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꼽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무려 5번이나 꼼꼼하게 완독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저서에서 여러차례 노무현을 비판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 점이 매우 불쾌했다. 물론 그가 노무현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그가 노무현을 비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진다라는 것도 아니다.
그의 책은 그럼에도 주변사람 모두에 일독을 권유하고 싶을 정도로 여전히 훌륭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다만 그가 책속에서 노무현을 비판한 부분에는 전혀 근거가 없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먼저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이 이후 5년동안 삼성과 찰떡처럼 유착해 놀아났다. 그 결과로 8~90년대에는 그저그런 재벌에 불과했고 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도 서열 3위에 불과했던 삼성이 공룡으로 성장해 우리사회 전반을 좌지우지 하게 되었으며 그런 책임 중심에 노무현이 있다" 라는 김용철의 주장은 출발부터가 완벽한 거짓이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에 형식상 재계 서열 1위는 현대그룹, 2위는 대우그룹 그리고 3위는 삼성그룹이었다. 그러나 김용철은 몰랐겠지만 당시 경제계쪽에 조금이라도 몸 담고 있었던 사람들이 다 아는 진실은 실질상 1위는 삼성그룹,2위는 현대그룹 그리고 3위는 대우가 아닌 다른 그룹이었다.
그때 거의 모든 그룹의 장부가 분식회계 상태였는데 그나마 삼성은 분식규모가 적은데다 적게나마 꾸준하게 이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는 삼성보다 분식규모가 컸고 이익이 거의 제로상태였다. 그리고 대우는 분식규모가 매우 컸고 이익은 커녕 만성적자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 경제인들이 대우가 매출장부를 조작해 삼성을 누르고 재계 2위로 올라선것을 두고 "장부조작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라는 탄식을 했던것이다. 그 증거중 하나가 바로 형편없던 대우그룹의 주가였다. 대우그룹 계열사 상당수의 주가가 심지어 액면가보다도 낮았던 이유는 심심해서 그랬던것이 아니다. 바로 순이익의 몇배로 형성되는 적정주가산출의 법칙상 이윤을 내지 못하는 대우주식의 가치는 도저히 높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용철은 책에서 특수부 경제통 검사답게 기업들이 이렇듯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두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비용을 부풀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출을 누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기업들은 돈을 빼돌리기 위해 매출을 누락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은행대출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출을 부풀리기도 했다. 그럼 회계가 어떻게 되겠나.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렸다하면 어느순간 헷갈려서 정신줄을 놓게 된다. 즉,어느 시점부터는 얼마가 엉터리인지 본인 자신조차도 모르게 된다라는것이다. 그래서 김우중이 해법으로 들고 나왔던 것이 바로 세계경영이었던 것이다.
분식회계가 종말로 치닫고 있으면 언젠가 터진다. 그럼 재산을 몰수 당하게 된다. 따라서 비자금을 국내에만 감춰둬선 안되고 해외로도 빼돌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이돈으로 재기할수 있다. 그래서 김우중이 순식간에 해외에 수백개의 법인을 만들어 돈을 빼돌렸던것이다.
이런 행태가 바로97년 IMF 외환위기의 주원인중 하나다. 즉,해외자본의 유입과 이탈뿐만 아니라 국내자본의 도피목적의 빼돌리기 투자가 더 큰 역활을 했다라는것이다. 그랬기에 당시 대우의 해외투자가 가장 열성적이었던것이다. 그다음이 현대였고 마지막이 삼성이었다. 분식회계가 많은 순으로 해외투자가 급격하게 일어났던 슬픈코미디를 놓고 당시 경제인들의 탄식은 절정에 달해가고 있었다는것을 김용철은 모르고 있는것이다.
결론적으로 97년 외환위기 이전 서열 3위였던 삼성이 노무현 지원 덕에 1위로 뛰어 올랐다는 김용철의 주장은 경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서 비롯된 오판일뿐이다. 삼성은 이미 90년대중반에 실질적으로 재계서열 1위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김용철은 책에서 "2002년 대선 당시 삼성 구조본의 핵심인사들 거의 전원이 이회창의 당선을 염원했는데 노무현의 부산상고 선배였던 이학수만큼은 노무현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노무현이 이전부터도 이학수를 학수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기 때문이다. 말마따나 노무현 당선 이후에 참여정부 정책 중에 삼성에 불리한것은 거의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도 완벽한 거짓이다. 김용철이 이런 엉터리판단을 내릴수 있는 이유 역시도 그의 경제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수뇌부가 원했던 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부동산 과표 현실화및 보유세제 인상 그리고 차명부동산의 명실상부한 거래실명제 유도를 하지 말것. 둘째,달러 외환보유고를 적정분 이상 축적하지 말고 고환율 정책을 펼칠것. 셋째,증세 복지 정책하지 말고 대기업 부자감세 정책해줄것등이다.
