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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의 제1장은 ‘탑’, ‘텔레마코스 에피소드’ 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조이스가 붙인 건 아니고, 독자들이 읽기 편하라고 나중 사람들이 붙여줬다.
첫 장면은, 더블린에 있는 웬 탑. 이 탑에 사람이 산다. 아침 8시, 벅 멀리건이라는 사내가 거울 앞에서 면도하는 장면으로 시작. 이 남자의 친구인듯한 사내 둘과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나누다가 아침을 먹고, 탑을 나와서 제 갈 길을 찾아 하루를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뭥미? 블룸과 몰리 부부 이야기 아니었어?
아니더라.
등장인물 셋
- 벅 멀리건 : 마텔로 탑에 산다. 의학도.
- 스티븐 데덜러스 :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고, 문학적 야망이 있는 젊은이. (제임스 조이스 젊을 때와 같네.)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 멀리건과 친구.
- 헤인즈 : 영국인 대학생. 예수회 교도. 멀리건과 친구. 아일랜드 민속 연구차 마텔로 탑에 잠깐 얹혀 삼.
딱히 뭔 사건이 있는 건 아니고, 이들이 나누는 ‘잡담’이 주 내용. 이 젊은 남자 셋은 면도하고, 밥상 차리면서, 아침부터 예수회나 아일랜드 문학에 관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살짝 티격대격한다. 1904년 아일랜드와 영국의 청춘이라는 점을 참작하고 듣는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 합병된 지 100년쯤 지났고, 나라는 종교 때문에 너덜너덜해졌고, 무장 독립투쟁 전야였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결국 스티븐 데덜러스의 이야기다.
스티븐 데덜러스는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이자 조이스 자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젊은 예술가 지망생이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면 <율리시스>를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고 왔다. 내겐 ‘읽었으나 잊어버린 책’이었는데, 구절구절 씹어 읽게 되더라. 청춘 때 읽었던 책 다시 읽는 기분, 아는 사람은 알 꺼야.
※ 스티븐 데덜러스: ‘스티븐’은 기독교 최초 순교자인 성 스데반(St. Stephan)에서, 데덜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대공장, 미로를 발명한 다이달로스에서 왔다. 스티븐의 주제는 언제나 예술과 종교다.
스티븐과 종교
멀리건은 스티븐을 좀 비꼬는 듯하고, 스티븐은 멀리건에게 맺힌 게 좀 있는 사이다.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예수회를 경멸하는 스티븐에게 멀리건이 하는 말.
"자네는 무릎을 꿇을 수 있었잖아. 자네의 숨이 꺼져가는 어머니가 자네한테 요구했을 때 말이야. 나도 자네만큼 냉혈동물이야. 그러나 자네의 어머니가 최후의 숨을 거두면서 자네더러 무릎을 꿇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고 청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데 자네는 거절했어. 뭔가 자네 몸 속에 악성이 깃들어 있어... "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스티븐이 멀리건의 집에 갔을 때, 멀리건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누가 왔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오, 단지 자기 어머니를 짐승처럼 죽인 데덜러스일 뿐이에요.”
스티븐은 친구의 이 말이 맺혀있는데...멀리건은 자기가 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는단다...
“자네는 자네 어머니가 죽음의 침상에서 자네더러 무릎을 꿇고 기도하도록 요구했는데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어, 왜? 자네는 몸 속에 저주할 예수회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단지 그것이 잘못 주입된 거야. […] 그녀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기쁘게 해드려야지. 자네는 그녀의 임종의 소원을 거절했어 그러고도 내가 랄로우에트 상에서고용된 어떤 회장군처럼 흐느끼지 앟는다고 해서 나한테 뾰로통해 있어. 당치도 않게! 내가 그렇게 말했을 테지. 나는 자네 어머니의 영을 모독할 뜻은 아니었어.”
스티븐은, "말들이 자신의 마음에 남긴 갈라진 상처를 은폐하면서, 아주 냉정하게 말했다. " "나는 어머니에 대한 모독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나에 대한 모독을"
어머니의 임종에서도 끝내 종교를 부정했던 조이스 자신의 이야기다.
