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음 만나는 자유>는 정신병동에 모이게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원작가 '수잔나 케이슨' 과 주연배우 '위노나 라이더' 두 사람 모두 유년시절 정신이상으로 수용시설에 보내진 공통점이 있으며 수잔나 케이슨은 자신의 본명,집필해온 책의 필명과 함께 내용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포함된 세가지 이름을 일치시키는 특징이 있다. 어느 소설가나 스스로 체득해온 세계관이 주 가되어 책을 완성시키고 자전적 내용역시 가상의 명칭을 통해 집필해온 경우가 많았지만, 수잔나 케이슨 만큼 글과 삶을 동일시하여 공개하는 작가도 보기 드문 편이며 마찬가지로 영화속 주인공 이름도 '수잔나 케이슨' 으로 설정 되었다.


세월의 모진 풍파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온 소녀같은 느낌과 중성적인 보이시한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며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위노나 라이더는, 사실 순수한 이미지완 달리 헐리웃의 알아주는 악동중에 한명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스캔들이야 뭐 그곳에서 가십거리도 안되겠지만,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습관성 '도벽' 이라 할 수 있는데 주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다운타운 거리의 마트에서 상습적인 절도행각을 벌이다 검거되어 구금,벌금,외출제한,보호관찰,사회봉사,의무적 심리치료등의 화려한 처분을 연이어 받은 전력이 있다. 대부분 코카인과 총기 불법소지, 음주운전 등으로 망신살을 뻗쳐온 스타들이 많은 헐리웃에서 누가봐도 생계가 어렵지 않을 대스타. 위노나가 보여온 도벽증세는 솔직히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의 시작은 수잔나의 자살기도에 대한 언급과 현실속의 교차로 진행된다. 아스피린 한통을 보드카로 넘겨버린 17세 소녀. 그리고 사람들의 물음에 '난 손목에 뼈가 없어요' '넌 그럼 뼈가 없는데 어떻게 아스피린과 보드카 병을 짚었지?'. 영화는 초중반부 내내 주인공이 인격장애로 판정되어 정신병동에 같혀진 과정들이 잘못된 오진에 가까웠음을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수잔나의 상태는 그 나이때에 누구나 가져 볼법한 반항기와 기성세대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가진 정도로 비춰지지만, '어른' 들의 시각에는 자살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환자로 인식된다.


수잔나가 정말로 미쳐서 이 곳에 오게 된 건지, 원작가와 감독의 의도대로 경직된 세상때문에 억울한 수용생활을 시작한 것 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만난 친구들 모두가 그녀처럼 판단력이 충분함에도 억울하게 끌려온 모습 같진 않았다. 병동의 소녀들 중 가장 공격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수 차례 탈출을 반복하고 되잡혀오는 리사, 너무도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 갑자기 자신의 얼굴에 불을 지피는 폴리, 유아기부터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세상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추앙하고 의존하는 데이지, 아무에게나 성교를 요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웨이즈, 그 외의 모든 사연을 가지고 병원에 모인 아픈아이들.   

작가의 꿈을 키우던 수잔나의 시선에 처음 들어온 낯선 풍경과 때론 불결하기까지 한 정신병동의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혼란과 한시도 멈추기 힘든 이질적인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했다. 퇴원을 요구하고, 의도적으로 불만 섞인 행동을 나타내 보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바뀌는 것은 없다. 가족들 역시 병원에 있는 그녀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는 분위기다. 허나 수잔나는 다른 아이들 처럼 이성을 잃고 자학하거나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으며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병원에 적응해 간다.

