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가을, 텁텁한 자판기 커피 한 컵을 다 마실 만큼의 거리를 전철을 타고 달려가 열린 방문을 통해 오래된 느티나무가 보이던 깊숙한 집 한 켠에서 세상 여기저기에서 나처럼 떠나온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에게서 불온한 냄새가 났고 내 시선 또한 불온하였다.
그 해 겨울, 연탄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드는 나의 새 자취방에서 나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 겨울은 유독 추웠는데, 나트륨 등 하나 덜렁 켜 있던 골목에 개가 짖어대면, 싸구려 종이에 인쇄된 신문지 뒤적이는 소리에 뒤섞여 흰 눈발이 드문드문 내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 누구는 너무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아주 잊어 버렸고, 다른 누구는 해 마다 한 두번 술잔 권하는 일이 전부였고, 또 누구는 몇 사람 건너로 희미한 안부를 전해들었는데..
2011년 봄, 바쁜 아침, 욕이 이빨끝까지 치밀어 애꿎게 키보드만 학대하던 오늘, 낯선 번호가 찍힌 전화기 저 편에서 들리는 한 15년 소식 모르고 살던 사람의 목소리 반갑고 낯설고 황망하고 또 낯설은데, 그도 그런 듯이 더듬더듬하다가 5월에 서울 어디, 혹시 매화꽃, 산수유 다 진 5월에라도, 얼굴 한번 보자는, 무슨 철쭉꽃 봄 아지랑이 같은 전화 한 통.
대만 출장 다녀온 동료가 건네 준 할리스 1 회용 커피팩에 코를 디밀다가 1991년의 가을로 다시 달려가는 마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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