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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다 떨어진 도시 주변머리나 시골뜨기 도시나기 중 구시가지 아닌 담에야 육교 만나기가 참 정겨울 지경이다. 그런 주변은 대개 육교 세멘은 세멘대로 패이고 육교 아래 흙길은 각자 꼴리는 모양대로 울퉁불퉁했다. 그러니 육교 아랫길에서 자전거 타는 재미는 아주 그만이었다. 육교 위엔 그 바닥만큼 패인 주름에 돋보기 하나 걸친 점쟁이 할배 한 명 정도는 꼭 앉아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평생을 잊지 못할 정도로 고마운 일만 저지르고 떠난 사람들도 있고, 잠시 스쳐지지만 두고두고 아른케 할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래서 육교를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 점쟁이 할배를 만나기 전까진 자꾸 물웅덩이라도 돌아보곤 하는 것이 여러 봄날의 습관이 되곤 했다.
그런가. 김윤아의 봄이 오면을 처음 들었던 곳은 올초 바로 여기 연예방에서였다. 항상 옛버릇대로 거리에서 우연히 이 노래라도 들을라치면 처음 곡을 소개해준 그 사람을 또 떠올리곤 하였다. 육교옆에 물웅덩이라도 만날 때면 그 옆에 쭈구리고 앉아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그자의 모습이 또 떠오르듯이. 그 때도 봄날 어느 무렵이었다. 나도 봄 너도 봄 우리 모두가 온통 봄날이었나 보다. 비온 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반짝하는 날이었다. 던지기께나 잘 한다고 소문이 났는지 구로인지 영등포인지도 모를 곳에서 플래카드행진에 스카웃된 바로 그날이었다. 그때도 술끼는 여전히 강북우파였던지라 이미 스카웃비를 막걸리로 대신 챙겨먹은 다음날에야 겨우 끌려갔음은 물론이다. 지금에야 가스통할배들이나 용역들의 불콰낯짝을 이해해줄 인간이라도 있으리까마. 외국취재진들도 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난 수줍어 뒷줄에 대충 뭉개고 있었지만 술냄시 난다는 오해를 함께 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자꾸 떠밀려 가야 했다. 안 끌려가려고 나름 엄청 용 쓰는 표정이 선배들에겐 꽤나 대견스럽게 각색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팔힘이 약해 앞쪽 돌출 위치에서나마 돌던지는 시늉 딱 한번 했던 놈을 용자로 치켜세우던 팔푼이들의 업보였다. 아쉬운건 플래카드에 얼굴이 파묻혀 해외토픽에선 탈락했다는 점이다. 어차피 해외라고 해봐야 왜구들 땅. 쩝.
영화촬영이 끝나고 우린 뿔뿔이 어디론가 귀가 내지는 밀린 일들을 하러 가는 모양새였다. 울퉁불퉁한 사람길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자가 나를 부른다. 항상 반복적으로 들어 왔던 말. "저기요" "..." "얼굴에 그렇게 칠을 묻히고 다니면 검문에 걸리기 쉬워요. 카메라 없는 쪽에서 지키고 있다고들 했어요" 아! 플래카드 페인트칠. 마침 아기자기한 육교 옆에 자그마한 물웅덩이가 보였다. 그때는 물웅덩이쯤이야 흔하고 흔해 빠진 것이었다. 난 그 작은 웅덩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작은 연못에 얼굴을 비추어 보니 붉은 페인트칠이 아직도 불콰한 얼굴 여기저기로 난사 중이었다. 그 인디언 얼굴 너머로 파아란 하늘 뭉게구름이 여기저기로 보였다. 고향앞 시냇물처럼 웃동아랫동 작은 연못들도 아직은 맑디 맑기만한 하시절이긴 했다. 내 옆에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찬찬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자처럼 그 연못처럼 이웃내기들 역시 하얀도화지였을 때였으니까. 시를 쓰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편한 시절이라고들 했다. 동네 가수들은 악상이 덩달아 잘 떠오르기도 했지만 스폰지같은 소비자들이 우후죽순 천지였었대나. 정치인 나부랭이들에겐 말 그대로 땅 짚고 게헤엄이나 치던 호시절이기도 했고. 친일족속들이 세탁소를 차려 호황하던 시절이기도 했을 정도니까. 내 손이 담가지자 그 작은 연못은 이내 물결을 치며 서서히 흙탕물을 피워 올렸다. "여기요" 그자는 하얀 손수건을 햇빛 속으로 내밀었다. 연꽃 무늬와 함께.
그자는 한눈에 봐도 촌놈이었다. 촌놈일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도회지나 향교 출신을 막론하고 어중띠기 천지여서인지 시골의 품격이래야 비교할 곳 없어진 골동품 신세로 이미 떨어지긴 했다. 시골 앞마당 빨랫줄에 하얗게 널려 있곤 했을 그 손수건은 그 봄날의 하늘과 바람과 햇빛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조심해 가세요" 한마디 인사와 함께. 나도 무슨 작별인사를 했었는지 여전히 가물하다. 다만 육교 난간 사이사이로 그자가 입고 있던 청바지 색깔 하늘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는 것만 기억해 냈을 뿐.
지난 겨울의 차갑기만한 바닥에서 겨우 일어났음직한 이곳의 몇몇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것 같은 봄날을 재촉이나 하듯 헛헛한 어거지를 부리곤 했다. 그 중엔 사람키만한 제비꽃 한송이를 한쪽 사진기에 꽃꽂이 해서 들여논 자도 있었다. 그 봄날 반짝반짝 아우성치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지만 자우림의 작은 봄연못으로 같이 데려가 준 그자가 유난히 더 생각나는 가을이긴 하다.
난나.
어디가 됐든 항상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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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