤틀고 위트를 섞었다. 웃기고 있네, 이 캉디드를 좀 보라구, 하는 거다.
소설에서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의 ‘팡글로스’는 루소를 가리킨다는 분석도 있다. 볼테르는 루소를 겨냥하는 글 <장-자크 팡소프 박사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Doctor Jean-Jacques Pansophe>를 발표했는데, 이때
‘팡소프Pansophe’란 역시 ‘모든 것을 아는’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설 곳곳에 루소의 주장을 조롱하는 내용이 있다.
“사람은 늑대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늑대가 된다.”(제4장) 같은 문장은 '자연 상태'에 관한 루소의 주장과 대치되는 것인데,
볼테르는 자연상태, 원시상태가 문명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보지 않았다.
캉디드가 팡글로스에게 들은 말이라며 “누구나 동등한
권리가 있다”(제10장)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루소의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관하여(1755)>에 대한 조롱임을 알 수 있다. 볼테르는 루소의 이 저술에 대해 “당신 책을 읽으면 내가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 같다.”라고 한 바 있다.(1755,8,30.
루소에게 쓴 편지)
그 밖에도 “결국, 그들은 4분의 1이 인간, 내가 4분의 1만큼 스페인인 것처럼” (제16장), “어떻게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살 수 있나”(제16장) 등 루소의 주장을 조롱하는 내용이 많다.
◆ 우리의 밭(정원)을 가꾸자
순진한 캉디드가 애인 퀴네공드, 스승인 팡글로스와
함께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뒤 자기들의 삶이 왜 이렇게 부조리한지 고민하다가 결국 하는 말은 '자기 밭을 가꾸자’는
것이었다.
팡글로스의 주절주절에, 캉디드가 마지막으로 한
말,
“말은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밭일해야 되거등요.” 라고 나는 읽었다.
<캉디드>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뭔가에 반박하기 위해
쓴 소설이다.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와 루소의 여러 주장이 그 공격 대상이다.
누군가를 까기 위해서 쓴 것이라, 볼테르가 자기의 새로운 주장을 크게 하는 건 아니다.
낙관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비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세상은 최선의 상태가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정도?
선과 악 사이의 균형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볼테르는 ‘자기 밭을 가꾸자’라는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 같다.
나는, 볼테르의 말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낙관주의’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긍정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볼테르가 비판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낙관주의’가 아니라
라이프니츠 류의 낙관주의였고, 그들의 낙관주의는 태생부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무지, 자기만족, 자기 방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의 정답을 찾으려고 낑낑댄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때로는, 정답을 찾으려 고민하기보다는, 그 문제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답을 찾게 되기도 한다.
거창한 고민을 하더라도, 일상적 삶, 구체적 삶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세상이 선이냐 악이냐, 하는 문제에 골몰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답을 당장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답은 내가 찾게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세상이 선이라고 해서, 선으로만 가득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니까.
마지막 장에서 캉디드가 깨달음을 얻었던, 터키 농부의 말이 와 닿는다.
이 농부에게 가장 큰 악이란 ‘권태, 악덕, 빈곤’ 세 가지라는 것.
“우리 밭을 가꾸자”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는데, 나는 이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네.
- 자신의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 삶의 의미가 있다.
- 뭐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농부가 일을 해야 농사가 되듯, 자기 생각을 일구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
- 말만, 생각만 하지 말고, 뭔가 실질적인
걸 좀 해라.
- 이상적인 삶은 내가 가꾸어야 한다. 딴 데서
찾지 말고.
(‘garden’은 원래 ‘paradise’라는 뜻. 소설 처음부터 ‘garden’,’낙원’,’엘도라도’
모티브가 반복됨.)
- 삶의 의미가 뭔지 찾느라 징징 대지 말고, 삶을 살자.
◆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대의, 아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둘은 왜 그리 잘 지내지 못했을까? 볼테르의 질투와 찌질함이 통제력을 넘어선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주관적인 관전평)
볼테르는 루소와 가깝게 지내며 싸우고 논쟁하고 싶었는데, 루소는 볼테르에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볼테르는 루소가 ‘시계공의 아들’이라느니 ‘철학을 배반한 유다’라느니, ‘아무나 물어뜯는 미친개’라느니, ‘<신엘로이즈>는 사창가와 정신병원에서 쓰인 것’이라느니 하는 막말을 하곤 했다. 게다가 루소가 꿈에 그리던 고향 제네바로 돌아가려 했을 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공작을 펼친 사람이 볼테르라는 말도 있고...상당히 신빙성 있고...
아무튼, 자신에게 별 반응이 없는 (비판과 호의 모두에) 루소에게 볼테르 혼자서 더 날뛰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루소가 그 뒤에 볼테르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긴 하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볼테르가 루소를 제네바에 돌아가지 못하게 했던 처사를 짚은 편지였다.
볼테르는 루소에게 답하지 않았고, 다시 루소 욕을 하고 다녔다.
“미친놈” “원숭이 새끼”...
둘 다 신경과민이 보통이 아닌데...보기엔 루소가 더 예민할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볼테르가 더 만만찮다. 볼테르가 루소에게 했던 비난은 논쟁을 넘는 인신공격일 때가 많았고, 루소는 끙끙 앓으면서, 산책이나 하며 마음 다스렸다. 기껏 대응한다는 게 또 아주 정중한 태도여서 볼테르는 더 화났을 것 같다.
볼테르는 그 뒤에도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긴 했는데 -한번 다녀가라고 – 루소는 가뿐히 무시. (루소에게 감정이입해서 보면, 먹고살 만했던 볼테르와 달리, 루소는 하루하루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데...볼테르 사는 곳까지 여행할 만한 건강도 안됐었고. 자기가 루소 집에 방문하면 될 것이지. 당시 루소는 그의 말 한마디 들으려고, 철학자들이 먼 길을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고 그랬는데 말이지.)
볼테르는, 내가 한번 오라는데 안 와, 하는 심정으로...다시 루소를 인신공격하는 글을 발표하고 (루소라고 딱 밝히지도 않고. 바보 새끼 하나가 있다...이런 식으로.) 루소가 아이들 고아원에 보낸 것도 볼테르가 이때 터뜨렸지. 따져보면 볼테르에게 너무 실망스러워져서 그만 할란다. 아무튼, 볼테르가 루소에게 했던 처신들은, 볼테르가 아니었다면 찌질이 미친놈이라 욕먹을 만한 것들이었음요. 자유와 관용의 경계는 크게 넘지 않았는지 몰라도, 자기감정 통제력은 넘어도 한참 넘어간.
두 사람의 이런 성정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상은 인류를 밝혀 주었나니~
"볼테르는 개혁가들이, 루소는 혁명가들이" 추종한다는 차이점이 있으나
둘 다 방광이 안 좋아 고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 참조 도서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 (펭귄 클래식)
루소와 혁명(듀란트, 문명이야기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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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