노무현은 이런 삼성의 3대요구를 모조리 거절했다. 과표현실화,거래실명제,종부세신설을 밀어 붙여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컸던 이건희의 심장에 비수를 꼿았다. 그럼 수도권에 공장이라도 신설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부탁마저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가라"며 매정하게 거절했다. 실제로도 참여정부 시절 삼성의 대부분의 설비투자는 지방에서 일어났다.
고환율정책 요구에도 냉랭하게 나왔다. 공적자금 도움으로 살아난 기업이 해야할 일은 통화약세 정책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부를 쌓는것이 아니라 경쟁력강화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재벌 봐주기보다 외환위기 재발방지와 서민물가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책쓰면 한국이 아르헨티나꼴 날것이라는 삼성의 협박에 대해서도 '한국의 복지제도는 쓰레기 수준이며 조세제도는 대기업재벌 부동산부자들이 선진국 수준에 비해 세금을 거의 안내는 수준"이라며 국가재정의 7~15%수준이던 복지지출비중을 28%선으로 끌어올려 버렸다. 사색이된 삼성 앞에서 노무현은 다음 다다음정권은 복지비중을 국가예산대비(300조원) 30%가 아니라 GDP대비(1천조원)30%선으로 끌어 올려야 할것이라며 섬뜩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랬던 노무현을 삼성에 불리한 정책은 거의 쓰지 않았던 대통령이었다고 김용철이 평가할수 있었던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바처럼 그가 경제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가 책속에서 "노무현이 삼성에 진 빚이 너무 컸다. 때문에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삼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정책중에 삼성에 불리한것은 거의 없었으며 삼성이 제안한 정책을 그대로 채택한 사례가 비일비재했으며 임기후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아예 시키는대로 하는 수준이었다" 라는 독설을 한데에는 바로 자신의 그런 무지가 존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재계서열 3위였던 삼성을 1위로 키워준것이 아니라 1위였던 삼성이 더 커지지 못하도록 임기내내 고심했다. 임기 초반 전임정권 말기때 구사했던 카드대란정책으로 인하여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내수가 추락할때 삼성이 강력한 내수진작책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수없이 청와대로 올려보냈지만 역시 노무현은 묵살했다.
대신 그는 "자꾸만 한약(경기부양책) 먹을 생각하지 말고 밥(경제펀더멘탈 진작)을 잘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하자"라고 설득했다. 이명박등 수도권 한나라당 지자제장들이 APT버블을 만들어내면서 시민들에게 열심히 마약을 주입하고 있을때도 "가격이 아닌 가치를 키워내야 하는데"라며 탄식했고 수도권집중과 규제완화가 해법이 아니라며 균형발전과 규제의 엄격한 집행으로 약자를 강자로부터 보호해내 시장질서를 바로 세워낼 해법을 고심했다.
이런 그의 설득과 탄식 그리고 고심이 김용철의 눈에는 수작처럼 비쳐졌을른지도 모르겠다. 비단 김용철뿐만 아니라 당시 한나라당,민주당,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노무현의 진심을 이해해 주려는 무리들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언제나 외로웠던것이다. 임기내내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삼성을 조진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삼성과 놀아난다라는 비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 그런 세상을 향한 원망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삼성이 하루빨리 스스로 노력해 분식회계및 비자금조성 관행을 중단하고 숨겨진 부실을 까기만을 바랬을뿐이다. 그 과정속에서 경기부양정책과 특혜정책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환골탈태해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노무현이 삼성과 놀아난 유일한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었을뿐인것이다. 삼성이 과거를 반성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랬던 그 진심 말이다. 그럼에도 김용철은 이 부분을 볼줄 모른다.
내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5번이나 읽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읽기 난해한 번역서도 두번이상은 잘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교적 쉽게 쓰여진 그 책을 무려 5번이나 읽었던 이유는 삼성과 노무현 때문이 아니라 바로 김용철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김용철은 과연 삼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일견 책 내용만 보면 그렇게 보는것이 맞을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을 바로 세우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노무현을 판단하는 부분을 보면 그는 삼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삼성을 모르는데 그 삼성을 바로 세우려던 노무현의 혜안이 시야에 들어올리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오판들이 노무현의 뜨겁던 심장을 멈추게 했고 오늘날 삼성의 폐해를 우리사회가 제대로 극복해 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근본적 원흉인것이다. 수십억원의 연봉과 수백만원짜리 양복을 걷어차버리고 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4000원짜리 백반을 먹어가며 새로운 삶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라는 김용철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검사를 그만두고 삼성에 들어갔을때의 초심이 호화로운 삶에 있지 않았었듯이 서민들 속으로 뛰어든 지금의 초심이 검소한삶에 있을수 없다. 김용철이 진정으로 삼성에 부역하던 과거를 반성하고 삼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남은 일생을 매진하고 싶다면 그 삼성을 바로 세우려다 세상에 초라하게 비춰지며 사라져갔던 어느 한 정치인의 외로웠던 인생역정부터 바로 볼수 있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