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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1.04.04.월요일 정치불패 자몽주스
Daum의 도르트문트 축구경기장
폭탄 제거 이야기
이곳 시각으로 3월 31일,
독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도르트문트의 축구 경기장에 설치된 폭탄 3개가 터지기 전에 안전하게 제거됐고 범인도 잡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도르트문트
스타디움
그리고 4월 1일, 잠깐
Daum에 접속했던 나는 스포츠 란에서 도르트문트 경기장에 폭탄이 설치되었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한다. (읽지는 않았음) 그걸 보자니 잠깐
지난번에 독일의 국방장관이 사퇴한 스캔들에 대해 글을 올리기 직전에 느꼈던 망설임이 떠올랐다. 그때 이따위 남의 나라 일에 누구 하나 관심이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헌데 오늘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도르트문트 폭탄 설치 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그런 내 망설임은 근거가 없었던 거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나라 일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어 하는 거다. 헌데 이 나라 독일에서 일어난 축구장 폭탄 설치 사건보다 더 쇼킹하고 재미난 사건이 있는데, 그에 관한 기사는 좀체
발견하기 힘들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도르트문트
축구장 폭탄 설치 건은 더 쇼킹할 수도 있었을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으니 해외토픽 감으로는 좀 약하다. 일단, 폭탄이 터지기 전에 범인을
잡았고(경기 중에 터지지도 않고), 잡고 보니 그 범인은 평범한 독일 국적의 대학생이었으며(이슬람 권의 외국인이 아니라), 이 또라이의 배후에
어떤 테러집단도 밝혀진 바가 없다.
그리고 도르트문트에선 예정대로
토요일에 분데스리가 1위인 홈팀 도르트문트와 3위인 하노버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이 사건은 "축구 경기장에
폭탄이 설치되었었다."로 축약된다. 그 이상으로 더 얘기할 거리도 없는 거다.
그런데 이런 사건은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한편, 왜 그것보다 더 쇼킹한 사건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든 거냐?
한번 바람을 잡아볼까? 할 줄
아는 건 데모밖에 없다는 냉소를 받던 군소정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 데모꾼 정당이 정권을 잡은 곳은 그 면적으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동네이다.
그리고
이 동네는 지멘스나 벤츠, 보쉬 같은 수많은 저 유명한 '메이드 인 저머니'들의 고향이라서 바이에른이 땅부자, 주식부자라면, 이 주는
현금부자라고 할 만큼 돈 많은 동네이면서 동시에 보수 정당 CDU의 고향땅이다.
CDU(기독교민주당) 로고
이 동네에선 무려 58년 동안
CDU 이외의 정당이 정권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랬던 동네에서 독일 최초의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한 것이다. 가히 독일 정치 지형에 밀어닥친
쓰나미라 할 만 한데, 아직도 여진은 진행 중이다.
CDU의 연정 파트너인 FDP의
당수는 물러나야 할 판국이고 티비에선 연신 핵에너지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관한 토론이 벌어지면서 현 정부의 능력과 신뢰성에 관한 의문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째서 이 사건보다 축구
경기장에 폭탄이 설치되었다가 안전하게 제거된 에피소드가 더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쓴다, 남의 나라
이야기.
후쿠시마에서 쓰나미 때문에
방사능이 새고 있을 뿐인데?
아마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이렇게 요란스럽게 요동치는 나라는 독일이란 나라밖에 없는 것 같다(어쩌면 당사국인 일본보다 더할
거임). 일부 상업채널(RTL, Pro Sieben, Vox 등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채널들이 이 테마로 분주하다.
ARD(각 지방방송이 공동지분을
갖고 있는 채널임), ZDF(유럽 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독일의 공영 방송사), 각 지방 방송(NDR, SWR 등등), 뉴스 전문 채널인
nTV, 다큐 전문 채널인 Phoenix, N24 등에서 이 테마에 접근하는 방식도 참으로 다양하다.
