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속성 중 하나는. 상품화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왜냐? 화끈하거든. 후세의 사람들이 보기엔.
혁명의 전후사정과 과정에 대해서는 별달리 아는 바 없지만, 어쨌든 멋져는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오늘도 명동 길거리 젊은이들의 '머리'가 아닌 '티셔츠'에...멋지게 인쇄되어 있다. 혁명가에서 팝아트의 모델로...
흠...좀...무...
위대한 5.18 역시 마찬가지다. 벌써 상품화 돼버렸다. 모두들 숭고한 이 혁명을...자신의 사욕성 도구로 도구로써 '소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들. 이명박 대통령이 광주에 참배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박근혜 역시도 내 기억으로 이맘때가 되면 꼬박꼬박 추모의 헌화를 보내왔었다. 언제부턴가 여야 가릴 것 없이 광주는 무조건적으로 추모를 해야만 하는, 성지 아닌 성지가 된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로부터 고개숙임을 받는 광주 시민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여튼 이것 자체가 벌써..5.18의 훼손을 뜻해 버린다. 보라. 5.18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인간들이...언제 그랬냐는 듯 5.18을 볼모로 하여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지않나. 이렇듯...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곳에서...숭고하고 원형질적인 것들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모조리..승냥이들의 소비상품으로 전락해 버릴 뿐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유시민도 이날 당연히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문득 요즘 그의 근황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뉴스 검색을 해보았더니...
막 국회의원 사무실을 빼는 와중이었다. 18대 총선 낙선과 함께 어언 이십여년 만에 드디어 백수가 된 것이다. 사무실 복도 밖으로 나와 있는 그의 책뭉치들을 보니...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유시민,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렇다. 적어도 나에 관한 한, 유시민과 함께 하면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언제나 '미래'였다.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의외로 그를 '과거'의 이름으로써 기억 혹은 추억을 하곤 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로 점화된 그의 민주화 투쟁경력, 그리고 이후 꾸준히 한가지 길로 점철되어 왔던 그의 올곧은 인생역정, 시사평론가, 저술가, 국회 캐주얼복장 파동...
이런 식으로 그의 과거를 하나하나 추억하는 것이...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흐뭇한 추억거리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느긋함은 가능하면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이미 어련히 아시는 바일 테지만, 유시민은 영웅이 아니다. 간간이 우리들의 속을 통쾌하게 긁어주는 지적인 감초 역할을 해주곤 했지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임과 동시에...그저 우리 삶의 평범한 조력자일 뿐인 것이다. 우리집 방 문 수리를 도와주는 목수 아저씨 같은 그런 조력자.
그래서 나는 유시민이 나에게 끼친 사상가로서의 영향은..오직 가슴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치 그 스케일이 크고 높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따분한 '영웅주의'의 주인공으로 삼진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를 모욕하는 행위이다. 적어도 공식적인 석상에 있어서, 유시민은 내게 있어 그저 평범한 조력자일 뿐이다. 그가 저술가였을 때건 장관이었을때건 국회의원이었을 때건...그는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국민의 한사람인 나를 사심없이 도와주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사이좋게 공유하는 맘씨좋고 부지런한 그런 일꾼. 그는 소박하다. 그래서 맘껏 공유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속을 파고 들어가보면...나로선 감히 접근할 수 없는...거대한 지도자의 자질이 꿈틀대로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우리의 밝은 '미래'를 계시받곤 한다. 유시민에게서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부터 받게 되는 계시 말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와 함께 하면 반드시 행복할 날이 올 것이라는 그 소박한 믿음을.
'참모'로서의 재능은 있었다 치더라도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충분치 않은 유시민이다...라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있어왔다. 단순히 생각하면 일견 그럴싸하기도 하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조건은 오직 방향설정과 추진력 이 두가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참모 및 실무진들이 다 알아서 하면 된다. 박정희, 전두환이 경제를 잘 알아서 그렇게 급속한 경제성장을 일궈낸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싫든 좋든 그들은 군바리 특유의 저돌성을 발휘하여 방향설정과 추진력만 얹어주었을 뿐이다. 노무현 역시 현직 시절 '과정'을 대단히 중요시하긴 했지만, 지도자로서의 추진력이 뒤떨어졌던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똥고집,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여튼 이 '인간' 유시민은 그야말로 골수 민주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지도자'의 이미지를 설정함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추진력' 같은 가치들을 더 선호하는 오늘날의 국민들에게 있어서...그다지 썩 마음에 드는 인물상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시대는 변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참여, 합의 등의 가치로 표방되는 성숙된 민주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는 더 이상 철권통치형의 리더가 설 자리가 없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딱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부족함이 느끼져는 와중에서도 이미 올데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가장 좋은 형태로 계승하여 또다른 미래의 비전과 접합시킬 사람이...현재로선 유시민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유시민은 정확히, '민주사회'에만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의 지도자인 것이다. '조력자'로서의 의미가 더 강한 그런 신개념의 리더 말이다.
진중권은 노무현 최대의 업적을 대단히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것은 바로 '씨부릴 권리'.
아직까지 인터넷을 보면 '일안하는 빨갱이들이 입만 살았구나'라는 흑색비방을 일삼는 부류들이 많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관찰한 많은 한국인들, 그렇게 씨부려 대도 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공화국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이어져 온 이 '근면의 힘'을 나는 대단히 가슴 벅차게 생각하고 있다. 설령 그것을 촉발시킨 장본인이 박정희니 뭐니 하는 망발들이 있어도...어쨌든 그 자체는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니까.
여튼 모두들 머리에 든것도 많고 일도 잘하는...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를 더 확장하는 일만이 남았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함께 씨부리고(참여), 함께 결론을 도출(합의)해야 한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는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사회의 규모와 깊이가 예전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속도의 미학이 아닌, 느림의 미학을 도입해야 할 시기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끝까지 '속도'에 욕심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욕심 자체도 유시민이 얼마든지 커버해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의 나이 이미 50세를 넘겼고...90년대의 언론가, 2000년대를 정부관료를 거치면서 과거의 유산아닌 유산도...은근슬쩍(?)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속도를 향한 그 욕심이 과한 수준만 아니라면, 유시민은 이것도 얼마든지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이 물러나기까지 아직 4년 반의 시간이 더 남았다. 유시민과 또 그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우리들 모두 이 시기를...보수 세력의 반민주화 책동에 대항한 투쟁의 시간으로 보냄과 동시에...새로운 미래를 창달할 우리들 각자의 역량을 쌓아나가는 계기로써 소비해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21세기는 이미 개인의 시대.
시대를 바꾸려면 우리들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분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리고 유시민은 오래전부터 이런 모델을 몸소 우리들에게 실천해보여 왔다.
언제나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그.
나는 그에게서 언제고 정체하지 않는, '젊음'의 원형질을 느낀다. 그래서 그가 끌린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