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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사만화가, 「내 인생의 한 컷」
풍자와 은유로 들여다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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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만화가들은 만화 한 컷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현상들을 비틀어보기도 하고, 돌려보기도 하고, 바로보기도 하는 등 각도를 달리 하면서, 현상의 이면, 즉, 보이지 않는 혹은 의도적으로 숨겨진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시사만화가들의 풍자와 은유가 힘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바로 이러한 노력 때문이다.
우리 나라 시사만화가들은 척박한 작업 환경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역사가 왜곡되고 진실이 숨겨져야 했던 정치 상황 속에서 시사만화가들은 그 진실을 알리려고 외압도 감수해야 했다.
시사만화가들이 추천하는 한 컷을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나대로 선생 李泓雨
「6공 6신」으로 만화 위력 실감
동아일보의 「나대로선생」은 첫회부터 수난을 겪었다. 1980년 11월 11일 첫 만화가 나갈 무렵, 우리 나라 정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서울의 봄」은 얼마가지 못했고 시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정통성을 획득하지 못한 5공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면서 국민의 귀를 막고 입을 막았다. 속칭 「언론계엄사령부」라고 불리는 언론 검열단은 신문 기사를 可, 不可 검열을 하고 있었다.
나대로 선생 첫회가 나가기 전날, 마침 정치 규제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李泓雨씨는 그것을 풍자해 『규제명단에 빠진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라는 만화를 실었다. 검열단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규제 명단」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여러 번 고친 끝에 「규제명단에 빠진」은 「새시대 참신한 인물」로 바뀐 다음에야 신문에 실릴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 나대로 선생 연재가 결코 순탄하지 못하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계엄령이 풀려도 통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학생 시위 기사는 신문에 실리지 못할 경우도 있었지요. 단지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은유적으로 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모르스부호 같은 부분을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입니다』
1986년에는 「국방부 회식 사건」으로 李泓雨씨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해야 했다. 국회의원과 군 장성들이 술을 먹다가 서로 주먹다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진상이 가려진 채 그냥 식중독 사건으로만 기사화되었다. 李泓雨씨는 나대로만의 고집으로 이를 풍자해 「맞는 순간 별이 번쩍했다는 의원 모습」을 그렸고, 이는 외신을 통해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리게 되었던 것이다.
보안사에 끌려가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李泓雨씨는 「저항정신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고 고백한다.
『정권의 온갖 회유와 공갈 협박 때문에 나대로 선생의 얼굴은 할퀴어졌지요. 어떤 때는 사전 검열에서 7, 8번까지 수정을 한 후에야 겨우 실릴 수 있었습니다』
언론 사전 검열은 6공 들어서면서부터 사라졌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관계로 결코 화합될 수 없다고 李泓雨씨는 말한다.
6공 정부는 출발부터 휘청거렸다. 추위의 힘으로 버티던 허술한 담벼락이 해빙기에 허물어지듯, 사회 곳곳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5공 청산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은 정부는 제대로 국정 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5공 청문회는 변죽만 울리고 있었고, 국회에서는 날치기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다.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정권 유지가 불안했던 6공 정부는 비굴할 정도의 외교 정책을 폈다.
국민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그즈음 시중에서는 「6공 6신」이라는 말이 은밀히 나돌기 시작했다. 「우정 배신(전두환 배신)」「참는 데 귀신」「외교 굽신」「경제 망신」「정책 등신」「치안 불신」.
李泓雨씨는 이것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李泓雨씨는 「아무리 언론 통제가 풀렸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언론에서는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사만화의 역할이 은유와 풍자이기에 李泓雨씨는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다. 단 「우정 배신」 「참는 데 귀신」은 신문에 나갈 수 없어 「국민 배신」「날치기 귀신」으로 바꾸었다. 1991년 11월 29일, 「6공 6신」은 나대로 선생에 실렸다.
