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온라인에 접속해 투표를 마쳤다.
국민참여당 주권당원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주권행사다.
한달전 회사에서 내부윤리규정을 이유로 탈당을 권고했다.
이번 당원대회 투표를 하기 위해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투표에 참여해 주권을 행사했다.
1. 거창하지 않았던 구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은 원래 노동인권 변호사였다.
그런 노무현이 정치권에 뛰어든 이유는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좀더 많은 일을, 실질직으로,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이 외쳤던 한 마디는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었고,
그 사람사는 세상은
"더럽고 치사한 꼴 안당하면서 그저 밥 세끼 먹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는 더럽고 치사한 꼴 당해야 밥 빌어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그런 한국 사회의 본질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87년 이후 일관되게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을 주창했던 민주노동당은
노무현의 꿈을 품고 있는 정당임에 틀림없다.
그런 민주노동당과 합당을 못할 이유가 없다.
참여당의 꿈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 두 번의 꼬마민주당, 제3세력 구축에 실패한 노무현
87년에 노골화된 지역주의.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로 패거리를 나누어 싸운 지역주의는
3당 합당으로 호남고립, 호남포위로 절정에 이른다.
한국 정치는 영호남 패권주의에 기반한 양당체제가 된다.
수많은 정당이 존재했지만
현실은 사실상 양당제 국가가 된 것이다.
노무현은 3당 합당에 거부하면서 통일민주당 깃발을 지켰다.
꼬마민주당의 길을 걸었다.
제3의 정치세력화를 꿈꿨다.
그러나 힘이 모자랐다.
지역주의의 강한 구심력에 빨려 들어갔다.
김대중의 정계은퇴로 야당의 구심점이었던 통합민주당.
통합민주당은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면서
또다시 꼬마민주당이 되어야 했다.
꼬마민주당의 힘은 약했고,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강력한 구심력에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노무현은 3세력의 꿈을 또다시 접어야 했다.
노무현이 좌절했던 지점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는 유시민이 서있는 곳은
바로 3당 합당 이후 꼬마민주당의 자리다.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영호남 패권주의에 기반한, 강요된 양당구조를 박살내겠다는 꿈을 다시 꾸는 것이다.
그리고 실현이 가능한 꿈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에 환호하는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정당
그런 정당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지금 내딛고 있는 것이다.
3. 참여당은 김해 보궐선거로 검증이 끝났다
내가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김해을 보궐선거 패배는
참여당에게 독자노선의 길을 주지 않았다.
그 선거의 패배가 암울했던 것은
제 3세력을 꿈꾸는 참여당에게 좌절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김해을 선거에서 패배하던 날,
이미 참여당에게는 독자노선의 길이 끝났다.
내가 지켜본 선거캠프는
준비되지 않은 정당,
무질서한 정당이었다.
선거 패배의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하면 수백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참여당이 가진 모든 역량을 101% 쏟아부은 선거였다.
모든 당원들이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가진 최대치를 보여주었고, 그 최대치는 우리의 역량과 실력을 드러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것은
그 정당이 독자노선을 계속 걸을 수 있을 때 이야기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정당을 향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바보같은 짓임에 틀림없다.
그 뜻은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당원들의 헌신과 노력은 찬사를 받을만하지만
그 대의와 헌신은 현실에서 인정받을 만큼 높은 수준의 역량은 아니었다.
참여당이 갈 수 있는 길은 이미
보궐선거 패배로 강요되었다.
몇 가지 선택지가 놓여졌고,
이제 우리는 오늘 그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던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진보통합정당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냉정하고 엄중한 자기진단부터 해야 한다.
참여당의 실력과 역량으로
과연 '의미있는 제3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지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김해 보궐선거가 끝나고 문제점을 진단하고,
참여당의 역량과 실력을 냉엄하게 평가하고,
그 대책과 대안을 제시한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엄중한 정치역학의 변화를 간과한 채
얼치기 프로 흉내를 내면서 패배원인 어쩌고 저쩌고 하는 숱한 아마추어들은 보았지만
오늘날 독자노선을 주창하는 당원들이 엄중한 자기진단을 한 걸 나는 보지 못했다.
