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
오늘부터 '찌라시에 나오지 않는 사실들'이라고, 스포츠 찌라시에 나오지 않았던 여러가지 진실(?)들에 대해서 연재한다.
찌라시들이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날조한 사실들, 소송에 걸릴까봐 보도하지 않은 사실들, 대다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서 비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린다.
찌라시에 나오지 않는 사실 1편은 18년 만에 금의환향해 고향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어하시는 국민투수 찬호 파크 형님에 대한 잘못된 루머에 대해 쓰겠다.
이 형님이 처음 LA 다저스에 입단하시고, 이 후 다저스에서 10승을 돌파하시거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큰 공을 세우면 항상 아래와 같은 식으로 톱 기사가 떴다.
'공주고 볼보이에서 MLB 15승 투수로 우뚝 선 박찬호'
'손혁한테 밀리던 2류 인생, 남한 야구대표팀의 영웅이 되다. 박찬호'
'3억 먹튀 손혁, 박찬호보다 잘 나가던 공주고 에이스 시절 잊었나?'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서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 동영상까지 볼 정도지만,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만 해도 이 기사들을 보시고서는 찬호 형님을 대기만성형 투수로 보고서 삶의 용기를 얻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찌라시 기자들이 자수성가, 대기만성 스토리에 목마른 남한 민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설을 한 편 쓴 거지.
찬호 형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쭈욱 공주고의 에이스였어. 1년 선배인 유리몸 신재웅, 1년 후배인 탕아 노장진을 대신해 지역예선(충남)에서 홀로 대전고, 북일고와 맞섰고,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0년 봉황기 8강전에서는 당시 청소년대표 투수였던 임선동을 상대로 15이닝 완투승을 따내면서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될 정도였지. 오죽했으면 빙그레 이글스가 당시로써는 거금인 4천만원(2년 전 송진우 선수가 빙그레에 입단할 당시 계약금이 옵션까지 합쳐서 5천만원이었지. 그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대우한 거여)을 계약금으로 준다고 하면서 박찬호를 입단시키려고 했겠어?
그럼 찌라시가 박찬호보다 잘한다고 했던 그 손혁이라는 놈은 어땠냐구? 말도 마. 걔는 야구부 후원자인 천석꾼 할아버지 덕에 야구부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는 설이 우세하고, 대학도 할아버지가 고려대 총장한테 1억 기부해서 들어갔지. 대학에서도 내내 벤치만 지키다가 졸업반 때 5경기인가 나가서 신나게 홈런 처 맞은게 전부였고. 그 허접이 엘지에서 10승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엘지 코치들이 유능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팀이 무능했던 건지 헷갈려.
아직도 파울볼, 엠엘비파크같은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박찬호가 대학교 때 급성장했다,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잘 하던 친구였다를 놓고서 논쟁이 한창인데,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통해 찬호 형님의 고딩 시절 활약상까지 볼 수 있는 오늘날까지 저런 논쟁(?)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참 찌라시의 소설 쓰기는 임팩트가 커.
그럼 첫 편은 이쯤에서 끝내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6-03 15:55:23 연예·스포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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