『그 만화가 나가고 난 뒤 전화에 불이 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서울판 신문이 나가고 난 뒤 당국에서는 지방판만이라도 이 만화를 뺄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습니다. 청와대 안기부의 항의전화도 만만치 않았지요. 애들이 아직 어린 줄 알고 있다는 둥 은근한 협박도 받았습니다. 부산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만화를 보시고는 걱정이 되셨던지 전화를 걸어 괜찮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다행히 이 만화는 지방판까지 빠지지 않고 무사히 나갈 수 있었다.「6공 6신」은 이듬해 3월 치른 14대 총선에서 한몫을 톡톡히 했다. 많은 야당 후보자들이 너나없이 이 만화를 선거 팜플릿에 넣어 홍보를 했던 것이다. 그해 처음으로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었는데, 李泓雨씨는 나대로 선생도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지 않았겠느냐며, 만화의 위력을 실감했다며 웃었다.
나대로 선생 연재를 시작한 지 22년, 나대로 선생은 6천 4백 회를 넘어섰다. 正道를 간다는 뜻의 大徑大路(대경대로)에서 이름을 가져온 나대로 선생은 이름의 의미에 걸맞게 정권의 압력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한 회도 빠짐없이 연재했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李泓雨씨는 매일매일 그린 만화를 직접 스크랩해 놓고 독자들 반응도 일일이 체크한다.
매일 마감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李泓雨씨는 소재를 구하기 위해 편집회의에 참석한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기자들을 만나는 일도 소홀히하지 않는다. 시중에 유행하는 3행시도 놓치지 않는 李泓雨씨는 『시사만화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며, 항상 2사 만루의 타석에 들어선 듯한 긴장감 속에서 만화를 그린다고 한다.
고바우 김성환씨
스물두 살 청년이 그린 50년대 풍속화
「…뽀얀 담배연기 속에 웅성거리는 잡음이 들리고, 증기가 터져 나오는 소리, 쇠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무슨 심포니의 연주인듯…이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고 서고 혹은 앉지도 않고 엉거주춤 짐짝 위에 기대어 앞으로 다가올 목적지를 기다리고 있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깨어진 창문으로, 천장으로 사정없이 쳐들어오는 빗방울을 막으려 신경들을 쓰게 되는 쑥스러운 장면이 벌어진다」
1954년 7월, 대구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 안 풍경을 묘사한 「고바우영감」의 작가 金星煥씨의 글이다. 그는 그림을 그린 후 그림 설명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기차 안을 더 들여다보면, 전쟁 직후 우리의 삶을 더듬어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어린아이 오줌을 누이는 여인, 사뭇 위압적인 얼굴로 공갈치며 동냥하는 상이군인,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책을 읽는 인텔리 신사, 비새는 객차 안에서 우산을 받쳐든 여인. 지금으로는 상상도 못하는 풍경이다.
金星煥씨는 당시 대구에 있는 육군본부에서 육군 화보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종로3가에 있는 인쇄소에 오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탔던 22세 청년 화가는 순간의 풍경이라도 놓칠세라 기차 안에서도 붓을 놓치 않았다. 그 덕분에 생생한 풍속화가 나올 수 있었다.
『흔히 金星煥하면 고바우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고바우 만화 말고도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국화, 소묘전시회도 가졌구요』
「내 인생의 한 컷」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金星煥씨는 대뜸 고바우가 아니라도 되냐고 물으면서 「비오는 날의 열차내 풍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추천해 주었다.
金星煥씨가 특별히 이 그림을 아끼는 것은 자신의 그림 영역이 고바우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 최고의 화가 김환기씨의 극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金星煥씨는 당시 작품집 『世態漫相』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만화신문」을 만들고 있던 조각가 윤효중씨가 유명한 화가의 서문을 받아주겠다며 그를 홍익대 교수 김환기씨에게 소개했던 것이다. 홍익대학교 미대는 종로 2가 우미관 극장 건물에 있었는데, 교수실은 겨우 얇은 판자로 벽을 대신했었다. 윤씨가 김환기씨의 연구실로 金星煥씨의 그림을 들고 들어간 뒤 곧장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김환기씨가 만화, 삽화에 대해 평소 인정을 해주지 않은 터라 긴장하고 있던 金星煥씨는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이것이 바로 작품이다』
김환기씨는 책에 서문을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
『예리한 감각과 정확한 소묘력은 적막한 우리 만화계에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金星煥씨 자신을 「고바우」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대해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김씨의 이런 서운함과는 달리, 일반인들은 그를 여전히 고바우로 인식한다.
1950년 「만화신보」에 처음 등장한 고바우영감은 1955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시사만화라는 새 장르를 열었고, 이후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친숙한 이웃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고바우는 우리 현대사와 함께 하면서 신랄하고도 예리한 풍자로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金星煥씨는 「경무대 변소통」「인혁당 무죄 판결」 등 만화를 비롯해 여러 번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다.