4. 혁신과 통합에 관하여
짧게 언급하자면 혁신과 통합은 정당이 아니다.
혁통이 지역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독자적인 정당등록을 하지 않는 이상 그다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혁통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자기 모순부터 해명해야 할 것이다.
혁통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참여당 등 모든 정당이 통합해야 한다는 노선이다.
그렇다면 혁통 노선에 찬성하면서도
우리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고, 논리모순이다.
심지어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은
혁통 노선에도 부합하고
혁통 입장에서도 오히려 진보통합을 반가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로 혁통에서는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을 환영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진보통합에 반대하면서 혁통노선을 지지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논리모순이라는 것이다.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것인지,
혁통노선을 걷겠다는 것인지,
통합을 반대하는 당원들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
5. 대의를 위해서라면 굴욕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삼국지의 한 축인 유비는
나이 50이 다 되어가도록 변변한 자기기반이 없었다.
뜻을 갖고 세상에 나왔을 때
유비 옆에는 고작해야 관우와 장비 뿐이었다.
세력이 없었다.
그런 유비는 숱한 멸시와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원소에 의탁하고, 조조에게, 여포에게, 유표한테 의탁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런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나서도
위와 오의 양강 틈바구니에서 자기 기반을 가지게 된건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유비가 영웅 소리를 듣는 것은
그런 초라하고, 궁색하고, 비천한 신세를 묵묵히 인내했기 때문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진보통합은
바야흐로 유비가 형주를 기반으로 촉나라를 세워
천하를 삼분하여 기반을 세워 중원진출을 노리는 형세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그동안 형주 같은 조그만 성 하나 차지하고 눌러앉아 있던
자기 만족적인 자세를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중원을 호령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 민주노동당과 참여당이 통합하는 것은
지극이 순리에 맞다.
6. 유럽의 복지국가는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연합으로 만들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유럽의 진보주의 시대는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을 가졌던 자유당과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던 노동당 혹은 사민당의 연합으로 이룩한 것이다.
1900년 초까지 유럽 역시 보수주의의 보수당 일색이었다.
이런 보수당 지배체제를 해체한 것은
자유당과 사민당의 연정, 그리고 더 나아가 통합으로 일군 성과물이다.
복지를 외치고, 진보를 외치면서 참여당과 민노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그게 누구라도 반역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걸 가르켜 우리는 '입진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민노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상과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들이 정치를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당원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 역시 자유주의 성향의 나같은 참여당 당원들을 마땅찮아 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당 안에서도
백이면 백, 다 똑같을 수 없고
가치와 이념, 행동양식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이런 이유들로 통합에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소아적인 태도이며, 몰역사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신에 대하여
독점할 수 없는 가치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노무현 정신은 입으로 떠들어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고, 그 힘으로 세상을 실제로 바꾸어 나갈 때 의미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수'다.
정치를 개혁하고, 검찰을 개혁하고, 자본을 통제하고, 복지를 강화하고,
비상식적인 국정운영을 바로 잡는 것,
이 모든 것은 힘을 가질 때에 의미있는 것이지
힘도 없는 사람과 세력이 당위만 떠드는 것은
백면서생이나 할 짓이지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할 짓이 아니다.
언젠가 '이제 노무현을 떠나 보내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을 우리 스스로 놓아드리면서
우리 스스로 도그마에 갇히는 걸 경계하자는 의미였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스스로 노무현을 대중의 바다 속에 보내드릴 때이다.
우리 스스로 그 분의 뜻을 잊지 않도록,
가슴 한켠에 고이 모셔두고
그 분이 가고자 했던 길, 그 분이 꿈꿨던 세상만을 향해
부단하게 뛰어갈 때다.
'복수' 두 글자 아로새기자.
지금 우리에게 힘없는 정의는 필요치 않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