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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흔해빠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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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여울목
날짜 : 2011-11-03 (목) 20:43
조회 : 5290
추천 : 26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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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목 기자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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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을 알았던 시절.
흐리고, 시원한 오후에는 오뎅 국물이 생각났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저녁 자율학습 시간 사이에 몰래 학교를 빠져 나와서 먹는 오뎅은 최고였다. 신발이라도 운동화로 갈아 신고 도망 나왔다면, 걸려도 덜 혼났을 텐데, 그 때는 왜 꼭 실내화 슬리퍼 차림으로 학교를 빠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스스로를 이해 못할 일들이 그 뿐이겠냐 만은, 추적거리는 아스팔트 거리를 뛰어 다녔었다. 부슬비 내리는 거리를, 슬리퍼 차림으로 걷는다면 양말이 죄다 젖을 테니...
아마, 그때부터 난 이미 술을 좋아할 조짐이 보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날씨에는 따끈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간절히 그립다. 칼칼하게 목을 자극하는 국물에, 시원하게 식도를 쓸어 내리는 술이 생각난다.
흔해 빠진 이야기.
매번 찾던 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서 오뎅을 먹으려고 하는데,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 두 명이 먼저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둘 다 가방을 메고 있지 않은 걸로 봐서, 나처럼 잠시 땡땡이를 친 것 같았다. 혹시 아는 애들인가 해서 슬쩍 봤는데, 한 명의 얼굴이 너무 하얗고,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예뻤다. 아니, 망치로 뒤통수를 때린 것 만큼? 모르겠다. 날씨가 우중충하니, 이래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예쁜 아이는 예쁜 것이고, 난 오뎅을 먹으러 왔기에 슬쩍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니, 자리가 비좁아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오뎅을 집어들 고 보니, 두 여자애 건너에 놓인 간장종지가 너무 멀었다. 여자애들 가슴 앞으로 오뎅을 뻗어서 간장 종지에 찍어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어차피 오뎅 국물에 약간의 양념이 되어 있을 테니, 그냥 먹어볼 요량으로 오뎅을 한입 베어 물었으나, 역시 조금 부족했다. 역시 밍밍해서 간장이 필요했다. 분식집 아줌마가 떠준 오뎅 국물을 홀짝거리는 데, 간장종지를 향한 내 시선이 간절해 보였는지, 얼굴 하얀 여자애가 간장종지를 주 욱 밀어서 내 앞 쪽으로 옮겨줬다.
"요게 필요하지?"
"어.. 응 고맙습니다"
"으이잌? '고맙습니다'래~ '고맙습니다'가 뭐니? 우리도 1학년이야. 여기 가슴에 베지 안보이니?"
'내가 너희들 가슴을 어떻게 보겠니...' 라고 대답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가슴에 달린 명찰에 이름도 정확히 못 봤다. 물론 얼핏 뺏지를 봤고, 반말을 하는 게 당연했는데, 실수였다. 그 시절에는 당당하게 여학우들의 가슴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게 어려웠다. 멍청했거나, 순진했던 것 같다. 얼핏 이민~ 뭐 인 것 같은데, 이름을 정확히 못 봤다. 생각해보니, 가슴 쪽으로 시선을 옮기긴 한 것 같다.
"넌 몇 반 이니? 어... 아. 너 편집부 구나? 우리 반 에도 편집부 있는데, 선미가 우리 반이야"
"어...5반"
"뭐야, 너 오뎅 먹으려고 혼자 땡땡이 친 거야? 웃긴다 너"
"그게..."
"여럿이 땡땡이 치면 선생님한테 걸릴까 봐 그런 거야?"
"그렇지..."
"나랑 얘는 거의 맨날 저녁에 여기 와서 떡볶이 먹는다? 그런데, 우리 걸린 적 거의 없어"
"어..."
"그런데, 너 좀 말이 없구나. 참. 너네 반에 종훈이가 반장이지? 학생회에서 봤는데"
"응"
"어, 늦었다. 우린 먼저 올라갈게"
"어"
나도 늦겠다. 내일도 땡땡이를 치란 말이구나. 분식집 아줌마가 날 보고 아주 자지러지게 웃으신다. 뭐가 그렇게 웃기신지 모르겠다. 폭풍같이 지나간 두 여자애가 먹은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내가 먹은 오뎅 값을 지불하려는데, 돈이 모자랐다. 분식집 아줌마는 괜찮으니, 다음에 주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도 같이 웃어 드렸다. 아줌마가 더 웃는다.
학교에 올라와서 반장을 찾았다. 종훈이 이 녀석. 나보고 땡땡이 좀 그만 치라고 한다. 더 이상 땡땡이를 치면 선생님께 말씀 드릴 수 밖에 없다고 협박을 한다. 지난번에 가져다 바친 빵과 우유는 벌써 잊혀져 버렸나 보다. 권력과의 돈독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약간의 투자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내일 점심때 라면이나 같이 먹자고 하니, 이번 달 교지가 잘 나왔다고 딴 이야기를 한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서 나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야 너 이민~ 이라고 아냐?"
"누구? 아.. 이민경? 알지. 걔 예쁘지?"
"어... 그래 뭐.. 좀."
"오오... 그런데, 어쩌냐? 너 두 줄 서야겠다"
"응?"
"야. 걔 좋다는 애가 우리 반에서 만 네 가 5번째야. 줄 서야지. 넌 뭐든 그렇게 항상 늦냐? 땡땡이 칠 때 만 빠르지?"
"..."
"...?"
"내일 라면 먹고 후식으로는, 메로나 가 좋겠지?"
"아이... 자식이... 다음 주말에 민경이랑 약속 잡아서 우리 같이 노래방이라도 갈까?"
"노래방 비용은 내가 마련해 볼게"
"에이~ 그건 반씩 부담해야지 임마. 우리가 돈이 어디 있냐~"
일단, 내일. 오늘 지불하지 못한 떡볶이에 오뎅 값이랑, 내일 라면에 메로나 까지 사려면 새로운 문제집이 한 권 정도 필요 할 것 같다. 아직 1학년인데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죄송해요.
다음날.
종훈이 녀석에게 라면과 메로나를 먹이고, 저녁에 또 땡땡이를 쳤다. 순진하게도 민경이가 분식집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경이는 없었고, 분식집 아줌마는 어제 그 애들한테 돈을 받을 테니, 내게는 돈을 안받으시겠다고 하시는걸 억지로 드렸다.
오늘 따라 오뎅이 별로 맛없는 것 같아서 한 개 만 먹었다. 분식집 아줌마는 단골이라며 한 개 값은 안받으신다고 하셨다. 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소각장에 들러야겠다. 고3 선배들이 요즘 쓰던 교과서를 많이 버리는데, 그 중에 양질의 메모가 잘된 교과서들이 있었다. 어떤 선배들의 교과서는 웬만한 학습지 보다 내용이 알찼다. 괜찮은 게 있기를 바라면서 소각장으로 향하는데.
소각장 한 쪽 구석 등나무 뒤에서 종훈이와 민경이가 나오다, 나와 마주쳤다. 둘이 뭘 했는지, 민경이의 그 하얀 얼굴이 새 빨게 져서는 학교로 뛰어 올라갔다.
남겨진 반장을 팼다.
끝.
(내 이야기 아닌 펌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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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여울목
날짜 : 2011-11-03 (목) 20:43
조회 : 5290
추천 : 26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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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