고바우영감을 그리는 동안 金星煥씨는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다. 3공 때는 모처 사람들에게 미행을 당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온갖 협박을 받기도 했다. 편집국 내의 갈등은 김씨를 더욱 괴롭혔다고 고백한다.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한 편집국장은 정치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만화 원고를 수정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만화가 나가면 다른 직원들은 만화가 싱거워졌다는 불평을 하고, 어떤 사람은 혹시 정권과 야합하거나 흥정을 한 것이 아니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편집국장과의 갈등으로 만화가 나가지 못했다. 그러자 외신기자를 비롯해 독자들이 혹시 잡혀갔는지, 외압 때문은 아닌지, 문의 전화를 끊임없이 해댔다. 그러자 정보부에서 오히려 왜 쉬었는지 전화를 걸어 묻기도 했다. 金星煥씨는 간섭이 심해 못 그리겠다고 했더니, 앞으로는 간섭을 덜 하겠으니 제발 쉬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참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50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 덕분입니다』
2000년 9월 30일, 金星煥씨는 고바우영감 연재를 그만두었다. 11월에는 세종문화회건에서 「고바우반세기전」을 열기도 했다. 고바우 50년을 기념하는 우표도 발행되었고, 국립도서관 측은 만화가로서는 최초로 상설전시관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고바우영감을 연재하는 동안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편안히 쉰 다음 작품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金星煥씨는 고바우영감을 그린 것은 결코 후회하지 않지만, 다시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을 정도로 진저리쳐진다고 토로한다. 또한 자신을 고바우영감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왈순아지매 정운경씨
시사만화는 「밥상의 소금」
『사설이 쓰지 못하는 기사는 칼럼이 쓰고 칼럼이 쓰지 못하는 것은 만화에서 다룹니다. 시사만화는 밥상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지요』
왈순아지매의 鄭雲耕씨는 지난 40여 년을 「밥상의 소금」같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고민해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야말로 「똑소리 나는 것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염원을 한다는 鄭雲耕씨는 40년이 지나도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정씨는 시사만화를 그리는 것은 「광화문 네거리에 벌거벗고 서있는 것과 같다」면서 언제나 새로운 표현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재미 있거나 내용 전개에 있어 표현이 새롭고 신선했을 때 만족한다는 鄭雲耕씨는 지금까지의 작품을 스스로 평가할 때 좋은 게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이야 작품을 가지고 이나마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과거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시사만화가들은 늘 국민의 입장, 권력을 풍자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언제나 당국과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었고, 말못할 고초를 많이 겪었다고 한다. 정부 비판 그림을 그려 「남산」으로 끌려간 것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1980년 언론 개혁 때는 해직 대상에 올랐다가 제외되기도 했다. 고바우영감 金星煥씨와 두꺼비의 안의섭씨를 내보내자 국민 여론이 좋지 않자, 당국은 두 사람을 복귀시키고 정씨도 건들지 말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그때 저는 해직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매우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지만, 회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충격을 받을까봐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자 저를 해외여행을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鄭雲耕씨는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생각하면서, 돌이켜보면 그만 두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한다.
다른 일들은 오래하면 노하우가 있지만, 시사만화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에 「王道」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틈만 나면 독서를 하고, 신문, 방송 뉴스 등은 모조리 본다. 사람들도 많이 만나는 편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평소에 느끼면서도 깨우치지 못한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느 때는 회사에서 여의도에 있는 집까지 1시간 반 되는 거리를 걸어 가기도 한다.
鄭雲耕씨는 『만화가를 오래 하다 보니 머리 속은 헝클어진 서랍 속 같다』고 말한다. 서랍 속에 헝클어져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관련된 이미지가 떠오르면 정리가 된다고 한다.
