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영등포지역을 단기필마로 평정한 만각님 무용담 기사출고를 압박하다가 나 혼자 지쳐버려서 질러보는 사학재단에 관한 잡설이다. 다음 번 돌림빵 기사는 만각형님의 <응답하라 1974, 영등포 용쟁호투>가 되시겠다. 돌림빵을 기대하시라.
한국사학재단의 원생적 형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만각 흉아의 나와바리였던 영등포를 기점으로 생각할 게 있다. 경인 전철에 대해서이다. 전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그날 영부인 육여사가 밥통을 겨냥한 육혈포 흉탄에 돌아 가셨는데...이전에 경인선 기차 통학을 따라 비평준화 날고등어들의 영토 분쟁이 있었다. 영등포를 중심으로 노량진부터 오류역까지는 영등포공고 아이들 나와바리, 소사역에서 인천역까지는 선인재단 나와바리, 용산에서 서울역까지는 남산공전 나와바리였다. 야들이 바람처럼 흘렀다. 나도 흐른다. 빨간 마후라까지 하고.
선인, 영등포공고, 남산공전 다니는 날고등어들은 당꼬 쫄바지에서 판타롱 나팔바지까지 설운도, 태진아가 입고 나오는 검은동복, 하복, 교련복, 체육복을 세탁소 수선으로 유행에 따랐다. 얘네들은 젓가락, 포크, 경양식집 나이프, 손도끼, 자전거 체인, 체인에 면도날 박기, 구두골 등을 사용했서 나와바리 싸홈을 했다. 웃지마라! 날고등어들도 마음만은 왕우와 이소룡이다. 용쟁호투같은 비평준화 시절 똥통학교 다니던 날고등어들의 비애 잔혹사이다 .
창자를 뽑아 버린다는 말? 대권을 구십구프로 거머 쥔 이회창 후보가 쓰시고 난 후 국민유행어가 된 말이다. 고대출신 기자가 뜸만 들이면 다된밥님, 이회창 후보에게 싫은 기사를 쓰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시다. 경기고 나오시고 대법관까지 지내신 분이라서 18쇳소리는 못하시고 생물학적인 전문용어로 일등 학벌을 과시하며 고대 막걸리를 석 죽일 때 쓰신말이다. 그런데 이 다된밥 님께서 쓰신 국민유행어는 경인선 용쟁호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날고등어들이 무용담을 떠벌리는데 극적 효과로 항용쓰이던 말인 것이다.
이런 날고등어 전문용어를 여당후보 다된밥 님께서 사용하시다니 기사를 본 나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평등하며 축복받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최고 엘리트와 날고등어 불량고삐리까지 서로 소통되는 통합적 언어를 쓰는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데 총(?)탄을 금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토론은 전문가들이 하시고 나는 사학재단의 족보캐기에서 그치겠다. 왜냐면 정치방에 글은 써야겠고 밑천은 짧아서이다.
내가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최고 엘리트 집단, 경기고에서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못할 거라는 아주 촌스런 이유 때문이다. 이유야 많지만 떠날 때는 말 없이, 미련 또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노통 돌아가신 그날 밤, 술에 취한 나는 주민증을 구겨 버렸다. 필요해서 재발급 받았지만 정신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반납한거다.
아직은 경성제일중학교 출신 대통령이 없는 나라라는 것에 한표가 있다. 평등하다는 위안에 힘입어 아직 나와 어린 아이들이 이땅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무라이보다 기미가요를 잘 부른다는 만주 낭인이 내가 태어날 무렵에 숭고한 해방과 민주주의를 밀반출하고 쪽바리들의 교육을 받은 가스통할배들이 거리를 유린하지만 아직은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교육평등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대통령의 외동아드님이 중학교에 입학을 앞 둔 몇 년은 문고리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많은 책사가 파리채에 맞듯 납짝하게 사망했을 듯싶다. '네 아드님 입학문제를 해결했습니다.'라는 답을 내지못하고 급한대로 청와대로 시강원 설서 이황, 이율곡, 공자, 맹자를 불러 과외를 하였어도 땡이었을테니 말이다.
대통령 외동아드님이 경기중학, 아니 대통령께서 흠모하는 일본 정신을 이어받은 경성제일중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이게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독재 국가의 면모가 되겠냔 말이다.
이에 몇몇 구라파 물을 먹은 아첨꾼들에 의해 판을 갈아 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혁명적 평준화라는 말이다. 프랑스에 가니까 소르본느 대학이 파리 제 몇 대학이라하던디... 하고 68혁명 흉내를 내 본 것인데 밥통께서, 밥통보다도 부인게서 좋아하신 거다. 근데 령부인보다 더 좋아한 건 베이비붐 세대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좋아한다. 기회의 평등. 그런데...
돌리고 돌리고...인천시내는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곡소리가 났다. 왜냐하면 중학교 뺑뺑이 때문이었다. 똥통학교에 배정받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였다.
