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딸이 지금 초딩 4학년이다.
아빠를 닮아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타고난 출중한 미모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어서 걱정을 안하는데 애가 좀 고지식하다고 할까 하여간 요즘 애들 같지 않고 좀 쑥맥이다.
맞벌이를 하는데 어려서부터 우리 엄아 즉 할머니가 딸아이를 돌봐주시는데 아침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려오며 키운 게 벌써 10년이다.
1학년땐가 2학년땐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외근 나갔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나서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해서 딸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우리 친가는 단독주택인데 대문은 몇 년 전에 주차장 만드느라 헐어버려서 없고 현관 들어가면 바로 집이다. 보통 사람이 집에 있으면 현관문을 잘 잠그지 않는데 그 날따라 현관 문이 잠긴거다.
현관 문을 두드렸더니 아무 반응이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나 "엄마 집에 안 계세요? 문이 잠겼네?"
엄마 "잠깐 볼 일 보러 나왔는데 바로 들어갈거야. 집에 애 있으니까 문 열어 달라고 해"
다시 현관 문을 좀 세게 두드린다.(벨이 없다.) 그제서야 안에서 인기척이 나며 우리 딸 아이가 나온다. 현관 문에 작은 창이 있어서 누군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 "XX아. 아빠야. 문 열어줘"
딸 "아빠! 어...아빠 왔어"
하고는 머뭇거리며 문을 열어 줄 생각을 안한다.
나 "XX아. 아빠라고. 빨리 문 열어줘"
딸 "어...아빠. 알았어"
하면서도 계속 문을 안 열어준다.
나 "XX아. 아빠야. 왜 문 안열어. 너 문 열 줄 몰라?"
딸 "어...아빠. 열 줄 알아. 그런데 잠깐만..."
하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감감 무소속이다. 이렇게 잠깐 있는데 엄마가 돌아오셨다.
엄마 "왜 안들어가고 여기 서 있어?"
나 "XX이가 문을 안 열어줘서. 얘 문 열 줄 모르나?"
엄마 "아닌데. 열 줄 알텐데."
하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 갔다.
딸 "아빠..." 하며 안긴다.
나 "XX아. 아까 왜 문 안 열었어. 문 열 줄 몰라?"
딸 "그게 아니고..." 하며 얼버무린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말...잠깐 볼 일 보러 나가시면서 딸아이 한테 신신당부를 하셨단다.
할머니 말고는 누군한테도 문 열어 주면 안된다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우리의 융통성 없는 딸아이는 그래서 지 아빠한테도 문을 안 열어준거다. 이명박 부류의 인간들이 판 치는 험난한 세상에서 이렇게 고지식해서 어디...
이 일로 나는 우리 집안 술 자리에서 딸한테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와 동급 취급받는 아빠라고 안주거리로 계속 씹히고 있다.
조금은 어리숙한 우리 딸 아이 행동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애들까지 점점 영악해지는 각박한 세상에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이뻐보인다. 가끔 그 때 일을 딸 아이한테 하면 지도 멋적은지 그냥 웃는다.
적립해 놓은 뽀뽀가 40번 남았는데 오늘 저녁에 10개 써야겠다.
|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