조이스는 1903년,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더블린으로 급하게 돌아왔다. 그해 여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율리시스>에서 스티븐이 멀리건과 이 대화를 나누는 때는 1904년 6월 16일. 1년 동안 스티븐은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때 낀 번들거리는 까만 코트 소매”, “매독에 걸린 술꾼이 입다 버린” 것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과 어머니의 관계를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해보란 말이야. 종교가 너에게 어쨌다는 건가? 넌 그걸 안 믿어도 돼. 그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거야. 그 밖엔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 넌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릴 수 있지.”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스티븐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또 하지 않겠는가를 말해 주마. 나는 내가 이제 더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길 수는 없어. 그것이 비록 나의 가정이건, 나의 조국이건, 나의 교회이건 말이야. 그리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인생 또는 예술의 어떤 양식 속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도록 노력하겠어. 또한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허용된 유일한 무기들, 즉 침묵, 유랑, 그리고 간지를 사용토록 할 거야.”
스티븐은 어머니의 임종에서 무릎 꿇지 않았던 일을 자책하고 있을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까?
“고통, 아직 사랑의 고통이 아닌 고통이, 그의 마음을 쑤셨다.”
코딱지초록빛 - 스티븐과 아일랜드 예술
문학 한답시고 다니는 친구 스티븐을 멀리건은 다소 냉소하는데
스티븐의 손수건이 어찌나 꾀죄죄했는지, '시인의 코수건'은 코딱지초록빛이라며, 빈정댄다.
“우리들 아일랜드 시인들의 새로운 예술 색채야 : 코딱지초록빛. 자네 그걸 거의 맛볼 수 있을 테지. 그렇잖아?”
“코딱지초록빛 바다. 불알을 단단하게 하는 바다. 포도주 빛 바다. 아 데덜러스, 그리스 사람들!”
멀리건이 면도 하며 보는 거울이 금으로 갈라져 있거든. 그 거울을 스티븐이 들여다보자 멀리건이 거울을 가져가면서 한마디 하는데, 그게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을 인용한 말이고...하는 각주가 주르륵 나온다. 이때 스티븐이 하는 말,
“그건 아일랜드 예술의 상징이지. 하녀의 갈라진 거울 말이야.” 제1장에서 핵심 문장을 고르라는 시험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이 문장일 거야.
나는 여기서, 조이스의 조어 능력, 말장난에 잠시 웃고 간다.
코딱지초록빛 바다, 불알을 단단하게 하는 바다. 코딱지초록빛(snotgreen), 불알을 단단하게 하는(scrotumtightening). 조이스가 만든 두 단어다.
아무리 도입부라 해도 그렇지, 뭔 상황인지 알 수도 없고,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르겠고, 책을 덮을까 말까 망설이는 딱 그 지점에서 이 두 단어는, 어, 좀 웃기네, 하고 독자들의 판단을 유보하게 한달까? 소설이 말이야, 줄거리나 캐릭터가 있어야 소설이지...조이스야말로 고전은 재미없다는 인식을 퍼뜨려서 사람들을 문학에서 멀어지게 한 주범이야...라고 생각하려다가 조이스를 약간 용서하게 되는 순간이다. 조이스의 언어 유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신조어만 2천 개 가량 나온단다)
▽ 코딱지초록빛이라고 표현되어있다만
나는 스티븐의 어머니가 침상 곁에 토해낸
"녹색의 질퍽한 가래침" 색이라고 읽었음...이런 색?
조이스가 쓴 이 문장은 일종의 형용어구(epithet:에피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에피세트는, 고대 서사시나 북유럽 사가에 곧잘 나오는 일종의 제사. ‘침묵공 오란여
’ , '사자왕 리처드'할 때, ‘침묵공’이나 '사자왕' 같은 말이 에피세트라고 할 수 있겠다. 호메로스의 <오딧쉐이아>에 나오는 "슬기로운 텔레마코스", “포도줏빛 바다" 따위의 말들이다.
조이스는 이 “포도줏빛 바다” 를 패러디한 것. 호메로스는 그냥 ‘바다’라고 하지 않고 굳이 ‘포도줏빛 바다’라고 계속 말하는데, 지중해, 에게 해 모두 눈부시게 푸를 텐데 말이지. (호메로스의 바다가 왜 ‘포도줏빛’이냐 궁금하면 참고)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에서 쓴 ‘포도줏빛 바다(wine-dark sea)’라는 말은, 소설 제목도 여럿 있고, 하나의 관용구가 됐다. ‘포도줏빛
바다’ 하면, 호메로스의 그 바다를 말하는 거지. 코딱지초록빛 바다는 더블린 앞바다를 말하는 거고.
"포도줏빛 바다 한가운데에 크레테라는 나라가 있는데 아름답고 기름진
그곳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요." (오딧세이아 제19장)
그나저나 불알을 단단하게 하는 바다는 어떤 바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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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