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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꽤 인지도가 높은 제이크 질렌할이 영화의 타이틀 롤 '도니 다코' 를 연기했다. 도니 다코가 2001년에 공개 되었으니 그 당시 제이크 질렌할은 21살, 각본.감독 모두를 담당했던 리차드 켈리는 26살이었다. 고로 얼핏 보아선 생기발랄한 틴에이저물의 과정이 연상되지만 작품 내면을 깊숙히 건드려보면 그리 가볍거나 녹록하지 않은 심오한 주제가 품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명칭 자체부터 굉장히 우화스러운 Middle Sex 미들섹스 지역의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도니 다코는 극심하리 까진 아닌 미약한 정신분열 증세로서 약물 치료를 받고있는 청소년이다. 그는 가족들과의 대화면이나 교우관계에 있어서도 원활한 소통기술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획일적인 교내 수업방식에도 눈에띄게 반감을 드러내는 일종의 문제아다. '교칙' 이나 '규율' 이라는 존재에 앞장서서 삐딱선을 타는 경우가 의외로 동기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호감을 얻는 경우가 많지만 도니 다코는 여기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공부에 취미가 없다고 하여 진이 빠질마냥 제대로 놀줄아는 화끈한 성향 역시도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다.
이어 수면장애에 의한 몽유병까지 앓고있는 주인공 도니 다코에게 비정상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잠에 취해 집밖을 배회하고 돌아와 보니 커다란 비행기 파편이 방 한가운데에 꼿혀있거나, 자신을 프랭크라고 소개한 토끼 괴물이 그의 앞에 수시로 나타나 세상이 곧 종말할 것이란 불길한 암시를 하고 사라져버리는 일을 겪는다. 도니 다코는 아직 토끼 괴물에 대한 확신은 가지지 못하였지만 몽유병을 겪던 사이 집 천장을 덮쳐버린 비행기 잔해에 대한 의문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태연히 살아 돌아온 그를 향해 안도감을 표시한 가족들의 모습으로 얻게 된 사실확인에 의한 현실 감각이었다.
남다를 거라 여겨지는 괴짜지만 도니 다코는 영화의 초반 에피소드를 통해 누구나 가질법한 공포심을 드러낸다. 그 역시도 사리분별 앞에 불완전한 인격체인 어린 소년이고 평범한 학생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위에 불거져버린 또 다른 계기들의 중심이 되며 온화한 감정으로 도니 다코에 고정되던 시각은 더욱 큰 폭으로 줄어들어 그는 이제 흔해빠진 문제아에서 동네 간판급 이단아로서의 오명길을 걷게 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들섹스의 이단아 겸 싸이코가 된 도니 다코는 부정적인 주윗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세상의 종말과 위기를 탐구해가기 시작한다. 토끼 괴물이 말했던 28일후에 세상이 없어진다던 종말론의 의미. 자신의 팔에 새겨진 이해 불가한 숫자들. 그와 별개로 도니 다코는 토끼의 사주로 자신도 모르게 평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커닝햄의 자택에 불을 지른뒤 자신이 속한 학교에도 의도적인 물난리를 일으킨다. 그 덕에 이성친구인 그레첸을 만나게 되고 사랑을 나누지만 토끼가 말했던 28일 후, 가족들이 위기에 빠지고 애인 그레첸역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혼란에 빠진 도니 다코는 자신이 살아남았던 비행기 추락 사건을 되짚으며 그것은 본인에게 주어진 일종의 운이 아니라 교묘하게 얽힌 트릭속에서 자행된 누군가의 계산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방화를 저지르던 순간에도 우연찮게 자신의 방 위로 추락했던 사고 비행기를 목격하고 같이 탑승해있던 가족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역시나 아무 죄 없던 그레첸도 주인공의 운명에 휘말리어 목숨을 잃었다. 도니 다코는 알게된다. 몽유병에 취해 거리를 나돌던 날, 천장위로 쏟아진 비행기 파편을 피하게 해준것은 토끼괴물의 의도적인 손짓이었으며 만약 자신이 그때 죽게 되었더라면 가족이나 여자친구의 희생도 없었을거란 확신을 가진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 도니 다코는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메가픽션 '타임슬립' 이란 무형의 장치를 이용하여 시공간을 넘어선 여정을 시도한다. 이것의 주 목적은 자신의 희생으로서 얻게되는 주변인들의 행복이며 생존이다. 결말부터 미리 풀어보자면 종말론으로 지배된 내용의 핵심은 '탄젠트 유니버스' 라는 또 하나의 단서로 관객 시선을 잠시 유혹한 지구전체의 멸망이 아니라 도니 다코 자신이 접촉하는 지상 공간의 몰락이었다. 이를 뒷받침 할 만한 근거를 일부 건성으로 표현한다면 짜집기 형태로 사건의 개요들을 연결시켜 놓은 점으로 예를 들수있다. 영화는 시간이동수단인 '타임슬립' 을 통해 자신이 죽지 않았을경우, 혹은 죽었을 경우에 발발할 또 다른 현상을 제시하며 그 선택여부를 도니 다코에게 맞긴다. 물론 그 비중은 도니 다코의 생활과 더욱 밀접한 연계성이 있다.
