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짭새를 대하는 시민들 감정 상당히 안 좋잖아.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애들 상대로 짭새들이 몽댕이 휘두르는 사진, 넷판에 돌아다니니 모 당연하다. 시키니까 죽지못해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담아 휘두르는 짭새 표정이 잘 포착된 HD화질 사진을 보면.. 생각날때마다 나도 내방에 있는 알루미늄 야구방맹이 튜닝 하구 그런다. 돼지표 본드로 징도 박고 손잡이엔 우유로 윤 낸 가죽도 덧대고.
근데 생각해보면 몽박 정권 이전, 오랜 기간 동안 난 짭새들한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한 번 딱 보고 다시 만난 적 없지만 내 마음속에 좋은 친구로 남아있는 짭새 몇을 소개할라구.
- 03년 서울 동일로 건대 근처 20:00
당시는 <운전 중 핸폰 사용 금지>가 막 시작된 때였다. 된맛을 보기 전엔 말 즌나게 안 들어먹기로 유명한 나는 늘 그래왔든 약속장소로 가는 차안에서 "쫌 있으면 만날 꺼면서"도 동숙이와 통화중이었다. 그러는 나를 짭새가 세웠다. 나는 얼른 차 창문을 열고 전화기를 가리키며..
"아저씨 죄송해요, 길 물어보니라고 그랬어요. 금방 끊을께요" "예, 시범기간이라 봐드리지만 주의하셔야 해요. 글고 저 아저씨 아니에요"
근데 바로 담 신호등에서 깨달은 거다. 내가 목적지를 한참 지나쳐 달리고 있었다는 거슬. 그래서 유턴을 해 반대편 차선을 다시 달리는 중에 또 걸렸다. 쫌전 그 짭새한테. 당황한 나는 (또) 차 창문을 열고 '당황한 기색'은 숨기고 '진지'하게 (또) 전화기를 가리키며..
"그러니까 얘,, 얜 아까 걔 아니고 딴 애거든요?" "아~예"
이러구 녹색불 들어왔으니 얼른 출발하라는 손짓을 했다. 엉겁결에 출발하고 백미러를 통해보니 뒤늦게 자신이 원하는 건 "얘가 걔가 아니고자시고간에 운전 중 통화금지"라는 걸 깨달은 짭새오빠가 내 차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단순한 삿대질이 아니었다. 한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댄 모양을 취하고 다른 한손은 엑스자를 막 그리고 있는 거다. ㅜㅜ
"옵빠, 지금도 미안해. 나 재떨이에 담배 끄다 영업차 들이박고, 독하게 뒤집어쓴 뒤 부터 운전 중엔 정말 운전만 해요"
-03년 상왕십리 14:00
보통 길 물어볼 때 택시아저씨랑 짭새아저씨한테 묻잖아. 난 짭새를 선호하는 편.
그날도 신호등 대기 상태에서 옆에 있는 짭새차 짭새한테 길을 물었는데 아저씨 너~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는 거야.
"어허, 이 신호에서 좌회전 받어야 하는데 댁은 시방 직진 차선에 서있네. 어허, 이를 어쩌나. 어허, 참말로 안타깝네" "ㅜㅜ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클났는데.. 엄마한테 매맞는데..ㅜㅜ"
어쨌든 고맙다고 하구 창문 다시 닫구 '하나 가서 유턴해야지' 계산하는데 갑자기 짭새 아저씨 빵빠레 울리면서 확성기에 대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게 외치는 거다.
"좌회전 차선 맨 앞에 대기하고 있는 서울 무 5XXXX 트럭, 잠시 대기하십시오. 긴급상황입니다. 머리에 빨간 두건 탑승한 서울 바 6X0X 페라리(가명) 차량, 좌회전 해야합니다. 반복합니다. 서울 무 트럭, 신호 바껴도 바로 출발 말고 잠시 대기하세요"
계속 뿌엥뿌엥 빵빠레 울려가면서 나 빨간 두건이 좌회전 성공할 때까지.. 정말 고마웠다.
-03년 한겨울 방배파출소 부근 23:00
길 물어볼라구 차에서 내려 정차해있는 경찰차로 다가갔다. 어우 근데 엄청 추운 거여. 찬바람 부는 밤, 햄버거 먹다말고 창문 연 채 길 알려주는 짭새도 짜증날 거 같아 "추운데 쫌 탈께요" 이러구 뒷문을 열고 얼릉 들어갔다. 맥도날드 포장지에 약도까지 그려 자세한 설명 해준 것, 먹다 남은 거지만 자기네끼리 먹기 뻘쭘하다고 권해준 감자튀김도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나오려는데 문이 안 열리는 거다. 문꼬리 막 땡기고 유리창도 탁탁 때리면서 "아저씨, 뒷문 고장났나바요" 이러는데..