왈순아지매가 처음 신문에 등장한 것은 40년 전. 시사만화의 여원이라는 여성지에 연재에 인기가 오르자 이 만화는 동명 타이틀로 영화화되기도 했고, 이어 신문사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왔다. 정씨는 왈순아지매는 여성들을 위한 가정만화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치만화는 문제있다고 거절하자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그렇게 경향신문을 시작으로, 대한일보, 중앙일보를 거쳐오면서 총 0000회를 연재했다. 그간 鄭雲耕씨는 왈순아지매로 인해 웃지 못할 일들도 많이 겪었다. 한 대기업이 왈순아지매 캐릭터를 허락도 없이 사용해 저작권 분쟁에 휩싸이기도 했고, 경향신문사 시절에는 정보부 실세 국장과 관련된 대형금융사고가 은폐되자 국민들의 의구심을 표현했다가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1979년 어느 날 터진 학생 분신 사건이다. 10.26 직후 정국은 혼미에 빠졌고, 학생들의 데모 물결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길에서 쓰러지고 죽어나갔다. 시국이 어지러울수록 왈순아지매도 점점 더 예리하고 날카로워졌다.
그날도 정씨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앉아있는데, 사무실로 사회부 기자가 「큰일났다」며 뛰어들었다. 현장에서 달려온 그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이 신촌쪽에서 아현동 고개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는데, 아현동 고갯마루에서 한 학생이 『왈순아지매 만세!』하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자살기도가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그 학생의 몸에 붙은 불을 간신히 끄고, 이내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정말 만화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나중에 그 학생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鄭雲耕씨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독자들의 가슴에 청량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는 데 무척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심마니 심민섭씨
「의미심장한 웃음」을 그린다
「심마니」의 작가 심민섭씨는 심마니 이전에 심난파라는 필명으로 그리던 「가라사대」로 먼저 이름을 날렸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만화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1984년 「주간한국」에 「가라사대」를 연재하면서 시사만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당시는 5공의 서슬이 퍼럴 때라 DJ사진도 싣지 못할 때였는데, 가라사대는 파격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었지요. 그 덕분에 신문 기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 같더군요』
가라사대는 12쪽짜리 만화였는데, 만화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갔다. 그러던 중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는데, 그것을 다루었다가 심민섭씨는 안기부에 불려갔다.
심씨가 안기부에 불려가는데도 편집국내에서도 아무 대안이 없었고, 회사 동료들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마침 보안사의 언론과장이 아는 사람이라 그 덕분에 심민섭씨는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의 작품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가라사대가 점점 인기를 얻어가자 심민섭씨의 생활도 순조롭지 못하게 되었다.「주간한국」이 나오는 날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보안사 등지에서 걸려오는 경고 전화에다 독자들의 응원전화까지, 그야말로 전화에 불이 날 정도였다.
편집국 내에서 갈등도 적지 않았다. 같은 편집국 내에서도 진보와 보수 등 성향이 다른 기자들끼리 편이 갈리다 보니 그림 그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만화를 그리면서 저울질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쪽저쪽 상황을 고려해 그려야 할 형편이니 점점 작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편집국장의 성향에 맞게 만화를 뜯어고쳐야 했으니까요. 그러자 만화가 재미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주간한국」 사장이 심민섭씨를 부르더니 「가라사대」 연재를 중단하라고 했다. 그러나 「가라사대」는 한 독자가 「가라사대를 없애는 것은 큰 실수다」라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사장이 그 편지에 감동받아 다시 그리라고 한 것이다. 이후 가라사대는 「주간한국」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고, 판매부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심씨의 가라사대는 「광화문블루스」라는 책을 엮어져 나왔고, 보안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연극인 무세중씨에 의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책 제목 덕분에 심민섭씨는 「광화문 아저씨」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1989년 두꺼비 안의섭씨가 세계일보로 자리를 옮기자, 심민섭씨가 그 뒤를 이어 「심마니」를 탄생시켰다. 심마니는 심씨의 딸이름이기도 한데, 오랜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고 사는 심마니들의 생활상을 본받아 우리 민족의 원형을 찾자는 뜻으로 붙인 것이었다.
심마니가 연재되던 때는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6공이 시작하던 때였다. 보수와 혁신 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보혁의 뜻도 모른 채 사회는 혼란했다. 임수경, 문익환 목사가 방북을 해 온통 사회는 시끄러웠고, 광주 익사사고, 미문화원 점거 사건, 동의대 화재 사건 등 온통 사건, 사고가 끊임없었다.