자신의 철학관념을 영화에 대비시켜 보는이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흔한 연출의 세계에서 감독 리처드 켈리는 주인공 1인에게만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도니 다코'가 계속 살아간다면 가까운 주변인을 모두 잃는 다는 설정, 비행기 파편에 정통으로 부딪혔다면 혼자만 죽고 다른이는 행복히 살아가지만 그 누구도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리란 두 가지 갈래 사이에 어리고 힘없는 도니 다코를 섞어버린다. 이 대목이 '도니 다코' 라는 작품에 크게 만족했던 매니아들의 대표적인 사유일지도 모르겠다. 기이한 행동으로 세상과 의절한 소년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과 죽음의 감당은 그 어떤 SF 기성세대 영웅들도 소화하지 못했던 독특한 컨셉이기에.
 물론 이 영화가 선보인 기존의 SF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창조적 내러티브형식은 분명히 인정받을만 하였고 또 어떤 측면에선 상당한 호평을 얻었다. 허나 죽음과 토끼괴물, 그리고 타임슬립이라는 각자의 꼬리를 이어 연계시키는 장면들의 상세함내지 설득력은 관객 기호에 따라 탄탄하거나 허술하게 끼워맞춘 삼류 판타지의 전형으로 양분 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중요 부위에 대한 설명이 매끄럽지 못하다. 어떠한 명제를 주장하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부터 명확한 합리화를 시킨후에 가감없이 상대에게 전달할 줄 알아야만 그 의도가 성립된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것이야 말로 영화라는 단순한 상품이 작품이라는 귀한 존재로 승화되는 불가불한 과정이다. 주인공이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여서 표현력이 충분하지 못했던 배경까지 전체요소의 일부로 적용했다면 감독은 말 그대로 천재이지만 이자리에서 거기까지 유추하기는 무리일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도니 다코의 평점을 하락시킬 주관적 단면일 뿐이다. 더군다나 내가 생각하는 영화내부의 독소가 소화하지도 못할 광범위한 시놉을 억지로 구겨넣었다는 뜻에 해당할리도 없다. 가려진 여백이 증가할수록 각자의 상상기준은 더욱 넘쳐나기에 이 또한 무시할수 없는 '도니 다코' 류 영화들의 살아있는 관전포인트다. 미리부터 정해진 종말의 시한도 흔들리지 않게 집중시키는 좋은 장치다. 굳이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드러난 실체만 음미하는 관객도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허기를 대리만족으로 달래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비유를 적절히 맞춰갔던 방식 또한 일견 대중적인 면모로서 재조명 해볼수 있다.
