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난나
눈이 오네요. 당신 발끝에도 이미 하얀 세상이 되어가고 있겠죠.. 아침이면 그대가 게으른 잠에서 깨어나 그 하얀 세상에 첫 발을 디디는 상상을 해 봐요. 겨울은 그저 추운바람만이 황량한 계절만은 아니라고 눈이 증명하는 걸까요? 아님 얼어붙은 도로를 걱정하지 않고, 아직은 첫눈에도 아이같이 좋아할 당신의 순결한 감성이 혹한의 겨울, 그 가운데 따스한 난로를 고이 숨기고 있는 계절이라 말하는 건지도 몰라요.
세삼스런 세월이라고 말할때가 많았어요. 설레임이란 것도 녹녹치 못한 삶속에서 시나브로 사그러드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당신을 알기 전까지... 열린 책처럼 그동안 많은 타인들이 맘속에 들어오고 나갔지만, 당신처럼 진한 자취를 내 비루한 책안에 깊게 새겨 놓은 이가 있었을까요. 그래요. 당신이 남긴 체취가 오롯이 내게 새겨져 있어요. 당신은 눈치 채지 못하셨겠지만... 그대의 잘못은 아니니 걱정같은건 하지 마세요.
언젠가 겨울바다를 보러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 보여주고 싶은 곳이죠. 마음이 흔들리는 겨울바다. 그곳에 눈이오는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따뜻하게 체온으로 데어논 저의 주머니에 당신의 손을 넣고 겨울 바다를 함께 보는 상상을 했어요. 당신의 허락을 받지 않는 저만의 상상이지만, 언젠가는 그리 이루어질 거라는 무책임한 낙관이 들어요. 그 낙관이 드는 까닭이 무엇인지 저도 잘 알 수는 없네요. 그것이 단지 저의 강렬한 바램에 기인한 것이라도 그런 꿈을 꾸는 저를 너무 원망하시거나 나무라지는 마세요.
노트를 만들려고 해요. 시간과 기억이 기록된 노트가 될 거예요. 그대의 시간과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간들을 노트에 사진과 글들로 채워 나가는 거죠. 우리만의 시간이 온전히 기록된 작은 역사책. 매일 일어난 작은 일상들과 저의 눈길이 머물고간 풍경들을 고스란히 남겨서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제가 바람처럼 떠났던 곳들이 기록될 거예요. 곳곳마다 당신을 새기고 담아서 노트는 풍성하게 채워지는 상상. 아니 상상이 아닌 진짜라는 현실.
당신이 전에 말한 것들이 생각나네요. 그것들이 시처럼 제게 남겨져 있어요. 일상의 일들을 하는 내내 당신의 시를 저는 노래처럼 흥얼 거리곤 해요.
내 눈길이 가서 닿는 곳..
내 발길이 디뎌지는 곳...
내 마음이 머무는 곳....
다 기쁘게 살아나는 것 같구..
당신의 운율이 그대로 베어 있는 詩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마음이 아련해지고 따뜻해지는 당신의 詩. 저는 그게 좋아요.
오늘은 오랫동안 거리를 걸었어요. 서울이란 도시가 종종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은 당신을 생각하며 걸어가니 이 곳도 따뜻한 곳인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요. 그대라는 공간에 내가 들어 간 것 같은 착각. 당신 시의 운율에 맞춰 걸음을 걷어 보곤 혼자 쑥스런 웃음을 지어요. 그런 하루가 벌써 지나가고 있네요.
편지를 쓰는 동안, 어느새 어둠이 내려 앉아 있네요. 다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될때쯤엔 저는 아마 바다라는 공간에 머물며 편지를 쓰게 될 것 같아요. 그곳은 섬이고 따뜻한 남쪽의 어느 곳이랍니다. 그때까지 겨울은 지지 않고 계속 될 것이고, 더 많은 눈도 내릴테고, 얼음이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겠죠. 우리가 알고 있는 변화들이 다른 형태로 다른 마음으로 당신에게 깃들어 가기를 빌어요. 그저 세월이란 이름의 시간이 아닌 사랑의 시간이 당신의 시간안에 머물고 채워지길 바래요. 추운계절이 가고 봄이 오면 당신에게 정식으로 테이트 신청도 할 생각이예요.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는 때가 오면 나의 물음에도 당신이 답을 해 주시길 바라며 이만 줄일께요.
안녕, 난나.
PS : 제가 믿는 모든것들에 기도하고 있어요. 또 편지 남길께요. 그럼...
From 게으른망명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1-12-22 01:39:56 바보생활에서 이동 됨]
 게으른망명 기자로부터 카테고리 견인비 1,000뽕이 삭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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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
이렇게 공개적인 연애편지를...
잠깐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바다 갔다가 왔슴..
게망 주머니에 손 넣을까말까도 망설이고..
근데 견인뽕 어쩌냐.. 연애는 돈이 많이 드는구나.. 아니, 뽕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