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남쪽 대북강경책 이어지자 외곽뚫기 전략
북-중경협 상징성 염두둬 동북부 선택한듯 김정일 잦은 중국행 이유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잦은 중국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지난해 8월에 이어 9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5월과 8월 잇달아 중국을 방문했다. 2006년 1월 방중 이후 4년이 넘도록 뜸하던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 중국을 찾은 뒤 '제집 드나들듯'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간 북-중간 정상외교 관례를 보면, 1년 사이 3차례의 중국행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그만큼 김 위원장이 북-중 관계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노쇠한 김 위원장이 갈수록 중국밖에 믿을 데가 없고, 그래도 '중국 카드'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남쪽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식량조사단이 다음주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미 관계도 움직이고 있지만, 유독 남북관계만 꿈쩍 않고 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외곽을 뚫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잦은 방중은 이런 상황 돌파를 위한 카드가 사실상 북-중 관계로 제약된 현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굳이 중국 동북부 지역 방문을 선택한 것은 이 지역이 갖는 북-중 협력 강화, 특히 경제협력의 상징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지난해 8월 정상회담에서 북-중 경협 강화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창춘과 지린, 투먼을 잇는 '창지투' 지역과 나진·선봉(나선) 지역의 연계 개발 방안이 두 나라 사이에 논의되었고, 최근 본격 실행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훈춘-나선을 잇는 도로 착공식이 이달 말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 등 양국 고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고, 북-중 교역의 핵심 통로인 신의주-단둥을 잇는 신압록강 대교도 이달 초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북-중 경협의 성과들이 구체화하는 시기에 방중한 것에 주목한다"며 "북한이 북-중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는 북-중 경협 강화 제스처를 통해 꽉 막힌 남북경협의 숨통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나진·선봉 지역, 신의주 황금평 지역의 북-중 협력 모델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보임으로써 남쪽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경협 말고도 살길이 있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시기는 공교롭게 한·중·일 정상회담 기간(21~22일)과 겹친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에도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경우 북-중 정상회담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여하는 정상회담을 견제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병수 선임기자,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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