토론 방송에서 각계 (학계,
정치계 중심) 전문가들이 나와서 쌈박질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방송사마다 하나씩 양념으로 갖고 있는 정치 풍자 프로들은 일본 정부나 후쿠시마
이후 독일 정부의 행보뿐 아니라 핵 에너지는 싫다면서 싼 것만 찾는 독일 사람들의 이중성마저도 비꼬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메르켈이 노후 원전 7개 폐쇄 및 모든 원전에 대한 3개월간의 집중 점검을
발표했을 때, 한 풍자 프로에선 이렇게 비꼬았다 :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일개 물리학자-메르켈은 물리학
박사임-가 그런 일이 일어날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
후쿠시마의 현 상황에 대한
그림이 다각도로 전파를 타는 가운데 뉴스 데스크에 불려나온 물리학자의 핵에너지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기도 한다. 체르노빌과 미국에서의 원자력
사고에 관한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관해서도 새로이 다큐가 편성되어 보도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의 직접 원인이랄
수 있는 자연재해에 관한 다큐들, 자연재해 못지않게 위협적이 되어버린 각종 비행기 추락 사고들에 관한 보고들까지, 무궁무진한 후쿠시마 관련
테마들이 온갖 방식으로 요리되어 제공되는 와중에, 2차 대전으로 테마가 뻗어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히틀러가 어떤 또라이짓을
했는지, 2차 대전 중에 어떤 신무기들이 개발되었는지, 전세가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과정은 어땠는지, 미국이 어떻게 전쟁에 개입하게 과정,
일본은 뭘 믿고 진주만을 공격했나 등등등...
이쯤 되면 독일 사람들 참
진상이라고 할 만한데, 본인들 스스로도 묻고 있다, 왜 독일 사람들만 이렇게 요란을 떨고 있는지. 유럽 대륙 한 복판에 있는 독일이 혼자서
핵에너지를 안 쓴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후쿠시마랑 상관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왜 독일 사람들만 이렇게 유난을 떨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독일인이 워낙에 별난 인종이어서
그렇다. The End.
요렇게 마무리하고 덮을 수도
있겠지. 근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그러니 답도 그렇게 단순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앞서도 말했지만, CDU 텃밭에서 데모꾼들의
정당이라던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해버렸다.
그런데 남의 나라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왔다고 정권이 자동으로 바뀐 걸까? 정권이 바뀌는 것은, 그 정권의 능력에 대해, 그 정권의 신뢰성에 대해, 그 정권이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가는 방향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때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제, 후쿠시마 사태 이후 무려
일곱 개의 낡은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등 (독일엔 우리나라보다 적은 열일곱 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핵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공급률은 20
프로 안팎이라고 들었다.) 발 빠르게 대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정권이 된서리를 맞아버린 배후를 본격적으로
풀어보겠다.
슈투트가르트에선 대체 무슨
일이?
지난
일요일이었던 3월 27일, 독일의 두 개 주에서 지방선거가 열렸다. 라인란트 팔쯔와 바덴-뷔어템베르크. 라인란트 팔쯔의 수도는 마인쯔이고
전통적으로 SPD가 텃밭인 동네다. 이번 선거로 주지사가 된 SPD의 쿠어트 벡은 1994년부터 주지사를 하고 있고, 이번에 처음으로 녹색당과
연정을 하게 됐다.
SPD(독일 사회민주당)
로고
라인란트 팔쯔 선거에서 눈에
띄는 점은 SPD가 10% 정도의 지지율을 까먹었다는 건데, 녹색당의 지지율이 11% 올라간 걸 감안해보면, SPD의 지지자들이 SPD의 오랜
자매 정당인 녹색당으로 옮겨간 정도인 셈이다.
한 마디로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더군다나 바덴 뷔어템베르크에서 58년 묵은 감투를 뺏긴 터주대감이 ‘너네도 루저잖아!’라고 경쟁 당에 손가락질 할 주제가 못
된다.
이 두 주의 지방 선거 결과가
확정되자 슈피겔 온라인판에는 "녹색 혁명"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가 떴다. CDU와 함께 정권을 잡고 있는 FDP의 당수이자 부총리이자
외교부장관인 베스터벨레는 재빨리 기자회견을 열어서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했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던 메르켈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요구했다."고 했다.
언론도 정부도 녹색당이 일으킨
이른바 "녹색 혁명"의 의미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반사효과로 한정하려 했고, 그러려는 의도가 빤히 읽혔다. 그리고 그 반사효과를 녹색당 혼자서
챙겨간 것에 억울해했다.
