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한 세월 보낸 지 어언 몇 십 해던가. 부처님 귀마냥 하염없이 늘어터진 귀볼 탓인지, 마눌 복은 타고나서 평생을 한량처럼 살아온 바위씨. 따지고 보면 가족생계를 꾸려가는 데 그의 노력은 물만 묻히다 말았다 할까.
우짜든 바위씨 인생은 순탄항로였으니.... 비록 마눌 덕에 살아온 세월이라도, 기세등등 꼿꼿 대마왕인 그 성질머리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도시생활을 해보니 소리만 지른다고 자리가 보존되지는 않더라. 하여, 어느 날부터는 슬금슬금 며느리 손주 아들 딸 마눌 눈치까지 보느라 뒷골이 땡기고, 노인정에라도 나가보면 무슨 학벌들은 그리 하늘 높은 줄만 아는지... 평생 학교반장과 동네반장 밖에 못해본 바위씨로서는 기죽고 팔짝 뛸 일이었다.
핑계 김에 늘어나는 건, 술이요, 버럭 대는 성질밖에 없었으니 가족들의 고민과 바위씨의 뒤틀린 심사는 평행선을 이어갔다.
6년 넘도록 괴팍한 성질만 부리다간 뒷방 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어느 날 들었던지, 바위씨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어 살길을 도모하였다. 집안에 있는 칼이란 칼은 일년에 네다섯 번씩 잘 갈아놔야 만이 직성이 풀리는 그는, 그 일만은 빠트리지 않고 그야말로 칼같이 해내고 뿌듯해했었다.
그런데 그 일이 며느리와 마나님이 합세한 성당모임 이웃들에게 소문이 나버렸고, 하나둘 부탁을 해왔다. 일명 칼갈이로 유명해진 거다.
지난해 여름 양지동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는 바위씨 집 문턱이 동네 아주머니들 치맛자락에 닳을 지경이었다. 처음엔 내가 뭐 칼갈인가?..... 췟 하고 자존심 세웠지만 선물까지 사다 안기자, 그만 약해지고 말았다.
“당신 칼 잘 간다고 오늘도 루시아형님이 칼 두 자루 부턱하던디... 잘 갈아줘요.”
“아, 바쁜디... 당신 형님부탁이니 특별히 들어주지, 거기 둬. 내가 확실하게 갈아줄 텐께.”
바위씨가 누군가. 손 놓으면 한량인데, 마음먹으면 무섭게 집중하는 완벽주의자이다. 칼을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장소와 햇빛, 그날의 컨디션 등을 꼼꼼히 따져서 칼을 갈아본다. 그늘에서 간 뒤엔 햇빛아래 쨍하게 반짝이는 그 날선 푸름을 확인하곤 득의만만한 웃음을 짓기까지 한다.
“됐어, 바로 이 거야!”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