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내기자의 일가족 자살 기사를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오늘처럼 자다가 깨서 새벽에 뒤척이게 되면 꼭 감상에 젖게 된다. 나한테도 저런 일이 있었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엄마가 좀 극성스러웠다. 나는 국민학교 전교 부회장도 했다. 물론 내가 나가고자 한 것 아니다. 엄마가 시키는대로 한 거지.
그러다 97년 외환위기가 왔다. 숨쉬는 것 만큼이나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나는 절대로 어른이 되면 저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사는게 사는게 아닌 삶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가세는 날로 기울어 아버지가 하시던 정밀기계업 공장도 다 넘어갔나 그렇다. 그즈음 엄마는 내게 심심찮게 우리 가족 다 죽는 게 어떻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가난하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좆같은 사실을 알기에 당시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술에 곤죽이 된 아버지가 깨워 나와 세 살 어린 여동생은(그녀는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거실로 나갔다. 차가운 표정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앞에 검은 비닐 봉다리.
아버지는 우리 가족 다 죽자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검은 봉지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어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버지의 손을 밀쳤다. 뭔가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일까. 나는 후에 그 약이 그라목손이라 불리는 제초제임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그 약을 한 모금 삼켰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고.
아버지는 기괴스러운 녹색 혓바닥을 쭉 내밀고 토악질을 하였다. 엄마가 나랑 같이 등을 두드렸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그 무심한 표정, 아니. 차가운 표정? 모르겠다. 그렇게 지옥같은 그 밤이 지났다.
다음 날 학교를 다녀와서 아버지와 나는 거실에서 티비를 봤다. 기아팀의 프로농구 경기였나? 각방을 쓴지 오래 된 부모님이기에 거실에 누워 있던 엄마는 자는 줄로만 알았다.
뭔가 이상했는지 아버지가 나에게 엄마한테 가서 냄새를 좀 맡아보라 하셨다. 어제 약을 먹어서 아버지는 냄새가 안 맡아진다며. 나는 아무 의심없이 엄마에게 가 말을 걸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지만 맡는 순간 농약 냄새임을 알 수 있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빠. 엄마한테 약 냄새나. 뭐?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당황하며 울며 흐느끼는 걸 처음 보았다. 119 이런 것도 부를 경황이 없이, 가까운 곳에 사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가 엄마를 안고 계속 울었다.
다음 날 나와 동생은 둘이서 일어나 학교를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특하네. 아무튼 학교는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 일과를 보내고, 집에와서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그러다 고모가 집에 전화를 하셨다. 우는 목소리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택시를 타고 간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일반 병실에서 앉아 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친척들의 악다구니. 내게 사실대로 있었던 일을 말해보라며 울부짖는 고모,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엄마. 정말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던 아버지...
엄마와 아버지가 먹은 약이 종류가 다르다고 하더라. 아빠는 그라목손인가 하는 그 약을, 엄마는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보다 훨씬 덜 독한 약을 먹었다더라. 이 사실적 차이에서 우리 친가 친척들은 심각한 의심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나도 좀 이상하기는 하다.
아무튼 큰엄마가 나를 잡고 말하길, "현아. 니 아버지 죽는단다. 니가 큰아들이니까 맘에 준비를 해라. 니 아버지 니 엄마년 때문에 죽는단다. 우짜노 현아." 병원에서 아버지의 상태를 상당히 힘든 쪽으로 봤다고 한다. 그걸 우리 큰엄마는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
그래도 기적이란 게 있는 것일까. 아버지는 극적으로 회복되셨고 현재도 큰 휴유증없이 나와 같은 집에서 살고 계신다. 엄마는? 몸은 위세척 후 계속 괜찮으셨고 그 사건 이후로 나하고도, 동생하고도, 아버지하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사라진 후, 우리집 전세 계약서를 가지고(대체 이걸 왜 가지고 가셨을까 ㅡ ㅡ), 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아버지가 아직 입원해 있을 때, 할머니랑 나랑 동생이랑 큰엄마랑 우리집에 있었는데 엄마가 왔었다. 짐을 가지러. 할머니가 노발대발하신 것은 당연하고, 큰엄마도 얼른 챙겨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엄마도 그러려고 온 것 같았고. 지금 내게 이질감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랜만에 본 엄마가 너무 어색했다는 것. 친척들이 내게 엄마는 나쁜년이라고 하도 세뇌시켜서 그런가?
솔직히 지금도 엄마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외가집이 어딘지도 다 기억나고, 엄마가 울산에 있다더라는 어떤 소문도 듣기는 했다. 그런데 15년 정도 세월이 지났어도 엄마를 찾는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천하에 후레자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언젠가는 찾아야겠지. 함께 살진 못해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뭐,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릴 땐 편부가정이라는 것이 무지하게 부끄럽고 쪽팔렸는데, 씨바 그거 내 잘못은 아니잖아.
이 빌어먹을 기억에 대해 세 가지 사족을 달고 글을 맺는다.
