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씨의 첫 상경은 서울에 있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마나님과 함께 배를 타고 버스에 하루 종일 시달려가며 올라 온 것으로 십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누구보다도 눈치 빠르고 새로운 환경 적응을 잘하는 그로서는 속도 빠른 도심 속에 늘 버벅대는 마나님의 어리숙함이 우습기만 하고 왠지 으스대고 싶어지는데…….
어느 날 바위씨는 서울에 오면 외국인까지 꼭 들러야 한다는 남대문시장 구경을 하려고 마나님과 딸을 대동하여 길을 나섰고,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가장 빠른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잘 모르니 네가 시범을 보여봐라."
바위씨는 딸이 행동하는 것을 따라하며 지하철 타기에 성공했다. 무미건조한 도시인들의 이런 저런 모습과 지하철 내에 다닥다닥 붙은 여러 광고들을 쉴 새없이 바라보더니 드디어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뿌리야, 대체 저것들이 뭐냐? 볼 것 많아 좋네, 요지경 속이구만."
남 신경 안 쓰는 바위씨의 큰 목청과 사투리까지 섞인 말투는 고요한 지하철 내부의 정적을 일순간 깨버리고 승객들이 오히려 당황한 모습으로 쳐다보지만, 아랑곳 않은 대범한 바위씨.
난처해진 딸이 조용히 해야한다고 아무리 만류해도, 한술 더 떠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읽어보고 두드려보기까지 한다. 나름 탐문연구 중이라 바쁜 우리의 바위씨.
드디어 남대문시장 역에 지하철이 도착했고, 새로운 것에 대해 알아 가는 재미를 느낀 바위씨는 기분이 우쭐해졌고 아직도 멈칫거리고 서투른 마나님을 지켜보며 '역시, 여자들은 늦다니까, 별거 아닌데..' 하며 성큼성큼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너무 자만했던가, 바위씨에게 쥐구멍 찾을 일이 벌어졌으니…….
들어갈 때 자연스럽게 촌티 안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옆줄 딸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따라 해본다. 하지만 아뿔사! 그만, 뒷사람이 넣은 지하철 정액권을 자기 것인 냥 빼어들고 보무도 당당히 걸어가 버렸으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바위씨의 황당한 돌출행동에 마나님과 딸은 그저 말릴 생각도 못하고 뒤에서 깔깔깔 웃기 바쁘고, 난데없이 정액권을 강탈당한 40대 남자는 바위씨 뒤를 부랴부랴 쫓아갔다.
"아, 아저씨, 저 아저씨! 그 표는 제 거예요. 아니, 왜 남의 표를 가져가요?"
처음엔 어림없는 소리라는 듯이 험악한 표정을 보이던 바위씨는 뒤이어 따라온 딸의 손짓을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알아차린 것.
그러나 우리의 바위씨는 마나님과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똥줄 탄 듯 허겁지겁 다가서는 그 남자에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적선하듯 지하철 표를 슬쩍 던져 줘버리고는 잰 걸음으로 남대문시장을 향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위씨 얼굴은 이미 민망함에 벌겋게 물들어버렸고, 마나님과 딸이 배꼽을 쥐며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찝찝하게 덜미를 잡아댔다.
"우하하하~ 우하하하~ 아이고 배야! 엄마 저 당당한 자세 좀 봐바! 나 죽어~!"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