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취업도 돈이 있어야 하는 세상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김지혜
돈으로 안 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제 그 답에 대기업 취업도 넣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 취업이 갈수록 힘들어지면서 청년층(15~29)의 고용률이 40%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가 힘들었던 IMF때에도 40%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았던 청년 고용률이 요즘 더 최악을 달리고 있다. 실업률로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나라들이 많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무기력한 청년백수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유로존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12.2%, 스페인의 경우 26.8%로 국민의 4분의 1이 실업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률 3.4% 청년층은 8.4%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률 8%라는 숫자 자체는 그들이 느끼는 체감온도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청년층’들은 외치고 있다. 좁아진 취업문에 과열된 스펙쌓기로 굉장한 노력 없이는 선호하는 직장을 가질 수가 없다.
이 스펙쌓기라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는 입사원서의 항목만 보아도 엿보인다. 어학성적, 해외 유학경험, 공모전 수상내역, 인턴십 경험, 봉사활동 등 다양한 항목들이 나열되어있다. 이런 것이 다 기업입장에서는 지원자의 역량을 알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많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을 더 파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키, 몸무게, 집의 소요 여부, 부모님의 월급액 등과 같은 무엇을 보려하는지 의도가 불순한 항목도 간혹 있는 곳이 보인다. 문제는 세련되게 포장해놓은 입사원서 항목 속에, 암묵적으로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이 부모의 소득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어학 성적에 영향을 미치고, 이 점수가 대기업과 공기업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직장의 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부모의 소득계층과 자녀의 취업 스펙’ 보고서를 3일 발표했다. 2009~2010년 대학을 졸업한 1만4349명을 대상으로 입학 당시 부모의 소득을 조사해 분석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부모의 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일 경우 자녀의 평균 토익 점수는 676점으로 월 700만원 이상인 부모의 자녀(804점)와 128점의 차이를 보였다. 또 부모의 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인 경우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대졸자는 10% 수준에 그쳤지만 월 700만원 이상은 세 명 중 한 명(32%)이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학점의 경우 부모 소득에 따른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대기업·공기업·공무원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대졸자 3133명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취업에는 토익 점수와 어학연수가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취업 확률은 토익 점수 10점당 3%, 어학연수 경험이 있을 경우 49% 높아졌다. 공기업의 경우 토익 점수 10점당 취업 확률이 4% 높아졌다. 대기업보다 토익 점수의 영향력이 더 큰 것이다. 이 연구외에도 청년구직자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 ‘원서 통과되는 최소 스펙’들을 접할 수 있다. 결국 취업준비생들이 어학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더 선호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투자가 과연 얼마나 들어가는 것일까? 가장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인 시험 응시료와 토익 교재 기본서만 계산해보았다. 요즘에는 영어말하기 시험인 토익스피킹 혹은 오픽도 기본 조건이 된 회사들이 많다. 그런데 이 응시료라는 것이 한 번에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보통 3번이상은 꾸준히 보게 된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토익 응시료(4만2000원) x3 + 토익스피킹 응시료(7만7000원) x2 + 각각 교재 기본서(6만원)
= 34만 원
일단, 이정도가 보통 대학생들이 쓰는 준비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주3일반 영어학원비(13만~15만원)에 학원 교재까지 더하면 50만원 가까이 된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최소 지원 성적인 토익 이과 600, 문과 700점을 만들려면 보통 학생들이 이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다 합격권 점수대를 맞을려고 계속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어학만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된다. 그러니 그 외에 원서사진, 인적성 준비 비용, 면접비용까지 합하면 취업도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기사에서는 스펙을 위해 한 사람당 평균 4300만원이 들어간다고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젊은 층의 눈이 너무 높아져 스펙에 더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예전보다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기준이 달라진 것은 맞다. 그들이 자라오면서 생각해온 ‘직장’이라는 곳의 최소한의 수준이 올라갔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 졸업생의 숫자가 옛날보다 훨씬 많아진 48만 명인데 일자리 수는 그리 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최소한의 수준, 생계를 이어가며 미래를 바라보기에 적당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
이에 대해 최근 정부에서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어두운 인식을 벗어내고, 제대로 된 일자리로 ‘시간제 정규직’을 만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점은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정책 안에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싼 값에 쓰는 노동력으로 변질되어가는 인턴처럼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 일을 통해서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하는, 즉 정규직 개념이 들어가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는 인도의 엄격한 카스트 제도와 비교할 만큼 커다란 차별이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점심 먹는 공간까지도 비정규직은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열악한 곳에 배치되는 사업장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처음 시작이 비정규직이면 다시 다른 비정규직으로 이직하는 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은 다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본이 된다. 그러기에 예산낭비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추후에 금전적 지원이 끊기면 사라져버리는 일자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일자리가 생기도록 하여, 억지로 정부 정책에 맞게 한시적으로 반짝 있을 일자리가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창시절 수능보고 대학원에 간 시간이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어요. 열심히 하면 됐으니까요. 하지만 취업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회사에서 저를 선택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최근 기사에서 인터뷰한 한 직장인의 말이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청년들이 사회의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돈에 의해 ‘직업 세습’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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