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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대한상의가 주최한 조찬간담회에서 “환율로 물가를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율이 낮아진 2∼3년 뒤에는 새로운 주문에 대응치 못해 바이어는 이탈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14일에는 수출입동향점검회의를 통해 적정 환율은 1,132.2원이고 손익분기점 환율은 1,080.8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견해가 과연 타당할까? 우리 경제에 바람직한 것일까?

우선, 환율로 물가를 잡지 않으면 무엇으로 물가를 잡아야 할까? 휘발유 가격을 잡기 위해 장관이 직접 정유회사들을 압박했던 그 방법을 써야 할까? 시장 상인들이 가격을 올릴 수 없도록 행정적 강제력을 동원하면 과연 물가가 잡힐까? 매점매석을 하는 투기꾼들을 잡아넣으면 물가가 잡힐까? 다른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의문들은 ‘현재의 정책당국이 과연 물가를 잡을 수나 있을까?’라는 데로 발전한다.

현재의 정책당국은 최소한 물가안정에 관한 한 이미 실패했다. 물가불안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무릇 모든 문제는 예방을 해내면 그 피해를 미리 차단할 수 있지만, 이미 일어난 다음에는 직접 피해는 물론이고 부작용과 후유증까지 입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그 지경이다. 더욱이, 이미 실패했다면 자기반성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도 성공을 거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 정책당국은 현재와 같은 물가불안에 대해 자기반성을 해봤을까? 물가불안의 원인은 찾아봤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책당국은 물가불안이 일어난 진짜 원인을 찾기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날씨 때문에 채소 수확이 줄었다, 구제역 때문에 육류 공급이 줄었다, 석유가격이 폭등했다 등을 물가불안의 이유로 들었지만, 이런 것들은 변명에 불과하다. 채소 수확이 다시 늘어나면 물가는 안정되어야 하지만, 그런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육류의 국내 공급은 줄었지만 수입이 크게 늘어남으로써 이것이 물가를 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최근 가축시장을 다시 열었는데 소 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그럼, 국내 물가불안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석유가격의 최근 폭등은 어떻게 봐야 할까? 2001년 19달러였던 석유가격이 2007년에는 93달러까지 줄기차게 상승했었는데, 정책당국의 주장대로라면 이때에는 물가가 심각하게 불안했어야 하지만, 2% 대의 상승률을 기록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다.

현재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국제 석유가격이 떨어지면 물가도 떨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물가불안의 진짜 근원은 환율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환율방어 정책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환율방어 정책을 제외하고는 물가불안을 주도할 다른 변수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국고채를 발행하고 화폐발행을 늘려야 했었다. 이것이 물가불안을 일으킨 근본 원인인 것이다. 그 환율방어 정책을 주도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최중경 장관이었다. 그는 환율과 물가에 관한 한 입을 열 자격이 없는 셈이다.

그가 주장한 내용들도 어느 것 하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 없다. 우선, 그는 ‘환율이 낮아진 2~3년 후에는 새로운 주문에 대응치 못해 바이어는 이탈한다.’고 주장했으나, 다음과 같은 현실에 의해 바로 부정된다. 즉, 2001년 1,326원이었던 환율이 2007년 말에는 한때 907원까지 떨어졌어도, 그 6년 사이에 수출은 2.5배 이상 증가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적정 환율이 1,132원이라는 지식경제부의 조사는 한 마디로 소도 웃을 일이다. 수출기업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얻은 결론이라는데, 이것은 노동자에게 적정 임금이 얼마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최중경 장관은 적정 환율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그가 주도했던 환율방어 정책은 완벽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환율 1,300원을 지키기 위해 한 달 동안에 무려 백수십억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거둬들였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1,200원을 지키기 위해서도 막대한 국민혈세를 동원하여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였으나 이것도 실패했다. 그가 방어하려고 했던 즉, 적정하다고 간주했던 환율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적정 환율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설마 그는 본인의 능력이 시장기능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중경 장관이 행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물가를 잡으려고 했는데 이것은 더 나쁜 결과를 남길 것이 빤하다는 데에 있다. 시장기능은 물론이고 자원배분까지 왜곡시킬 것이 빤하다. 이미 그 폐해가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중교통수단의 요금을 억제하는 바람에 국민혈세를 한 해에 1조원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억제하는 바람에 한국전력은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장차 얼마나 많은 국민혈세가 투입되어야 할지 모르는 실정이다. 그밖의 사례도 수없이 많다.

역사상 억지로 억제하여 물가를 안정시킨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물가통제를 풀었을 때에 시장과 자원배분의 왜곡이 풀리면서 물가가 비로소 안정되었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물가불안에 시달리던 독일은 에르하르트 재무장관의 지휘 아래 물가에 관한 모든 통제를 한꺼번에 풀었다. 그러자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물가는 안정을 찾았다. 이런 성공 사례를 본받은 나라들도 불안하던 물가를 안정시켰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 시장경제로 전환한 폴란드와 헝가리와 체코는 물자부족에 의한 물가불안에 계속 시달려야 했는데, 물가통제를 완전히 해제하자 물가가 차츰 안정되었다. 이로써 시장경제의 기능이 되살아나면서 체제변혁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본격적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최중경 장관이 이런 역사적 사례들을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