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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시골 하고도 군소재지였던 까닭인지 제법 의젓한 극장 하나 콕 있었다. 어려서는 예술이 참 궁해서, 동네 짝패와 영화종영에 임박해서 극장 안으로 무단침투를 일삼아야 했다. 시시테레비나 프리즘 같은 건 꿈도 못 꿨던 때라, 우린 상영시간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비상침투로 개발에 더 투철할 수 있었다. 종종 간판쟁이 잘그리지 아저씨나 시다바리 형에게 붙잡히곤 했지만, 화장실 청소 쯤이야. 어쨌든 모멸감을 쏟아받는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냇가에서 회전점프 다이빙 한 방 날릴 수 있으면 또 그만이었다. 그 무렵 우리 둘 사이 가열찼던 논점은 매우 고상한 것이었다. 키쓰냐 뽀뽀냐 그것이 문제였다. 빼꼼한 하늘만 간신히 보이는 첩첩산중이라 그런지, 논문교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우리는 나름 착실한 결론을 내고 다시 홀가분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뽀뽀는 조선의 것, 키스는 서양영화와 함께 수입된 것.
제주는 또다른 첩첩해중이었다. 빙 둘러 물 천지에 한라산만 빠곰했다. 저 아래 바닷가 가까운 쪽 절벽 위엔, 호텔이라도 서 있으면 더 멋있어 보였다. 그 밑엔 좁은 모래톱으로 겨우 체면치레 하던 해수욕장도 물론 있었다. 파도소리에 볼륨을 맞추고 일렁이는 달빛싸이키 조명 아래 블루스를 추는 게, 그 바닷가의 유행이었다. 때로 따분하거나 파라솔값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날이면, 뒷길 유동근ㅡ황신혜 벤치를 넘어 호텔바까지 진출도 했었다. 전두환 패거리가 호텔을 몽땅 빌려 휴가를 보내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토꼈다는 둥,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도 해 봤다는 둥 자자했지만, 그 호텔바에서 반주노래 불러 주던 새신부가 참 기억에 남는다. 옆에 서 있던 새신랑도 왠지 신부만큼, 그 노래를 잘 부를 것 같았다.
일요일 밤엔 호텔 로비 옆 홀에서 신혼부부들을 위한 여흥이 주로 있었다. 천사들은 게임에 웃음소리에 옆사람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지, 동네양아치인 우리를 편안하게 대했다. 경품을 받는 짝들은 그 댓가로 키스를 강요당하곤 했다. "키쓰해! 키쓰해!" 여기저기서 아우성인 척 했고, 우리도 조금씩 거들었다. 그런데 키스하는 남자들은 눈을 감는데, 여자들은 대개 동그랗게 치켜 뜨고 있었다. 꽤 놀란 표정들이었다.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는지, 남자가 감을 때 여자가 감을 때 설왕설래했지만, 사실 그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눈으로 말해요부터 바디랭귀지까지, 내 기억 속 영화배우들의 대화기법은 참으로 다양했었다, 향수의 힘을 빌려 연인의 코에 속삭이려는 여우들. 목소리를 귀로 달콤하게 보내주고 나서, 뻘쭘해진 남우들의 심장을날롬 들키게 하고 마는 감독들. 어쨌든 키스에 밀려난 뽀뽀가 내내 아쉬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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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