한편, 관객의 입장에선 특별히 갈 곳이 없어 보임에도 수시로 병원을 탈출하였다 돌아오는 리사(안젤리나 졸리)에게 일종의 호기심을 같게 되는 수잔나. 둘은 원론적 구성을 통해 나름의 교분을 쌓고 가까워 진다. 숨겨 두었던 서로의 비밀을 터놓기도 하며 이를 벗삼아 다른 친구들과의 소통도 넓혀가게 된다. 하루라도 더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던 수잔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 남자친구 까지 거부하며 병원과 친구들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하지만 주요배역인 수잔나와 리사의 예상치못한 갈등구조가 막판에 터진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우정을 맺은 소중한 사이지만 언제까지 정신병원의 매력에 도취되 있을 수 없음을 각자가 깨달으며 사사건건 부딪힌다. 더욱이 수잔나는 훗날 자신의 소설 내용으로 삼기위해 병원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적어 놓았는데, 리사는 그것을 몰래 훔쳐 아이들 앞에 공개하며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행복했지만 현실을 갈망할 수 밖에 없는 입장, 사회복귀가 가능하다는 원장의 진단을 받아야 하는 입장, 부모의 관심을 되찾아 퇴원요구를 얻어내야 하는 입장, 아마도 수잔나의 이런 관점과 동 떨어져있는 이곳의 친구들은 그녀의 사회적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반사회적 상태를 재확인 하는 자괴와 소외를 느꼈을 것이다. 

영화의 초반지점, 자살시도 후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수잔나는 '남들과 틀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 이라 주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범한 일상을 쟁취한 우리들의 손으로 잠궈버린 이 아이들의 재능은 어떤식으로 활용되는게 가장 옳을지, 과연 우리는 진심으로 이들을 필요로 하며 병세가 나아지길 바라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이자 <처음 만나는 자유>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결말로 돌아와, 주인공인 수잔나 케이슨은 똑 부러지게 설명키 힘든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세상밖으로 옮겨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하게 수잔나와 리사는 거리에서 마주친다. 여기까지에 해당되는 이 영화속 흐름들의 다이나믹한 과정은 한번쯤 직접 시간내어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억해둘 만한 좋은 대사들이 의외로 많다. 

1967년 4월 27일은 수잔나 케이슨이 자살소동을 일으킨 후, 본래부터 그녀를 탐탁치 않아 하던 가족과 상담사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 정신병원에 오게 된 날이다. 영화는 수잔나가 입원한 당일을 전후하여 6.7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간간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삽입해 놓기도 하였다. 도미노 처럼 이어진 주요 정치인들의 암살, 극으로 치닫은 인종갈등, 월남을 볼모로 패권주의의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낸 정치관료, 각계 이익 집단들의 파행, 강제 징집, 문란한 집단 성교와 마약에 찌든 채 미지의 병AIDS만 대폭 확대시킴으로서 일부 뮤지션의 음악적 성과 외에는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킨 것이 전부였던 히피들의 반전운동.

이렇듯 과연 어느쪽이 더 비정상인지 판가름이 안서는 통제불능의 광기로 미국 전역이 들끓던 시절. 오히려 영화는 혼돈의 광풍이 휘몰아친 바깥세상의 모습보다 그들로부터 미쳤다는 판정을 받고 수잔나가 겪게 된 정신병원의 추억을 더욱 평온한 안식처로 그려주고 있다. 물론<처음 만나는 자유>는 설득력이 크게 결여된 채 인물들의 패턴이 급작스레 변하는 단점외에도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다수의 요구를 충족 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6.70년대의 미국을 비판하는 영화 대부분이 과도한 철학관념을 적용해 국가의 모순에 대항하며 이건 마치 영화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느낌으로 관객에게 피로를 준 반면, 이 작품은 특별한 화학적 요소없이 우리 시야에서 가려진 극소수의 통증을 조용히 살피게 하는 소박한 힘을 지녔다. 개인적으로 여러번 돌려보는 영화들 중 하나다.





영화속에서 매우 공격적인 '편집성 인격장애 Paranoid Personality Disorder' 를 앓고있는 '리사' 역을 맡아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 안젤리나 졸리는 2000년에 펼쳐진 72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처음 만나는 자유>는 주연이었던 '위노나 라이더'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 두 사람 모두의 배우 인생에 아직까지도 최고의 호연을 펼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한 사람은 전성기가 지나 특별한 영화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블록버스터와 메이저에 심취한 모습이 역력하여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