헌데
사실 보수당에서 서둘러 녹색당의 승리를 "후쿠시마 원전 사태 반사 효과"로 포장했다는 사실은 다른 한 가지 사실을 더 음미하게 한다. 언제나
보수당이 하는 짓, 하는 말은 실눈을 뜨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반사
효과"라고 공구리를 치려나 본데, 대체 뭘 덮으려고 그러는 걸까? 혹시 녹색 혁명의 실체가 바로 보수당의 몰락 조짐일 수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에 서둘러 후쿠시마라는 콘크리트를 요란하게 부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본격적으로 선거판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과연 "후쿠시마 반사 효과"만으로 녹색 혁명을 설명해도 되는지, 그것으로 이 혁명에 대한 설명이 충분한지, 어차피 남의 나라
일이니 느긋하게 판단해보시라. 지방선거판이니 지방 이슈로 시작을 해보도록 하자. 이름하야 '슈투트가르트 21'이라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1980년대부터
논의되던 슈투트가르트 교통 노선 정리사업을 통칭한다고 할 수 있다. 주요 골자는 현재의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의 위치를 옮기면서 새 중앙역을
중심으로 슈투트가르트 인근 도시들 간의 철도 노선과 도심 내의 전철 노선을 개선한다는 거다(그니까 전국토를 관통하는 운하를 파는 것도 아니고
고작 지방 도시의 중앙역 하나 옮기는데 20년 이상 검토하고 계획을 세웠다는 소리임.).
슈투트가르트의 교통이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모양인데 결국 1980년대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새로운 개선안을 제안을 했고 그것이 시의회에서
받아들여지면서 구체적인 계획이 차근차근 수립이 되었다. 근데 계획대로라면 2010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야 했는데, 2011년인 현재까지도 공사가
지지부진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로 정부가 바뀌면서 공사판을 접게 될 수도 있는데, 그건 두고볼 일이다. 녹색당은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를 없던 걸로 하자는
입장이고 녹색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할 SPD에서는 사업을 고수하는 입장이지만, 사업 진행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르겠다고 했다.
현재는 공사 업체인 도이체 반에서 주정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일시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슈트트가르트 21 플랜을 선전하는
이미지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슈투트가르트 21의 사업 목표는 상당히 그럴 듯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앙역을 옮기고 그걸 중심으로 노선을 개선하면 빙 둘러가야할 길을 직진으로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로 도시
전체에 경제적인 이득이 보장된다고 보고 있다.
당장 공사판을 벌이면 늘어나는
일자리가 몇 개냐? 게다가 중앙역이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게 되니까 철도 이용객들도 편리하게 되는 거고, 더불어 시내의 상권도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고, 낡고 칙칙한 역사가 쌈박하게 새단장을 함으로써 도시 이미지 개선에도 한몫을 하게 되니 슈투트가르트의 위상도 높이게 될 거라는 거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사업이 그다지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며, 이용객들도 크게 이익을 보는 게 없고, 새로이 거대한 공사판을 벌인다는 건
환경 파괴적인데다가 세금 낭비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실질적인 공사 착수가 공표된
이후 2009년 11월부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장에선 매주 월요일마다 이 프로젝트 반대자들의 데모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슈투트가르트는 앞서도
말했지만, 엄청 보수적인 동네다. 무려 58년이나 정권교체 없이 보수당을 지지해왔던 주의 수도란 말이다.
함부르크나 베를린이랑은 달리
슈투트가르트라는 동네는 좀체 데모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없는 동네이기도 한데, 그런 동네에서 매주 데모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 명이 모여서 데모의 '데'자도 모른 채 평화롭던 도시에 매주 월요일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거다. 것도 하루 이틀만 반짝 그러다 마는 게
아니고 일 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슈투트가르트 역 앞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 120년이 넘은 고목이 있단다. 근데 그 고목이 잘려나가게 생겼나 본데, 극렬 환경 단체(녹색당보다 더 급진적인)에서 그
나무 잘라내지 말라고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를 점거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었다.
그때만
해도 새 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들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그들의 논리가 평범한 보수 시민들한테 먹히기
시작했다.
'이 귀한 나무를 왜
잘라요? 우중충하긴 해도 슈투트가르트의 역사가 담겼잖아요, 근데 왜 멀쩡한 역을 없애요? 실업자들 줄 돈도 없고, 애들한테 지원할 교육비도
없다면서 왜 쓸데없이 새 역을 만드는 데 세금을 써요? 그렇지 않아요?'
