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전격 訪中 ◆정부와 청와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아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 사실을 놓고 하루 종일 혼선에 시달렸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오보를 내는 해프닝도 빚었다. 북한 고위 인사의 중국 방문 사실이 포착된 20일 오전에만 해도 김정은 부위원장이 방중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날 오후 늦게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욱이 이날 저녁까지도 김 부위원장의 동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첫 소식이 전해진 것은 이날 오전 9시께. 중국 투먼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다리 주변 등 시내 전역에 공안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치면서 이 지역 주민 사이에 북한 고위 인사가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어 북한 측의 특별열차가 다리를 통과하자 중국 소식통과 한국 정부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방중을 기정사실화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 고위 인사의 방중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김정은 부위원장으로 지목한 것은 시기적으로 김 부위원장이 후계구도를 인정받기 위해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민군 창군 60주년인 지난달 25일 이후부터 김 부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의 김정은 부위원장 방중 사실 보도에도 특별히 부인하지 않던 정부는 오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급히 기자실을 찾은 것은 이날 오후 2시. 이 관계자는 "북한 쪽에서 열차가 국경을 넘어간 것은 맞다"면서도 "그 외의 사안은 중국이 발표하거나 중국 언론을 통해 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분위기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정부는 김정일ㆍ김정은 부자의 방중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측으로부터 특별히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며 "특별히 알릴 만한 사실이 있으면 추후에 외교채널을 통해 전달해 올 것"이라고만 했다. 이어 이날 오후 5시께 정부 고위 인사는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에 더 무게가 실린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과 관련한 동향은 정부가 기존에 축적해온 정보와 현지의 상황 변화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이번 해프닝의 경우 현지 동향은 즉각 파악했지만 기존에 갖고 있던 정부 정보의 정확성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재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후계구도를 중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과시하는 것 그리고 북ㆍ중 경제교류 확대, 북한 경제 활성화 등이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김정은의 후계구도 확립에만 집착한 나머지 북한 고위 인사의 중국 방문 소식에 쉽사리 김정은 부위원장 방중으로 단정 짓게 된 것이다.
북한 동향을 파악하는 대북 정보망의 부실도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누가 언제 중국으로 넘어갔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외교채널을 통한 상황 파악능력은 이번에도 큰 허점을 드러냈다. 우리 정부는 외신과 현지 소식통에 의존해 북한 고위 인사의 방중 소식을 접했지만 중국 정부로부터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소식을 일절 전달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고위 인사의 동향 파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북한과 중국으로서도 경호와 의전 측면에서 각별히 보안에 신경 쓰고 있는 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진명 기자]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