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인데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사다 지로는 <철도원>,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다. 이 소설집에는 <수국꽃 정사>, <나락>, <죽음 비용>, <히나 마츠리> 그리고 소설집의 표제작인 <장미도둑>과 <가인>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 중 <가인>은 안 읽어도 된다. 나머지 작품들은 다 재미있고 훌륭하고 고리타분하지 않다.
그 중 <장미도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12살 소년이 장기 해외 항해를 떠난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가 소설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다니는 초등학교 젊은 남자 선생이 마을의 젊은 학부모 유부녀들을 농락하는데 소년의 엄마도 그 선생의 농락대상 중 하나다. 선생은 각각의 유부녀들과 데이트 할 때마다 동네 정원의 장미꽃을 잘라 선물로 주는 모양인데..
그런데 소년은 그 실상을 알 리가 없다. 소년은 과연 누가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장미꽃들을 훔쳐가는지 너무 화가 나고 궁금하고 마음이 아픈 것이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장미도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장미에 대한 조예와 사랑을 펼쳐놓는다.
독자들은 소년의 편지를 통해서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간접적으로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뻔한 사정이지만 소년의 묘사가 아주 귀엽고 재미있다.
소년은 또 아버지에게 자신이 최근에 좋아하게 된 옆집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날 소년은 그 소녀와 키스하는데 성공하는데 그때쯤 선생-유부녀 스캔들로 인해 어른들의 세계엔 반향이 일어난다. 소년은 뒤숭숭한 동네 분위기가 자기가 옆집소녀와 키스한 것이 소문이 나서 그런 줄 알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장미도둑>이란 제목이 절묘하다. 여자 꼬시려고 일회용으로 던져주는 장미에 대한 정서적 가치를 소년의 순수한 장미 사랑으로 대치하여 표현한 것이 매우 재미있고 문학적인 것 같다. 게다가 이 소설은 소년을 통해 장미꽃의 디테일을 아주 세세히 표현하면서 주제를 더더욱 깊이있게 완성시킨다. <장미도둑>은 흔히 여타 소설에서 겉멋으로 디테일을 늘어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디테일 묘사 자체가 형식의 완성도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집의 나머지 단편들도 훌륭하다. 특히 <수국꽃 정사>는 자살을 하기 위해 시골 온천을 찾은 남자가 같이 하룻밤을 보내게 된 접대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결국 둘이 같이 죽기로 한다는 이야기인데 나른한 비장미가 일품이다.
작가 아사다 지로는 자칫 말랑말랑한 소설가로 오해하기 쉬운데 무게 있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릴 줄 아는 아주 훌륭한 작가다.
<장미도둑>은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소설 중의 하나다. 강추!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3-27 15:53:39 문예·과학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5-02 04:45:28 월간박봉팔닷컴에서 복사 됨]
일본 작가 책에 대한 느낌은, '모' 아니면 '도'더라.
어떤건 오글거려서 못 읽겠고, 어떤건 미치도록 좋고.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는 후자.
아사다 지로는 아직 안 읽어 봤는데,
검색해보니 <철도원>, <파이란> 원작자네.
<빼앗기고 참는가>, <칼에 지다>, <번쩍번쩍 의리통신>은 제목부터 땡긴다.
잘 읽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