하나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집에 엄마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엄마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잘 안들리는데요?" 어설프게 들리지 않는 척 연기를 작렬. 엄마는 분명히 내가 전화를 피한다고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대체 왜 엄마 전화를 받기가 무서웠을까? 지금도 왜 엄마 얼굴을 볼 자신이 없는 것일까?
다른 하나는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왠 승용차 한 대가 내 뒤에서 나를 서서히 지나쳐 가는 느낌이 들었다. 길 가로 비켜서는데 차가 지나가는 순간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따라오다 지나간 그 차는 엄마가 타고 다니던 크레도스 7121(번호판) 승용차였다. 엄마가 나를 보러 왔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팔린 차가 우연히 나와 마주했던 것일까?
마지막 하나는 큰엄마와 의사에게 아버지가 죽을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매일 밤 자기 전 울며불며 하느님 부처님을 애타게 찾으며 빌었었다. "우리 아버지 살려주시면 내가 평생을 엄마 없는 자식으로 살겠다"고 빌었다. 약발이 먹힌 걸까? 의사와 가족들도 거의 포기했던 아버지의 상태가 극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기적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부부싸움을 하던 때 부터 나는 왠지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아빠를 따라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동생이 따라간다고 할 거니까 나까지 엄마 따라간다고 하면 아빠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좆같지만 웃기게도 내 동생과 얘기해보니 동생도 나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우리에게 해주셨고 지금도 해주신다. (지금도 술 드시고 오시면 28살의 나를 왕자라고 부르신다. 나는 고3 졸업때까지 아침에 등교할 때 아버지 볼에 항상 뽀뽀를 해드렸다. 그래서 다른 집도 다 그러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우리한테 이상하게 했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레테의 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월의 강이 엄마와 나를 너무 멀리 떨어뜨려 둔 것은 아닌가 싶다. 보고싶은 생각도,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현재로서는 들지 않는 걸 보니...
음... 쓰고보니 아침부터 좆같은 소리 싸질러서 미안하다. 이제 씻고 출근해야겠다. 즐거운 주말들 되자... ^^
후.... 인간의 마음은 강일까요...아니면 굽이 굽이 산일까요... 슬픔도 노여움도 아픔도 서러움도...그리고 기쁨도 희망도 행복도 ...다 아우르면서 가는 강은 따뜻해 보이고...산은 푸르름이 돗보이나 그 돗보임속에는 깊은 검은 심연이 사무쳐 있고.....인간은 정말 사랑할만한것이지요...그러니 창조자도 만들고 나서 .....참 좋았더라~ 하셨다잖아요. ^^ 노근님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이유를 배웁니다.
주제넘는 소리면 어쩌나 걱정인데,
노기자가 겪은 상처가 난 걱정이 아니다.
그 정도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고 다들 극복하고 살고 있다.
그 정도를 얕게 본다는 게 아니다.
그 정도 깊이의 상처 가진 사람들, 주변에 수두룩 빽빽하다.
정말 깊은 상처의 아픔이 많은 세상이고 그거 안고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노기자도 마찬가지로 잘 극복하며 살아온 거로 보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노기자가 안은 그 상처가 내 마음도 아프게 하나 걱정은 아니다.
정말 내 걱정은
노기자가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는 죄의식이다.
가질 필요도 이유도 없는 죄의식인데도 불구하고,
유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고 트위터에 밝힌 노기자는
효사상에 의거한 엄마에 대한 찐한 죄의식을 가진 것같다...
사족으로 달아놓은 노기자의 무의식 발로인 듯한 것들이 모두 그러하다.
문제는 스스로도 그 죄의식을 풀 길이 없고 방도도 없고 풀고 싶지도 않다는 데 있다.
걱정된다는 거는 그 죄의식이 스스로를 학대하는 게 아니라
-극이성적 존재인 노기자가 스스로를 학대할 사람도 아니라고 본다-
난데없이 엉뚱한 방향의 행동으로 죄의식 스스로의 존재를 분출시킬 때가 있다는 거다.
좋은 색시감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단점만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그런 행동 하지 말아야 할 때 그런 행동 하게 만드는
내적 무의식이 제어 안될 때가 있지 않던가?
그리고 그런 내가 싫어서 아무 행동 안하고 얼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죄의식을 순치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제안하고 싶은 거는
색시감을 볼 때 색시를 보지말고 장모감을 잘 봐라.
그렇게 색시와의 관계가 잘돼서,
그 이후에 그분께 어머니께 못한 거 다 해드려라.
그분께 울고 불고 하기도 하고, 그분께 고마워하고 죄송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그 죄의식이 치유됐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
참한 딸 두신 봉팔러들,
노기자에게 딸 소개시켜서,
사위감 아닌 아들감에 눈독들여보시길...
노기자 좋은 사람이다...
풀고 살아오지 못한 찐한 엄마에 대한 사랑도 받게 될 거다...
그렇게 노기자의 아픔을 품어주고 풀어주는 사람이 돼주셨으면 좋겠다...
다 써놓고
올려도 되나 돼먹지 못한 댓글 아닌가
올릴까 말까 20분여 고민하다가
그냥 올린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