이분 이름을 아는 사람 있으신가? 방효열. 없나? 없으신가? 이분이 대한민국 역사와 인천의 베이붐세대의 눈물을 쏙 빼놓은 중요한 분이시다. 바로바로 백선엽 백인엽을 이땅에 보내 황국신민화를 해방조국에서 박통과 함께 완성하시려던 낭인3총사, 이른바 만주인맥 3B 중에 두 분을 낳으신 분이시다. 이분 함자가 '효열국민학교'라는데 두 글짜나 들어있다. 인천의 사립명문 초등학교 이름이다. 자 이분의 자식들이 만든 학교 이름들을 거명하여 보겠다.
진홍 유치원: 백선엽 조카 백인엽 아들 이름을 딴 유치원
효열국민학교: 방효열의 두글자.
선인중학교: 백선엽, 백인엽 똥별들 이름 한자 씩
선인고등학교: 위와 같음
인화여중: 여자 형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백인엽 인에 꽃화자를 붙였다.
인화여고: 위와 같음
선화여중: 백선엽 똥별 이름 기념 여자학교
선화여상: 위와 같음
운봉공고: 백인엽 호를 학교명으로 지음
운산공고: 백선엽 호을 학교명으로 지음
항도중, 항도실고: 작명 사유 불상, 전수학교
선인공전: 고등학교 3년 플러스 전문학교 과정 2년제를 결합한 5년제 학교.
인천체고:
인천체육전문대:
선인빵고: 선인출신 애들이 사고 저질러 빵에 가면 이렇게 불렀다.
이 똥별 형제는 무슨 생각인지 이상 14개의 학교를 지었다. 학교 짓는 방법은 땡 쉬었다. 인천 화교 집단 묘지가 도화동 언덕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는데--이게 묘하게 생겼다. 붉은 벽돌로 지어 지상으로 문이 나 있는데 육니오 이후 이북 피난민들이 들어가 살았다.-- 여기에 사는 것들은 묘지에 불법으로 사는 것이니 군부대 불도저를 끌고 나와 까부수는 거다. 중국 화교들은 토지재산을 가질 수 없게 밥통이 만들어 놓았으므로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다.
땅만 있다고 짓나? 땅만 있을리가 있나? 미군이 쓰다 냅두고 철수한 군부대 중장비가 있다.
중장비만 있나? 건설 인부가 있어야지? 월사금 내고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등교하면 등짐으로 벽돌 50장씩 날라 놓고 수업시작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점심 먹고 10장, 방과 후 20장을 공사 현장 산꼭대기까지 올려 놓지 않으면 집에 안보내 줬다고 한다. 돈받고 교련복 입혀 공사장 인부로 썼다.
인부만 있으면 안되지? 관리는 선생들을 십장으로 써서 해결했다. 아이디어 참 좋다. 선생들은 예비군복 입혀서 교련복 입은 학생들을 오함마 곡괭이 자루로 패댔다. 선생들은 자격증 있는 넘들이 없었다. 그냥 까라면까는 군바리 출신들이다. 영어 선생은 원래 교련선생, 월남 갔다 온 공수부대 출신 하사관이 교사자격을 가진 여자 영어 선생이 그만두자 오케이, 굳잡, 바뀨를 잘 해서 영어선생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밥통 외동 아드님이 경성제일중학교에 입학할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인천의 비극을 낳았다. 인천에서는 째단--선인재단 학교들을 인천에서는 째단이라 불렀다.-- 은 당연히 기피 대상이 아니겠는가? 여자로 치면 인일여고, 인천여고, 인천여상, 박문여고를 못가면 인화 선화는 쳐다보지도 않고 소사의 소명여고로 갔다. 소명, 얘들은 좀 쁘르르 바람끼도 있고 이뼜다. 째단학교는 포로수용소이고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생각했다.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를 선인재단을 보고 만든 게 아닌가 퍼뜩하다.
뺑뺑이로 말미암아, 누구도 가지 않으려던 째단 학교에 배정 받은 애들은 눈물바다였다. 그것도 10여개 중학교 중에 3개가 째단 학교였으니...배정 입학까지는 단지 두려웠을 뿐이지만고 실제 생활은 지옥이었다. 등록금을 하루라도 밀리면 죽는 다는 전설의 째단 - 나는 지금도 선인,인화,선화에 떨어진 영혼들을 옥황상제께서 손수 위로해야 된다고 본다.
밥통 외동아드님 덕에 기회 평등이 근 50년 유지되어 오다가 최근 무너졌다. 에전에는 군바리들이 중장비로 학교를 찜했는데 이젠 재벌들이 학교를 찜하는 세상이다. 삼성성균관대학교, 두산중앙대학교도 모자라서, 대학건물이 돈낸 재벌 이름으로 분칠되고, 삼성고등학교가 생기고, 하나은행중학교가 생기고...여기에 영훈중학교에 서류위조로 재벌아들이 들어가고 인천국제학교 때문에 재벌가 며느리들이 줄줄이 전과자가 되었다. 나라가 어디서 부터 망하는지 똑 부러지게 아지 못하지만 씁쓸하다. 차라리 걍인선 용쟁호투 잔혹사 시절이 더 평등했던 것 같다. 다함께 차차차. 폭력적 사학재단이 무너지는 동영상을 감상하시라. 하지만 영원히 재벌사학 재단은 영원할 것 같다.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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