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은행을 관두고, 자그마한 공장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제주도에 계시는 형님 댁에 가서 상황을 말씀드리고는 일을 마무리하고 형님께서 끊어주신 비행기를 타고(난생 처음) 서울로 왔습니다. 바로 그날이 5.18입니다. 만약 시간이 급하지 않아서 제주도-목포간 가야호나 안성호를 타고 해로와 육로로 왔더라면 지금 제가 여기에 이렇게나 있을지 ....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후, 새로운 직장을 얻어 춘천으로 가서 사는 동안, 다니던 교회에서 간간 그 참상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마저 <교회청년회보>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고, 그 유인물을 감추고 집에 갈 때에 듬성듬성 교회골목 주변에 깔린 형사들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마침 갓난애를 안고 걸리고 해서인지 별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을 한참 모았었는데 신분이 준공무원이라 혹여 겁나서 불에 태우고는 마당에 묻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택에 거주했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뻘짓을 한거지요. 그거 계속 소장하고 있어야 하는건데 ....)
그리고는 모처럼 동창을 만났는데, 그 동창하는 말 .... 마침 군제대를 하고 얼마 안되었는데 식당을 하는 누님께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라며 카운터를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황급히 달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몰라 카빈총을 옆에 세워놓고 식당카운터를 지켰다고 하더군요. 실제 제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증언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저의 막내동생과 한살 터울 사촌동생도 트럭을 타고 금남로를 누볐다고 합디다. 그래서 형된 마음에 놀래서 막 야단을 쳤더니 하는 말이 "형님,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죽는건 마찬가지였어라. 암디나 막 갈겨불고 .... 아니, 잠자고 있는 방안에 대고 막 쏴질러대부는디 .... 뭐, 집이라고 안심되간디요?" 이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 숙부님께서 일선 공무원이셨는데 그래도 공무원 신분인지라 숙모님께서 가만 계셨으면 했더랍니다. 함에도 숙모님께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김밥에/주먹밥에 .... 시민군 먹을 거리를 퍼나르니 ... 이것을 보다 못한 숙부님께서 걱정이 되어 "아 이사람아, 우리는 공무원이여! 에진간히 잔 하소. 적당히!" 그랬더니 숙모님 하시는 말씀 "공무원이고 머시고, 지금 사람덜이 죽어나가고 천지가 먹을 것이 없는데 .... 시방 그넘의 공무원 타령이요? 공무원은 나중이고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재 ...." 이러시면서 금남로/충장로까지 총알을 피해 각종 음식을 나르셨다고 합니다. 숙모님은 평범한 시민일뿐이었습니다. 정치의 정자도 모르시는 그런 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이렇게 할 정도였으면 그 당시 광주의 참상이 어떠했을까요. 다들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