"경찰차는 (범인)호송차 개념이라 뒷자석은 안에서 문 못 열어요. 아까 들어오실 때 안그래도 그 말 하려는데 동작이 워낙 빠르셔서.."
이러구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와 밖에서 차문을 열어주셨다. 날 진짜 추웠는데 싫은 내색 전혀 없이. 아~ 그래서 아까 감자튀김이랑 약도도 창문으로 건네주셨던거구나. 난 또 왜 앞뒤좌석 사이에 철망이 있나했지.
-06년 영등포 07:00
급하게 400 장 정도 되는 분량을 복사해서 09시 이전에 넘겨야 하는데 그날이 공휴일이라 아무리 찾아도 문 연 복사가게가 없는 거야. 두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그래서 영등포 경찰서로 뛰들어가 부탁을 했더니 "이런 시츄에이션은 첨이지만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며 복사하는 내내 옆에서 '종이 안 모잘라요?' '복사기 연식이 쩜 돼서 중간에 자꾸 점들이 찍히네요, 갠찮겠어요?' 물어봐준 강력계 형사 아저씨 얼굴 아직도 기억난다. (복사하는 옆에선 새벽에 잡혀온 취객 둘, 아직도 술이 덜 깨서 한놈은 형사 아저씨한테 삿대질 하며 방언을 스부리고 또한놈은 바닥에 엎어져 자다말고 기합넣고 몸땡이 확 뒤집어 분수처럼 토하고.. 보통 3차는 감자탕 먹으니까 붉은 국물인데 얜 멀 츠무겄는지 특이하게도 청록색 국물이 펑펑. 냄새두.. 하우~)
남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복사하는 내가 더 미안한데 강력계 아저씨, 냄새나죠? 이러면서 미안해하고 그 무슨 석류액 5% 들어간 강장드링크도 갖다주셨다. 복사 다 끝나고 내가 종잇값은 꼭 드려야겠다 고 하는데도 아유 아니라며, 복사상태도 즈질이고 복사하는 내내 주위환경 쾌적 (못)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종잇값을 받냐며 됐다고.. 다른 강력계 아저씨들까지 몰켜오셔서리 그냥 가라고.. A4 싸이즈면 환경 좋은 딴방도 있었는데 고장 안 난 A3 가능 복사기는 여기밖에 없어서..우리가 더 미안하다고..
"강력계 옵빠! 너무 고마왔어요. 그때 복사 못했으면 8개월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조선돈, 한 큐에 날릴뻔 했어요"
-06년 장흥
친구들이랑 자주 근교로 나가 흑돼지 꿔먹었거든. 근수는 한정이 돼있는데 그날따라 친구 달고 온 애들 땜에 고기가 쫌 모자라 보이는 거야. 그래서 대충 핏기만 가셨다싶으면 얼릉얼릉 집어먹었는데 돼지라 탈이 났나봐. 친구들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중에 이..뭐.. 다 쏟아져내리겠다 싶은 신호가 오는 거지. 그래서 파출소 앞에 아무케나 세워놓고 뛰들어갔다. 평소 급하면 파출소를 자주 이용하는지라 건물 구조상 화장실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정도는 안 물어봐도 입구에 섰을 때 각이 딱 나오거든. 와장창 출입문을 열고 뛰어든 뒤 말도 없이 뒷편을 향해 마구 뛰어가는 나를 보는 파출소 내 아저씨들의 황당한 시선을 느끼지만.. 지금 전후사정 설명할 여유 따윈 없는 거거든.
일 마치고 나오는데 소리로 뭔 일이었는지 이미 짭새옵빠들은 감 다 잡은 거다. 나도 옵빠들도.. 서로서로 민망한 거니까 눈 안 마주치고 그냥 고개만 꾸뻑인사로 퇴장하려는데 뒷통수에서 "야, 김순경, 니 휴지 채워났드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다. 휴지 없었다. 그냥 퇴장하면 내가 손가락이나 발꿈치로 딲아낸 줄 알 게 뻔했다. 차에서 챙겨갔던 크리넥스 봉다리를 말없이 둬번 흔든 뒤.. 다시 한 번 목례를 하고 나왔다.
이외에도 많지만 길면 지루하니까..
때리는 짭새도 있지만 친절한 짭새도 많이 봤다는 말이 하고싶었다 월요일 장거리 타는데 지방 짭새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갔다와서 머 있으면 알려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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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