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인 2008년, 이 해가 대한민국 건국 60년인지,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인지 논란이 크게 일었다. 지금까지 1948년을 정부수립한 해로 기념해왔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나 '國父'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주장대로 정작 1948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이승만이 살아돌아온다면 그는 이명박에게 큰 화를 내고 얼굴을 붉히리란 걸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이승만에게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이었고, 1948년은 대한민국 건국 30년이며 정부가 수립된 해였다. 햇수로 30년 전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는데, 나중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하면 화가 안 나겠는가? 이 점은 이승만뿐 아니라 당시 제헌의회 의원들의 공통 인식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의 인식과 그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의 인식이 차이가 난 사유를 이승만의 관점에서 간략히 살펴볼게.
혹시 '한성임시정부'라고 들어 봤나? 그냥 '한성정부'라고 하기도 해. 한성漢城이란 서울을 말하니, 일제시대 어느 시기에 명목적이지만 서울에도 한국인들이 세운 정부가 있었다는 거야. 상해임시정부는 들어봤어도 "한성정부? 그게 뭐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거야. 그런데 한성정부는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유와도 관련되는 중요한 조직이었어.
우리가 상해임시정부 하면 보통 1919년 3·1 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된 후 독립운동가들이 망명해서 조직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야. 우선, 우리가 상해임시정부라고 부르는 실체 자체가 한성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의회정부 및 상해의 임시정부를 통합, 상해에서 1919년 9월 재출발한 통합임시정부를 말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데니까 당연히 누가 주도적으로 통합상해임시정부를 대표할 건지 논란이 되었겠지. 상해, 서울,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3곳의 임시정부가 활동하기에 가장 유리한 상해에 자리를 잡기로 했으니, 주도권 면에서 일단 가장 유리했던 건 3·1 운동 이전부터 먼저 상해에 가 있었던 상해의 (통합 이전의) 임시정부였지. 그런데, 먼저 가서 자리잡은 것과 당시 식민지 조선 민중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 여기서 상해 임시정부보다 절차적인 정통성을 갖춘 게 한성정부야. 더구나 국내의 임시정부니까 정통성이 가장 앞섰지.
1919년 4월 2일 국내에 있는 13도 대표들이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 모여서 협의하고 이어서 13도 대표 23명의 이름으로 선포문을 발표하고 해외에 있던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민주체제 정부를 선언했지. 당시 조직들은 일일이 의견을 묻지 않고 명망가들을 조직의 수반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리는 게 다반사였어. 그래서 한성임시정부와 기타 임시정부들의 인적 구성원은 대부분 중복된 거고. 어쨌든 한성임시정부는 이렇게 탄생했어.
이 때 미국에 있던 이승만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워싱턴 D.C.에 집정관 총재 사무실을 열어 잽싸게 대외적으로 'President'라는 호칭을 사용해 버리지. 결국, 1919년 9월 11일에 통합하여 발족한 통합임시정부의 인적·물적 구성은 상해 임시정부 체제로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명목상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승계했고 이를 배경으로 한성임시정부의 수반이었던 이승만이 통합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이승만은 독단으로 인해 나중에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에서 짤리고 미국에 가서도 물의를 많이 일으키지만 어쨌든 이승만에게 있어서 자기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
그래서 그는 심지어 1948년 대통령이 된 후에도 상해 통합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보고 1948년을 법적 근거도 없이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기하여 단군 기원 연호를 쓰려는 제헌의회와 갈등을 빚었어. 물론 제헌의회에서도 대한민국 연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단군 기원 연호가 더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합방으로 망한 지 불과 10년이 안 되어서 '대한민국'이 다시 선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야. 그리고 통합임시정부에서 국호를 '고려'나 '조선'으로 하지 않고 '대한'으로 한 것도 깊은 뜻이 들어가 있어.
또 하나의 문제는 국호를 '대한'이라 쓴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로서 조선말기에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대한'을 쓰다가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국호를 '대한'으로 채택하였다. 당시에 거론되던 대안으로는 '고려공화국'과 '조선공화국' 등이 있었으나 결국 대한민국으로 확정되었으니 고종황제가 이조를 종식하고 대한제국으로 선포하였다가 강제로 일제에 합병된지 불과 10년도 안되어 되살아난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나라를 잃은 뒤에 10년만에 독립을 선언한 한민족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 링크
이제 모든 게 명확해지지. 1919년 9월에 출범한 상해임시정부가 내용은 물론이고 절차적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갖추어져있었다는 거지. 뉴라이트들이 절차적 형식적 문제로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비록 해외 정부라는 점은 어쩔 수 없었지만 상해 임시정부가그냥 해외 망명객들이 모여서 뚝딱 선언한 게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그러한 절차상의 정당성 위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게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들이 국부로 여기는 이승만이야.
이승만이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되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보면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어. 이승만 정부 그리고 뉴라이트,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너희들의 '건국의 아버지'는 너희들과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니까. 친일파 옹호에서는 인식을 같이 했겠지만 말이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