그뿐이 아니다. 보수적인
시민들, 지금까지 살던 데로 조용히 살고 싶은 시민들을 화나게 한 건, 도무지 이 시끄러운 사태가 끝이 안 나고, 끝날 기미도 안 보인다는
거다. 결국 시정부의 무능력에까지 그 분노가 미치게 되었다는 소리다.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나섰던 중앙
정부의 교통부 장관이나 메르켈 총리도 결국은 그 분노에 기름만 붓고 갔다. 주민들은 이 시끄러운 사태를 주민투표를 해서 해결하자고 하는데,
"선거로 뽑은 정부가 하는 일이다."라는 말만 누구처럼 앵무새같이 조잘거리다가 갔으니 말이다.
헌데 중앙 정부에서는 58년
동안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보여준 의리를 과신했다. 이번에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그 58년 의리에 종지부를 찍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이쯤,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이번
득표율을 잠깐 보자.
CDU : 39%
(60석)
녹색당 : 24.2% (36석)
SPD : 23.1% (35석)
FDP : 5.3%
(7석)
이런 결과로 CDU가 최다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트너 정당인 FDP의 득표율을 합쳐도 과반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정권 장악에 실패를 했고 보수 꼴통 바덴-뷔어템베르크
주에는 역사상 최초로 녹적(綠赤) 연정이 들어서게 됐다.
근데 2006년 선거 결과와
비교를 해 보면 더 재미난 사실이 드러난다. 2006년 선거와의 득표율 변동을 보면, 녹색당이 추가로 얻은 12.5%랑 CDU(-5.2%)랑
FDP(-5.4%)가 잃은 표가 얼추 비슷한 거 같지만, 그렇게만 표의 이동을 산술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투표율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거다.
2006년에는 대략 53%에
불과해던 투표율이 2011년에는 66%로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보수 정당 (CDU) 지지자들이 갑작스레 경쟁당(SPD를 비롯한 자매정당인
녹색당)으로 옮겨가는 일은 없기 때문에 CDU가 잃은 표가 모두 녹색당으로 흘러들어갔을 리는 없고, 아마도 그들 중 다수는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선거판에 뛰어든 유권자의 비율은 13%를 웃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투표하지 않던 유권자가 선거판을 뒤흔든 셈이다.
무엇이 이들을 투표하게 했을까?
그리고 어쩌다가 이들은 자기네 인생 최초였을 수도 있을 정치적 권한 대리권을 녹색당에 넘겨줬을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독일 정계는 골머리가
아프다.
슈투트가르트 21 사업이
이슈화되면서부터 사실상 CDU가 어느 정도 지지율을 까먹을 거라는 건 예상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실제로 선거 전에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60% 이상이 이 사업에 반대한다고 의견을 밝혔는데도 CDU 소속 주지사는 끝까지 슈투트가르트 21을 고수했었다.
그런데 투표도 안 하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선거판에 끌어들인 건 일단 국제정세였다는 분석이 대세다. 연일 리비아 사태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니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학습능력이 있는 자라면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배운다. ‘또라이가 정권을 잡으면 대로변에서 이유 없이 총 맞아 죽을 수도 있겠네.’ 또한 퍼즐 조각을
맞출 정도의 추리력과 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에서 날아오는 뉴스들을 보면서 저런 일이 내 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일본이랑 다를 게 있을까 대비해보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 무능해 빠졌네. 일본 정부보다 독일 정부가 더 잘 대처하리라는 보장이 없어 보이니까, 재난에 일본만큼 경험이 풍부한 나라가 없는데 그
나라도 저러고 있으니까.
일본
정부가 대기업 손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태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나면, 급기야 정부가 기업 논리에 끌려다니면 저 지경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 팔자 좋게 남의 집 불구경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정신을 차리게 된다.
독일 녹색당의 선전기 -
"원자력발전소? 사양합니다."
