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일요일은 지인과 같이 일구는 텃밭을 찾았다. 몇 주 전에 안주거리 하려고 수박 참외 딸기 등등을 심어놓고 이번엔 깨를 좀 심었다. 농사일을 해 본적이 없어서 경계해 있는 텃밭 주인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뭘 심을까 정한다. 깨는 생각보다 쪼그려서 일을 해야하는 탓에 땡볕에 힘이 몇 배로 들었던 거 같다. 울적한 마음을 강도 높은 노동으로 보상 받으려고 했는데 강도는 세지 않았고 그냥 단순노동이 됐던거 같다.
대충 일을 마무리 해놓고 얼기설기 지어놓은 원두막에 자리잡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했다. 한 잔 두 잔이 통음으로 이어졌고 결국 인사불성으로 집에와 쓰러져 잤는가보다. 같이 밭을 일구는 지인은 정치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라 나의 넋두리와 눈물범벅이 짜증날 만도 했으련만 끝까지 참고 자리를 같이 해줘서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월요일.
봉팔리에 왔더니 평소보다 조금은 썰렁했다. 모두들 내 마음과 비슷하구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다 버릇처럼 트윗을 열어봤다. 님의 추모식 소식이 주를 이루었고 님을 그리워하는 메시지가 강물처럼 타임라인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식상한 글귀에 적응될만도 하련만....물론 그 와중에 트윗에 기생하고 있는 꼴통들의 금수만도 못한 글들도 있었지만 그 날만큼은 싸우기 싫어 그저 못본척 하고말았다.
이런 얘기들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그만 슬퍼하고 웃자고. 님의 죽음을 미래의 희망으로 삼자고. 그리 말하는 사람들의 속깊은 뜻을 조금은 알 듯도 싶었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가 될 듯도 싶지만 옛날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의 상생론이 생각났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맨날 쌈만 하기만 하면 쥐어 터지는 놈이 먼저 손내밀고 이제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놀자고 하는 꼴이랑 뭐가 달랐단 말인가?
내가 속좁은 놈이라 그런지 내 마음 속의 분노는 아직 사그라 들지 못하고 있다. 님이 떠난 슬픔은 엷어지고 있지만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답답함에 아직도 힘이든다. 그를 떠나야만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한 용서할 수가 없다. 처절하게 응징하고 입에 발린 사과 한마디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내 님이 살아있어 나와 같은 하늘 아래서 호흡하고 있다면 그런 것들도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내 곁에 그는 없다. 어떤 말로도 상쇄가 될 수 없다.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하는 언어의 유희는 거부한다.
시간이 흘러 좋은 세상이 온다면 그것이 마음의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비열한 쥐새끼들의 야비한 사과 한마디는 필요없다. 우리 손으로 님이 원했던 세상을 만들어야한다. 그리고나서 희망이니 웃음이니 떠들 수 있는거다. 아직 쥐뿔도 이루어 놓은게 없으면서 하하호호 하고 있으면 절대 안된다.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