『그때 어떤 시각으로 그려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서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수든 혁신이든 풍자하자는 쪽으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사만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곧 비판한 것으로 생각을 하더군요. 그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요』
다행히 심마니를 그릴 때는 당시 편집국장이던 오인환씨가 완벽하게 보호해주어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심마니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때 그린 동의대 사태 때 그린 심민섭씨에게는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학교 건물에 불이 붙자,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면서 물을 가져오라고 하자 노태통령을 밀고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당시 노대통령의 무능함을 느끼고 있었던 독자들에게 이 만화는 그야말로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 만화가 나간 다음부터 언론에서는 노태통령을 「물태우」라고 칭하기도 했다. 심민섭씨는 『「물태우」라는 말은 사실 시중에서 먼저 나돌고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대통령을 희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공식화시킬 수는 없었던 터라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고 한다. 아직은 그림이 다소 어설프지만 만화적 재미와 풍자를 동시에 갖춘 점과 자신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었는 점에서 심씨는 점수를 주었다.
심민섭씨는 심마니를 그리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지만 어이없는 일도 당했다. 하루는 독자라고 하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점심이나 먹자고 해 나갔다. 그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독자라는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고는 달아났다. 알고 보니 그는 특정 정치인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데, 그 정치인을 풍자한 것이 그가 주먹을 휘두른 이유였다. 심민섭씨는 당시에는 지역감정이 골이 패일 만큼 파여 그 사람뿐만 아니라 전화로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1995년 1월, YS정권이 들어선 후 심민섭씨는 한국일보를 떠났다.
『저는 YS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고, 신문사는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때문에 간부 사원들의 간섭이 많아졌고, 만화를 그리는데 제약이 심했지요. 이러다가는 작가의 생명력이 끊어지겠다 싶더군요』
심민섭씨는 결국 사표를 내고 세계일보, 국민일보 등에서 심마니는 계속 연재했다. 심민섭씨는 자신의 만화는 독자들이 「의미 심장한 웃음」을 웃게 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만평 申景武씨
이해집단의 항의 협박전화 만만치 않아
申景武씨(45세)는 오전에는 하루 수십,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도통 업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조선일보에서 만평을 그린 지 6년째. 신씨는 중앙일간지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화가 나가고 나면 독자들의 격려 전화에서부터 항의 전화까지,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만화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申景武씨는 노태우 정권들어 정치가 어수선해지자 그 상황들을 만평으로 그려 독자만평 등에 기고하면서 좋은 평을 얻었다. 그러다 부산경제신문에 입사를 하게 된 신씨는 하던 일을 접고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申景武씨는 1996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시사만화가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임감이 많은 만큼 소재나 표현 방식에 신경을 쓴다.
『한 컷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모든 신문을 다 보고, 인터넷에서 독자 반응도 체크하고, 온라인 매체 등도 두루 살피지요.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회사를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申景武씨는 시사만화는 독자를 후련하게 해주어야 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해집단으로부터 항의와 협박 전화도 만만치 않다.
2000년 6월, 의약분업으로 의사들 파업은 장기화되었고, 각 병원에서는 응급환자들이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은 치료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申景武씨는 6월 20일 그 사태를 소재로 만평을 그렸다.「조폭계도 비상」이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병원이 파업을 하자 조직폭력배 두목이 『아그들아 다치지 마라. 다치면 끝장이여, 끝장』이라는 말을 하는 그림이었다.
만평이 나가고 난 뒤 신씨는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받았다. 『왜 그런 사람들한테 우리를 비교하느냐』며 은근히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조직폭력배도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의사들과 비교하는 것이 기분 나빴던 모양입니다』
만평을 그리면서 종교단체, 군, 등 특정단체를 빗대 만화를 그리면 반드시 이런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한 번은 강릉 지방에 침투한 무장공비 사건을 다루었다가 전화로 온갖 협박과 항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잠수정을 발견한 것은 경계를 서는 군인이 아니라 택시운전사였다.