그러니까 후쿠시마 덕에 녹색당이
이득을 본 거라기 보다는 시끄러운 공사판에 피곤해진 민심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녹색으로 향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후쿠시마 이후의 독일 정치판은
그 이전과는 같아질 수 없을 전망이다. 설령 후쿠시마가 기억에서 잊혀져간다 해도 말이다. 지금 현재도 그 요동은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의
일들을 짚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후쿠시마 방사능에 CDU가
피폭됐다?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그 결과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독일 정부에서는 한때 환경부장관이었던 메르켈 총리가
나서서 독일 원전 17개 중에서 노후된 7개 시설의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원전의 안전을 3개월 동안 포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니까
애초에 후쿠시마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어보고자 했던 건 CDU였던 거다. 뭔가 선진적이고 발빠른 대처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 같다. '나 잘
했지? 칭찬해주셈~' 요런 포스를 풍겨가면서 말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
근데 메르켈의 이런 성명 발표를
독일 시민들이 실눈을 뜨고 보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에 이 아줌마가 "아우스슈틱 아우스 뎀 아우스슈틱 Ausstieg aus dem
Ausstieg"이라는 아리까리한 말로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뒤집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Ausstieg이라는 말은
"~에서 내림."이라는 뜻인데 뒤의 Ausstieg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에서 내린다는 뜻이고 앞의 Ausstieg은 그 정책에서
내린다는 뜻이니까,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다가 결과적으로 2020년까지는 원자력 에너지 없이도 에너지 공급이 되도록
하겠다던 슈뢰더 정부(적녹 연정이었고 당시 환경부 장관이 그 유명한 녹색당의 요쉬카 피셔다.)의 정책을 뒤집어 버린 거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태 이후의 성명발표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뒤집어보인 꼴이 되어버렸다. '후쿠시마에서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는 몰랐다는 거야? 앞으로 3개월 동안 검토해보겠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럼 핵 에너지 의존 기간을 늘린다고 했을 때 안정성
검토도 덜 해보고 그랬다는 거야? 대체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야?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이렇게 경솔해도 되는
거야?'
야당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메르켈의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의구심을 표하던 와중에 CDU의 연정 파트너인 FDP가 본의 아니게 메르켈의 속내를 들려주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게 커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셈~ 메르켈
총리가 선거 때문에 제정신으로 한 소리가 아님~" FDP 소속인 경제부 장관 브뤼덜레가 에너지 공급 기업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로 요랬다는 얘기가 새나간 거다.
결국 메르켈 총리 및 이번
정권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공급 기업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한 번 바뀌었다가 선거용으로 유권자들 눈치 보느라 또 한 번 뒤집히는 등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의혹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거다.
그러니 "반핵이야말로 우리 당의
태생 이념이다. 우리는 벌써 70년대부터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고 하는 녹색당의 웅변은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겠는가?
이들 말마따나 반핵 운동으로
시작된 녹색당의 핵심 이념은 초간단히 말해서 "자연보호" 내지는 "환경 보존"이다. 그리고 이념 성향으로 따져보면 "보호"나 "보존" 같은
개념은 보수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번에 녹색당으로 옮겨간 표심도 결국은 보수층일 거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존할 것이며,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보존하자는 거냐는 측면에서 녹색당은 확실히 전통 보수당인 CDU랑 차이가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CDU는 계속
FDP 손을 잡고 있다가는 앞으로 정권을 잡는 일은 요원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녹색당과 연정을 하기 위한 포석을 다질 것이다. 한편으론
녹색당의 보수성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기네들도 사실은 녹색에 가까운 깜장색이었다고 -지금의 메르켈처럼- 우기면서 말이다.-CDU의 정당
색이 검은색임.)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독일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포괄적으로 실시되어서 패자들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념에 기반하고 있다면,
CDU 텃밭에 녹색기를 꽂은 이가 한때 화학 선생이었던 것이 의아할 것도 없다. 이 얼마나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인가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메르켈은 후쿠시마 이후 자신의 에너지 정책 변환이 선거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할 판인데, 독일 유수의 에너지 공급 회사 중 하나가
7개의 원전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정부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기업이랑 친하게 지내야 되는데, 기업에 끌려다닌다는 의혹을 불식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는 셈이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외교부장관 베스터벨레가 보인 실망스러운 줄서기, 브뤼덜레의 경망스러운 언사에 더해져 '경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로 모토가 바뀐 듯한 정당인
FDP는 Tepco라는 거대 기업 손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자국민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일본 정부를 보고 있는 독일
유권자들로부터 냉담한 평가를 받아서 라인란트 팔쯔 의회에서는 방을 빼고 바덴-뷰어템베르크에서는 지지율을 반 넘게 까먹고 5.3%라는 턱걸이
지지율로 의회에 잔류했다(지지율 5% 이상이 잔류 조건임).
누구처럼 시끄러운 시국에 해외
순방을 떠나 있는 베스터벨레의 운명은 월요일에 판가름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 안팎에서 그의 사퇴 압력이 거세어지고 있고, 심지어 이런
당이 왜 필요한가라는 모욕적인 비판마저 들려오는 지경이다.
