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침체가 가져 온 사회현상 중에 엄한 이민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극우 포퓰리즘이
있다면, 반대로 역이민이 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의 ‘엑소더스’를 든다. 일자리를 찾아 나라 밖으로 가는데, 특히 옛 식민지였던 나라로 다시 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로 이민
가는 포르투갈인들이 급증하고 있어서, ‘두뇌 유출’, ‘식민지 역
귀환’, '상황 역전'이라는 말이 오간다.
[모잠비크]
모잠비크로 갓 이주한 한 포르투갈인 L씨(37세), “앞으로 4,5년간 포르투갈 경제는 더 어려워
질 것이다. 포르투갈의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1498년에 상륙한 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를 식민지로 삼고, 금과 상아를 털어갔다. 땅도 비옥하고, 자원도 많은 이
나라는 그 뒤로 5백년 가까이 포르투갈에 뜯기고 만신창이가 됐다. 포르투갈은 노예제도도 가장 늦게까지 유지했고 착취도 악랄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1962년부터 무장 투쟁으로 1975년 독립 쟁취.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나 서방세계를 뒤에 업은 반공세력과 내전이 이어졌다. 모잠비크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뒤덮였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생겨났다. 1992년,
17년간의 내전을 끝내고 경제 개혁과 친서방 개방정책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줄곧 경제성장률 7~8%를 기록. 북쪽 지방에는 석탄이,
해안 쪽에는 가스가 대량 발견되고 있다. 석유도 나올 거라고 예측한다.
모잠비크 입장에서는 옛 착취자들이 귀환하는 것이라 반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급인력과 투자자들이 와서 일자리를 만들고 있으니, 애증관계일 수 밖에. 모잠비크의 역사학자 라파엘 시카니(Rafael
Shikani)는, 이 애증관계의 배경으로, 내전 시기에 포르투갈이 모잠비크 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양국 관계가
등 돌린 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았다는 것. 1986년 사모라 마셸 대통령이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 포르투갈은 환호했다는
것도 덧붙인다. 내전에서 프렐리무에 맞선 반정부 세력에 대해 미, 영
등의 서방세계와 함께 포르투갈, 남아공의 암묵적 지지가 있었음은 알려진 사실.
▶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 무장독립투쟁으로
500년의 식민지 착취를 끝내고 모잠비크 독립을 이끈 사람. 1975년에 초대 대통령이 된 건국의 아버지.
▶ 프렐리무(Frelimo) : 사모라 마셸이 창설한 무장투쟁조직 ‘모잠비크 해방전선’의 이름이다. 이후 맑스 레닌주의 노선의
프렐리무 정당이 되었고, 프렐리무 정권이라고 함. 마셸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 사고는 의혹이 여전히 분분하다. 프렐리무는 마셸 사망 후 친서방 개방노선을 택했다.
경제 붐이 시작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국민
절반이 절대빈곤 속에 살고 있는데, 포르투갈인들은 그 문제는 당연히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 역사학자는 포르투갈인들의 귀환이 걱정스럽다. 사회혼란과 갈등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여전히 포르투갈인들은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옛 식민지를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할 뿐이므로. 역으로 외국인 혐오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잠비크 정부가 이민자들을 신중하게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의 재정 윤리학 교수 더 브라윈도 비슷한 주장이다.
포르투갈의 전문인력이 모잠비크에서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 경제 침체기가
지나면, 그 나라를 떠날 사람들이 말이다.
이제까지 ‘인적 자본 유출’은, 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 방향이었는데,
그 방향이 역전되었다고 분석하는데, 포르투갈의 의사, 변호사, 건축가, 기술자들이 남반구로 급격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잠비크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은 수도 마푸토의 외곽에 자리잡는다. 그들에겐 그조차도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현지의 관료주의와 씨름하며,
적법한 서류와 체류허가를 받는 데 애를 먹는다. 식민지배자와 식민지인의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포르투갈 투자자와 기업들도 뭐 줏어먹을 게 있을까 흘끔거린다. 은행, 제조업, 건설사, 정보기술 분야 기업들이 모잠비크로 옮겨가고 있다. “
“모잠비크인들은 주의해야 한다. 포르투갈 전문인력에
의존하게 되면, 유럽 경제 침체기가 끝나고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 그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게 될 테니 말이다.”
포르투갈에서 건설업을 하던 이민자 R씨는,
부친이 모잠비크에서 몇 해 생활하며,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고,
본인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기반시설을 이제 놓기 시작하고 있는 모잠비크에서
그의 사업은 번창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울했던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희망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
R씨의 말 중에 눈길을 끄는 부분. “유럽은 잘못
길들여진 아이와 비슷하다. 우는 아기는 당장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다. 지금 유럽은 잘 안되니까 바로 패닉 상태가 되는데, 사무실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고장이야’하고 외칠 게 아니라, 계단 걸어 올라가면 되잖아?”
현 대통령 구부자(Armando Guebuza)는 프렐리무에서 싸웠던 해방 투사다. 식민지배자들을 쫓아낼 때 24시간 안에, 짐 20킬로그램만 들고 떠나라는 “24
20”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지금은 자신과 그 가족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라고
한다. 경제 성장을 자기 배 불리는 일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뇌물 문화와 부패 청산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모잠비크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는 포르투갈인 F씨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서 희망을 본다. 젊은이들이 아주 진취적이다. 20년쯤 지나면 포르투갈 따위는 쉽게 볼 것. ‘늙은 유럽’이 배울 것이 많다.”
▲ 이코노미스트와 페이스북이 분석한, 그 시절 유럽 제국들과 전세계 얼친 분포도(출처 : The Economist, The sun never sets)
[앙골라]
15세기 말 앙골라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은 루안다를 근거지로 삼아 아프리카인들을 식민지 브라질로 끌고 가고, 수 세기 동안 노예무역을 했다. 앙골라는 1961년 “2월
4일(The Fourth of February)”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에 맞서 싸워서, 1975년 독립했으나 2002년까지 내전이 이어졌다.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의 공항에도 포르투갈 이민자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2007-08년까지만 해도 앙골라에 사는 포르투갈
국적자는 4만5천 명이었으나, 1년 뒤에는
9만2천명. 내전에 시달린 앙골라 사람들이
포르투갈로 갔던 게 그리 옛일이 아니다.
내전이 끝난 뒤 경제성장률은 두 자리 숫자까지 치솟았으며, 앞으로는 7~10%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 포르투갈의
건설사와 은행이 대거 진출했는데, 상황은 다소 역전되어서, 앙골라의
공공, 민간부문 모두 포르투갈을 실눈 뜨고 바라보고 있다고.
포르투갈 사람 P씨, “예전엔 앙골라인들이 포르투갈인을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반대다.” 역전 상황이 된 것에 사람들이 익숙해져야 한다며, S씨, “식민지와 종주국 사이의 역학이 이렇게 뒤바뀐 것은, 아프리카에 처음 있는 일”
※ 관련기사
1. An ex-colony may be getting the better, in economic
terms, of its old master (이코노미스트)
2. 유럽 경제침체가 두뇌유출에 새 방향을:북에서 남으로(Europese recessie geeft brain drain nieuwe richting: van
noord naar zuid, 흐로닝언 대학)
3. Portuguese seek future in Mozambique(파이낸셜 타임즈)
4. 포르투갈인들의 옛 식민지 귀환(Portugese wederkomst in de vroegere kolonie, de Volksk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