이는 침이 마르게 설득하여도 고정된 가치가 영원할듯한 보수적 카운셀러 커닝햄의 위선을 단박에 처치해버리는 장면에서 필히 느끼게 된다. 학생들에게 획일화 된 올바름을 반 강제적으로 설파하던 그가 알고봤더니 아동을 성적으로 추구해온 도착자였다는 사실로서 도니 다코는 그의 집에 불을 질러버린다. 물론 프랭크(토끼 괴물)가 사주한 무의식중의 행동이었다 한들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관객은 거의 없다. 미지의 '토끼 괴물' 이란 형체가 도니 다코의 짓눌린 욕망을 분출시킬 제2의 자아로서 인식될 소지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도니 다코'의 도니 다코는 그런 존재다. 제도권내에서 용인될수 없는 행동을 거침없이 해나가지만 명분마저 버리진 않았던 존재. 똘끼충만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를 말해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작은 인격체. 이것은 봉팔러들도 해당되는 내용이겠지만 내 아이가 수업시간에 그 처럼 책상을 박차고 일어서 교사의 오류를 꼬집는다거나 못된사람을 극단적으로 벌하는 청소년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입장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 자식의 주장이 갑이던 을이던 논란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지양하고 싶은것도 사실. 그렇지만 도니 다코같은 질주형 타입이 하나쯤은 필요 하다는 것에 부정적일 시각은 적다. 솔직한 심정으로 내 곁에 두기는 부담스럽지만 겉으로 나마 그의 감성적 변호인이 되고픈 의향은 영화에 심취할수록 뚜렸이 샘솟아 오른다.
황당한 이미지에서 남들 모르게 희생을 감내해야할 서글픈 캐릭터로 변해간 주인공은 본인 유일의 교감상대로 인식하던 케런 선생(드류 베리모어)이 해고 당하는 장면을 마주친 뒤 영화속 가장 큰 분노감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니 다코에게 있어 우리 어른들의 단골 코멘트인 '시기상조' 를 반박할 '시간이동의 철학' 이란 토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어본 성인이기 때문이다. 갑갑한 일상의 도피처를 찾기 힘든 사방이 꽉 막힌 사회. 감독 리처드 켈리는 물질 만능주의 맹신과 최고조의 정치 보수화가 이뤄진 80년대 미국의 총체적 고민거리역시 도니 다코를 휘감은 경직된 배경을 통해 역설한다.
끊임없이 도니 다코를 가여운 영혼으로서만 규정해 내린것 같다.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보면 도니 다코는 자신의 현실을 망각해버렸던 개인적 손실과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는 매우 희귀한 이득을 건진 불운한 행운아로 기록하여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또한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쳐 흐르는 '볼매남' 이다. 그는 의학이 고증하는 정신분열 환자이기도 했지만 또래 청소년들이 쉽게 빠져드는 병적 이미지 트레이닝에도 중독되지 않았었다. 우리 체계에 지나치게 강조되는 선善의 절망감을 유일하게 감지한 깨어있는 소년이기도 했다.
영화 출발과 동시에 28일이 지나 종말의 시한이 마무리 되는 날. 그는 마침내 간절히 원하던대로 타임슬립을 이용해 다시 28일전으로 돌아가 비행기 파편에 몸을 내던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영화에 잡혀져온 표정중에 가장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다. 그 결과에 대한 받아들임은 수 많은 '도니 다코' 리뷰어들의 견해가 복잡하게 나뉘어진다. 죽음으로 인한 비극일지 아닐지,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일지에 대한 해답은 혹시나 리뷰를 읽고 '도니 다코'를 찾아볼수도 있는 봉팔러들의 몫으로 넘기고 싶다.
입구는 무성하나 비상구가 없는 묻지마 성 판타지물을 좋아하지 않고 지금도 그렇다. 10년 쯤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몇해전 KBS에서 방영이 되었을 때도 그렇게 치부했었다. 종말론,음모론,말세론이 뒤범벅된 일종의 호기어린 젊은 연출가의 장난극 정도로만 기억하던 '도니 다코' 의 진면목은 영화를 다시 꺼내본 오늘에야 뒤늦게 확인되었다. 과정에 대한 평가는 자유지만 수준에 대한 인식은 내가 틀렸고 거만했다. 핀트 자체는 달라도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외계인과 맞섰던 한국형 SF공상물 '지구를 지켜라' 가 저조한 흥행수치를 쉽게 인정하기 힘든 너무도 훌륭한 실패작이었다면, 미국엔 그에 버금가는 도니 다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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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