베스터벨레. 뒤의 문양은 FDP(독일
자유민주당) 로고이다.
(사진 - 로이터)
한때
SPD의 파트너 정당으로 캐스팅 보드를 쥐고 의회와 길거리를 왔다갔다 하던 정당이 주지사 자리까지 꿰차게 되자 (독일의 주의회는 독일 상원
의회의 일원으로 국회가 하는 일에 무한?딴지를 걸 수 있고 유럽연합의 일에도 관여한다.) 그들이 하는 말들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들에게는 더 많은 발언권이 주어지면서 후쿠시마는 보수당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비쳐주는 거울이 되고 있는 지경이다. 잠깐 며칠 전 그
보수꼴통이라는 ZDF에서 본 티비 토론 프로에서 오간 얘기들을 정리해본다.
핵에너지만큼 싸고 깨끗한
에너지원이 있나? 누구도 비싼 돈 내고 전기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핵에너지는 절대 싸지 않다. 후쿠시마를 봐라. 저 재난
구조에 들어가는 돈은 돈이 아니냐. 핵발전소 가운데 보험에 가입된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사후 처리에 들어가는 돈은 다 세금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질병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들어갈 진료비 및 보험료도 계산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볼
때가 됐다. 우리 애들은 금융 위기로 인한 국가 빚, 얄팍해진 사회보장제도, 거기에 더해서 핵폐기물로 뒤덮인 영토까지 물려받게
생겼다.
핵발전소 문을 닫자는 얘기는
대책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다.
지금 당장 핵발전소를 닫자는 얘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문을 닫자는 얘기고 핵에너지 없는 세상을 준비하자는 얘기다. 이 계획은 슈뢰더 정부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왔는데, 현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핵에너지에 쏟아붓는 노력을 대체 에너지 개발로 돌려야 한다. 3개월간 안정성 테스트를 하게 되면 더 안전한 핵발전소를 위한
투자가 다각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거 아니냐, 그러지 말고 그 노력을 대체 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태양열을 비롯한 대체 에너지는
산업시설 가동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핵발전소가 없으면 독일의 산업시설이 당장 타격을 받게 되고 독일의 경제에 미칠 타격도
만만치 않다.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체 에너지는 새로운 산업
영역이 된다. 누구라도 이 영역을 먼저 개척하면 승자가 되는 거다.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으며 대체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할 시기에 도달한 거다.
우리만 대체 에너지를 쓴다고
핵에너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나라들을 봐라. 다 핵에너지에 만족해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일본처럼 섬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한복판에
남의 나라 국경과 맞대고 있다. 우리가 대체 에너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면 모두 우리를 본받게 될
것이다.
그 이전에 봤던 ARD에서 하는
Anne Will이라는 토론 프로에서 한 물리학자는 정치가들을 향해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깨닫고 대체 에너지로 가기 위해
당신네들은 왜 체르노빌로도 부족해서 후쿠시마 같은 재난을 필요로 하는 거냐?"고 열변을
토하면서
"정치가는 이제라도 제발 경제를 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고 일침을 가했고,
Phoenix의 토론 프로에 나왔던 한 언론인은 CDU와 FDP의 정책 변환을 염두에 두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에 끌려 다니는 것이 과연 정치 본연의 모습인가?"라고
지적하더라.
오늘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어차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는 입장에선 ‘“나비 효과”란 게 이런 거구나’ 싶고, ‘진상을 떨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이런 생각도
한다.
한편으론 지네 나라 역사도
까먹고 병신 인증하고 있는 일본 정부랑 남의 나라 재난에 유난을 떨며 정권까지 흔들어대고 있는 독일 사람들을 비교해보면서 반면교사라는 케케묵은
고사성어의 뜻도 함 되새겨 보고, 대한민국에선 어떤 바람이 불고 있는지 궁금해지다 보면 타산지석이라는 까먹은 줄만 알았던 고사성어도 신기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나 싶은 거다.
덧글.
본문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독일의 원자력 의존도는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20% 정도라고 하는데, 대체에너지 비율은 17%란다. 본래 슈뢰더 정부의 계획은 2020년에는 핵에너지 의존도를 0%로 하겠다는
것이고,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대체에너지 의존도가 17%로 상승한 거다. 현재의 속도라면 계획했던 시기보다 외려 더 앞당긴 2017년에는
핵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기술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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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