군인들이 택시운전사들을 기합을 주면서 도대체 경계를 어떻게 섰길래 잠수정에서 국산 음료수가 나왔느냐고 호통을 치는 그림이었다. 적반하장이 된 상황을 통해 전체 군이 아니고 일부 군인의 해이해진 경계 태세를 풍자한 것인데도 정말 두려울 정도로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申景武씨는 이런 항의 전화나 협박 전화를 받으면 처음에는 위축이 되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편이라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치 풍자를 하면 필화를 겪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요즈음은 정치권 풍자가 가장 편합니다. 모처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는 두꺼비 안의섭씨나 고바우영감 金星煥씨 같은 선배들을 생각하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申景武씨는 독자들의 큰 호응을 해주어 기억에 남는 만평으로는 IMF 초기에 그린 JP 관련 만평을 꼽는다. 일본을 방문한 JP는 일본과 한국이 주도하여 아시아은행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IMF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JP의 발언은 현실을 무시한 소치로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풍자해 「믿어, 말어?」라는 제목의 만평을 그렸다.
거치 왕초 차림을 한 JP가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인들의 빈민촌에 가서 우리도 은행 하나 만들자는 말을 한다는 이 만평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한 번 보고 무릎을 친다든지, 픽 웃을 수 있는 「양념같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申景武씨는 다양한 방면에서 소재를 구한다. 예를 들어 경제나 스포츠 문제를 다룰 때는 해당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면서 소재거리를 찾기도 한다.
시사만화가는 많은 분야를 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 인식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들도 만평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申景武씨는 그것을 위해 지난 사건들도 꼼꼼히 챙겨 읽는 것을 잊지 않는다.
월간조선 만평 윤필
대안이 있는 풍자를 하고 싶다
『시대가 하도 기가 막혀서, 도대체 풍자 아니면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만평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이끌고 있는 것은 김수영 시인의 「누이야, 풍자 아니면 죽음이다」가 되었습니다』
만평을 그리게 된 동기를 말하는 윤필씨의 이 한 마디는 그 시절을 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극명한 설명이다. 글과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윤필씨는 만평이라는 형식을 통해 비틀어진 사회 현상에 바짝 현미경을 들이대기로 했다.
6.29 선언이 있기 전, 윤필씨는 당시의 사회상을 「신선한 재료가 너무 많아 주방장은 기뻤다」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씁쓸함을 표현한다. 윤필씨는 잡지 등에 기고를 하면서, 한 시대를 0.0002평 속 공간에 풍자와 해학으로 녹여 내는 작업을 했다.
5공 정권의 언론통제는 마음껏 표현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억압된 자유 속에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자체 검열을 해가면 그린 만화였지만, 소위 「기관」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을 수 없었던지, 윤필씨는 쫓겨다녀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6공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언론은 한층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자유로워진 만큼 시사만화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여론을 리드할 수 있는 주체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게 윤씨의 생각이다.
『만화가 단순히 카타르시스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풍자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대안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윤필씨는 비판은 언제나 쉽지만, 단순히 비판에 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의 만화가 힘이 실리는 이유는 바로 대안을 모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사만화 소재가 반드시 정치일 필요는 없지만, 사실 가장 손쉬운 소재가 정치 문제이다. 윤필씨는 국민의 정부를 들어서면서 터진 옷로비 사건을 보면서, 「국민의 정부」와 「그들만의 진실」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신동아 그룹 최순영 회장 구속과 부인 이형자씨의 연말 8천만 원어치 싹쓸이 쇼핑이 발단이 된 「옷로비 사건」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옷로비 사건은 몸체가 드러났고, 신임 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인 연정희씨가 그 가운데 서 있었다. 국민들의 정서는 급냉하면서 당사자들을 처벌하기 바랐지만, 대통령은 이를 구기득권세력과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음모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특검과 언론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고, 결국 김태정 총장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김대통령은 30여년을 한결같이 국민이 원해서 정치를 하고, 국민이 원해서 복귀를 하고, 탈당, 창당을 하고, 개혁 정책을 펴나가는데, 왜 언제나 「나만 미워 하느냐」고 호소를 하게 되는가는 것이었지요. 국민들과 유리된 진실은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 말고도 진형구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 파문, 고관집 도둑 사건, 3.30 재보선 돈 선거 파문 등 국민의 정부들어 많은 사건들이 터져 나왔지만, 정부는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정부는 대국민사과를 통해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국민의 정부」는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윤필씨는 시사만화를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이고 싶다면서, 「공정하고 정직하고 균형 감각이 있는 작품」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윤씨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만화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매번 「귀중한 지면을 쓸데없는 짓으로 메꾼다」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윤씨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조치훈씨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은 만화가로서 자기 자신은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반성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윤필씨는 이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반찬」이 나닌 「밥」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 하루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공부에 투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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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