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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전 딸아이 뒷좌석 카시트에 태우고 다니던 시절에 주부 동호회에 올렸던 글이다. )
남편에게 있는 구박 없는 구박 받아가며 익힌 운전솜씨로 두 주 전에 지리산을
뛰었다. 물론 남편의 잔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거제도의 커브길과 오르막
내리막길도 장난이 아니었는지,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빗길운전까지 해낼 수 있었다. "오! 신이시여! 제가 정말로 해냈단 말입니까?".........
자신감이 붙어 간이 커지니,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통영까지는 마중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천 공항에서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리무진 버스로 한 시간정도 걸리니, 남편이 출발하고 10분후 출발하면 대충 시간이 맞는다.
지독하게 길눈이 어두운 나는 처음 가는 길은 물론이고, 두세번 가는 곳도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은 물어물어 몇 번 헤메고 다니는 사람. 하지만 들락날락 수백번도 더 지나다닌 통영 시외버스 터미날을 설마 못 찾으까보냐? 오늘은 기필코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나 하산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옥포에서 출발하여 고현을 지나, 거제대교를 처음으로 혼자 넘어보니,별 것도 아니다. 후후....
좁은 도로를 한참 지나고 나니, 미화당 백화점으로 통하는 신호대가 나온다. 남편이 누누히 일러준대로 우회전하고,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만 하면 된다. 쉽
다..... 그런데,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하려고 보니,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곳이다. 직진해서 가려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마침 근처에서 아저씨 한 분이 일하고 계시길래 통영 시외버스터미날이 어디냐고
하니, 지나쳤다며, 저기 보이는 곳이라고 하시는거다. 적당히 가다가 죄회전 신호에서 유턴해서 그 이상한 갈림길로 들어섰다. 분명히 수백번 지나던 그 길모양이 아니지만, 이 길로 가다보면 만나지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분명 시내가 아닌 산길로 계속 들어가는거다. 아니다 싶어서 약간의 갓길이 보이는 위치에서 차를 돌려 나가려고 하였는데, 길이 좁아 한번에 차가 돌지를 않는다. 후진을 한 번 해야겠다. 후진을 해서 돌아
나오려는 순간 바퀴 하나가 빠지는 소리가 난다. 내려 보니, 땅이 푹 꺼져 있는 공사 현장이다. 바로 곁에 차를 돌리기 좋은 샛길이 나를 조롱하는 듯 잘 포장되어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머니가 구경하고 있다. "도와 주세요"를 외치며 이리저리
둘러보아 큼직한 돌을 몇 개 괴고 있는데 아저씨 둘이 다가온다.
차를 이용해서 끌어야 한다는 둥 견인차를 불러야 한다는 둥 겁을 잔뜩 주더니
한 번 시동을 걸어보라 하면서 밀어 주는데, 단번에 성공, 몇 번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하고는 되돌려 나왔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또 죽었구나 하며 허겁지겁 빠져 나와서는 다시 마산쪽으로
나와버렸다. 반대편에서 줄줄이 시외버스가 오는데, 대구-통영간이라는 글자가 보이는거다. 어쨌든 저 차들만 따라가면 되는거다. 다시 좌회전신호에서 유턴해서 부지런히 따라가니, 눈에 익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펼쳐진다.
한 30여분을 기다린 남편 머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난다.(지리산에서 그가 내게
써먹은 표현임)
"빨리 여기로 들어가, 빨리, 더, 더, 빨리 돌려, 보고, 보고, 얼른 나가, 깜빡이 넣고, 밟아! (경사가 급한 언덕길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사고라도 당했나 싶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며 얼마나 퍼부어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늘 실수 투성이인 나는 일을 저지른 후에는 재미있는 경험이다 싶은 생각도 들고, 빨리 해결하는 일이 급하니, 흥분을 잘 하지 않는데, 남편은 그런 배짱이 부족해서 늘 내게 골탕을 먹고, 속을 끓인다. 지나쳐 가다가 되돌아왔다니,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꼬불꼬불 산길이 이어지다가 나타나는 시가지를 , 그것도 늘상 다니던 길을 어떻
게 지나칠 수 있느냐는거다. 오다보니 미화당가는 신호대를 지나 바로 가까이에 있는 갈림길인데, 못 보고 지나친거다. 그 신호대를 못 본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니, 도데체 어떻게 여길 지나친거냐고 끈질기게 추궁해대는 그에게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 게다가 마침 어둑어둑해져서 전조등을 켰는데, 상향이 들어가 버리니 이 남자 기절초풍 직전이다. "상향 들어갔쟎아, 손조작도 제대로 못하고, 계기판도 못보고 무슨 운전을 하겠다는 거야?" "어휴! 하산하려 했더니, 아직 멀었네" "하산이고 뭐고 아직까지 계기판도 못 보면 어떻게 해? "
아파트 앞에 올 때까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회식이 있다며, 집앞에 내려버린다. 명지랑 주섬주섬 저녁을 때우고 나니, 피로가 밀려드는데, 엄마가 누워서 눈감는
꼴을 못 보는 명지는 연신 물 달라, 손수건 달라, 일어나라, 성화다. 그럭저럭 재우고 눈 좀 붙이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맥주 몇병 사들고는 웃으며
들어온다. 또다시 일장연설을 듣고, 기분을 풀었는데, 회식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모두들 지난 번 지리산에서 당한 일에 대한 복수였을 거라고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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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