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가을 아침, 교복 입은 학생들로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앞문을 열어젖힌 남자로 인해 한순간 조용해졌다. "됐어." 인사를 하려던 노근반장은 담임의 매몰찬 말에 일어서다 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물론 여기서 기죽을 안경잡이 노근이 아니다. 할말은 기어코 하고마는 간댕이 부은 사나이다. "봉팔샘, 시리우스리가 아직 등교 안했는데요." "시리우스는 컴맹이다." 또한 한 카리스마하는 반장인지라 생뚱맞은 담임의 답에 당황할리도 만무하다. "연락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시리우스는 컴맹이다." "아, 네......" 이쯤되면 반장도 눈치챈다. 봉팔샘이 아침에 쾌변의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였음을. 그래서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담임은 언제나 그렇듯 "끝"이라는 말만 남겨둔 채 홀연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첫 수업은 30분 후에 시작된다. 몇 명의 아이들이 반장 주위로 모여들었다. "담임 차별 심하지 않냐? 전학 간 데니크레인이 지각했을 때는 바뀐 번호 모른다며 우리한테 막 난리치고 그랬잖아." "아스라이 니가 봉팔샘과 데니 사이의 끈끈함을 잘 모르는구나." 숨겨둔 딸자식이 있을 것 같은, 극강의 노안인 졸라늬우스의 잰척에 펭귄을 닮은 아스라이는 심통이 났다. 그러나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노근을 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둘이 친척이야?" "그런 쉬운 관계가 아니야. 지난해,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담임의 국어시간이었지. 그 고요의 늪속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난 데니가 봉팔샘한테 소리치며 약속하였다. 무플의 어둠속에서 혼자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데니는 무플방지위원회의 VIP회원이지." 졸라의 놀라운 답에 이어, 언제나마음만의 믿기지 않는 폭로에 아스라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용횟수를 따지지 않는, 온갖 혜택이 난무하는 무방위의 VIP라니. 항공과 호텔이용시 90%할인. 유흥업소방문비, 아파트관리비, 식비가 80%할인. 교통비, 영화비, 도서구입비가 전액무료라는 비아피. 아스라이는 데니와 친해두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그리고 재채기로 튀어나간 큰 침덩어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순수는 휴지를 든 채 아스라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한편, 교실 뒤쪽 창가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속에서 콧김을 뿜어내며 성질을 내고 있는 밥풀이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싹쓸이 할 판이었다니까?! 피박에 광박에 뽀고였다고, 뽀고!! 납딱콩 너같으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린 동생놈을 가만히 두겠어, 안두겠어?? 돌려차기로 이빨 좀 뽑았기로서니 엄니가 나를 굶겼다는게 말이 돼, 안돼?! 부모가 그래선 안 돼지! 구래 안구래??!!" "으응, 속상하겠네." 납딱콩의 머릿속은 초록색의 긴 파마머리를 한 게임속의 배불뚝이를 요절낼 생각으로 가득찬 상태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이런 납딱콩의 무성의한 태도에 성격 급한 밥풀이 여지없이 따지려는 찰나, "밥풀, 힘!" 텍사스물 원샷한 팔할이바람이 이를 간파하고선 소리쳤다. 친우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살신성인의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팔할이 니는 말이야, 빠워만 외쳐대지 말고, 간식을 내놓아야 할끼야, 알것제?" "그래, 그래. 알았어." 팔할이 애정어린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하자, 밥풀의 흉흉하던 기세가 한풀 꺾였고, 주위는 평온을 되찾았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 블레이드는 넉넉치 않은 팔할의 용돈과 밥풀의 무궁무진한 식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후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가격이 세지 않은 "한번 먹어봐, 주전부리" 사이트에 들어가 이것저것 꼼꼼하게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반면, 밥풀의 소동을 지켜보던 착한 체리자는 문득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귀여운 칼키에게 말하였다. "생일 선물로 토끼를 받았는데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야." "울집 강쥐도 그랬는데, 며칠 나랑 겸상하며 밥을 먹고 나니까 좋아졌어." 칼키는 짝꿍으로써 의무를 다하듯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야, 코피 퐝!"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뒤돌아 본 체리자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지만, 불량상승 공상두는 게의치 않았다. "맞잖아. 너 3학년 유시민 선배만 보면 몸둘바를 몰라 코피 뿜어내잖아. 빈혈은 안 일으키나? 니 최고기록이 하루에 코피 7번이라며?" "첫시간이 냉이샘의 수학인데 숙제 다했나?" "어?" 숙제에 당황한 공상두를 뒤로하고 체리자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때마침 중원을 평정한 명교의 교주라는 수식이 붙은 냉교주, 냉이선생이 교실로 들어섰다. "야동만 사랑하지 말고 유따라 들어봐라. 매주 월요일 오후 4시에 방송한다. 니들의 뼈를 키우고 살을 붙이는 유익한 라디오프로다." 탁자 앞에 서자마자 밑도 끝도 없는 소리로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냉이선생은 책을 펴다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였었다. "수업시작 전에 된장이 전해주라더군. 봉팔러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 것은 머리 나쁜 자신의 탓이라고." 뜬금없기로는 봉팔샘이나 냉이샘이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익숙한 듯 수업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시대의 소명의식을 갖춘 뽕빠리반의 아이들은 2012년에 치뤄질 전국적인 시험에 대비하여 오늘도 희망찬 공부에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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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