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화상을 좀 입었다.
전기포트(무선주전자)에 물이 끓어서 커피믹스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하필 무선주전자 물 따르는 주둥이에 댔다.
"앗! ... 뜨거! ... 십알! ..."
재빨리 손을 치웠지만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고 쓰라렸다.
“뭐, 괜찮겄지 ... ".
옴마야 ... 잠시 후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생기더니 작은 풀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 바늘로 ... 땄다! ...
화상 부위가 살짝 쓰라리긴 했지만 ...
웬만하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 않는 자가치료(?)의 신봉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냥 귀차니즘 ... ‘괜찮겄지’ ... 걍 내버려뒀다.
다음날인가, 애엄마가 상처를 보더니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닦달을 한다.
여름에 화상을 입고 게다가 물집까지 땄으면 100% 염증 생긴다고.
게다가 "화상을 입었으면 찬물로 바로 화기를 빼야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냐!"
고 야단까지 맞았다. 내가 뭐 화상을 제대로 입어봤어야 알지 ...
그래도 병원에 안가려고 버티다가 쓰라림이 심상치 않아 결국 병원에 갔더니 ...
“염증이 생겼네요 ... 완치되려면 한 보름 정도 걸리겠습니다 ...”
허걱!
진짜 화상같지도 않은 화상인데 치료에 ... 보름이나 ...
날마다 병원에서 소독치료하고 약먹고 ... 날도 더운데 ... 재수도 없다.
화상 ...
생각나는 형님 한 분이 있다.
그 형은 아기 때 뜨거운 물을 뒤집어 썼는데 병원에 실려가서
죽네사네 그러다가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수술을 몇 차례 했지만 ...
얼굴 반쪽과 몸 절반이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그 유령처럼 심하게 일그러졌다. 게다가 화상 후유증으로 몸도 구부정하게 비틀렸고 달리지도 못하고 무거운 물건도 잘 못든다. 이 형과 함께 예전에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다들 물건을 나르는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길래 ...
“성님! ... 노는 손 좀 빌립시다 ... 어차피 뒤지믄 썩어질 삭신 ...”
“이런, 씨부럴 ... 나가 얼굴은 잘생겼어도 몸은 중증 장애인이여야 ...
조선놈들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어 ... 아조 뽝킹 코리안이여 ...”
그러더니 일어서서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는 시늉을 하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기어간다. 그러다가 결국 누워서 다리를 달달 떨며 신음소리를 낸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 각자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씩 꺼내 던졌다. 형은 기어다니며 동전을 줍더니 일어나서 공손하게 인사하고 담배 피러 나가면서 한마디 던진다 ...
“아따 씨벌 ... 근디 느그들하고 일할 때는 몸에 힘이 없는디 ... 이쁜 여자만 보믄 칼 루이스보다 더 빨리 뛸 수가 있제 ... 그거슬 기적이라고 하지 ... 긍께 씨발롬들아, 나가 지져스크라이스트 슈퍼타이여 ... 긍께 좆나게 경배해라이 ... ”
형은 늘 사람들을 웃겼는데 심지어 자기 몸의 불편함조차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입 주위 근육이 굳어서 말을 할 때 살짝 어눌한데 ... 신이 가엾게 여기셨는지 ... 말빨이 장난이 아니다. 욕은 뭐 ... 가히 신의 경지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흉터의 면적도 장난이 아니어서 결국 수술을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마흔 줄에 접어들어서야 형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어떻게 형수를 꼬셨냐고 물었더니 ...
“쫘식아 ... 나가 임마 ... 이빨이 인간문화재 아니냐 ... 나넌 말이여 ... 말로 여자를 오르가즘 느끼게 해불 수가 있어 ... 그러니께 나으 셋빠닥(혀)은 좌지이자 손이자 입술이지 ... 니도 오르가즘 느끼게 한 번 해주까? ... ”
“아따, 씨벌! ... 됐소!”
형은 자신의 흉터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본인도 사춘기 때 나름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특히 이성을 만날 때 왜 자괴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흉터는 자신의 몸의 역사고 그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흉터로 인한 핸디캡을 성형수술로 이겨내기보다 삶으로 이겨내고 싶어했다. 무엇보다 그 흉터에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굴곡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한 이에 대한 무시, 경멸, 이상한 눈초리, 은근한 따돌림들조차도 그의 몸에 각인된 그의 역사였다 ... 그게 지워지면 자신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런 형도 잠깐 갈등하는 시기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결혼을 생각할 무렵 ... 이제까지는 자신만 괜찮으면 됐지만,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누군가의 사위가 되고 누군가의 아빠가 되는 것 ... 특히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흉터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받는 불편한 시선들을 없애주고 싶었다.
형은 형수에게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형수가 형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한다면 반대하지 않을께. 하지만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수술을 한다면 그건 반대야. 당신의 흉터는 당신의 일부고 ... 어쩌면 당신의 전부일지도 몰라.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것은 당신의 흉터잖아. 당신이 평생 그 흉터와 더불어 살아왔듯이 나도 그럴거야. 어쩌면 우리가 인연이 된 것도 당신의 흉터 때문인지도 몰라.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 그런 엄청난 흉터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어서 반했던 거 같애 ... 물론 구라빨도 장난 아니었지만 ... ”
형은 결국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흉터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오페라의 유령' 주인공을 해야한다고 우긴다. 노래도 잘하고, 억울하게 생긴데다, 무엇보다 분장이 필요없으니까 ...
형을 처음 만났을 때, 형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형이 이 노래를 불렀을 때 ... 감전이 되는 줄 알았다 ... 먹먹하고 가슴에 뭐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처절한 생의 비애같은 것 ... 나는 그때 그저 ‘아, 저 형이 노래를 참 잘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형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 그의 웃음 뒤에 숨겨진 흉터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그 노래가 왜 그렇게 울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웃고 있어도’ 그냥 ‘눈물이 나’는 인생들이 부르는 노래가 흔히 그렇듯이 ...
당신들에게 형의 노래를 들려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 조용필보다 아니 이 세상 어떤 가수보다도 ‘그 겨울의 찻집’을 더 노래답게 부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당신들도 이해하리라. 만약 어떤 사람의 노래가 당신의 가슴을 치는 경험을 했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
손에 화상을 입고 ... 그의 흉터를 떠올린다.
슬픔도 웃음으로, 분노도 웃음으로, 쪽팔림도 웃음으로 ... 걸리는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켰지만 오직 노래만은 그의 생의 쓰라림을 숨길 수 없었던 ...
... 그의 노래가 듣고 싶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11-22 12:44:17 연예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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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 입은 망구 손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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