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더니 ... 엄니는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고, 아부지는 벽에 기대 텔레비전 보고 계신다 .... “엄니, 왜 그려? 왜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어? ... ” “내가 느 아부지 땀시 못살겄다 ... 아이고, 호랭이가 칵 물어갈 양반! ... ” 아부지가 호랭이에게 물려가야 할 이유는 이렇다. 요 몇 년 사이 아부지가 수술을 두 번이나 해서 엄니 딴에 서방님 몸 생각해서 보약을 지어줄라고 ... 한 달 전부터 엄니가 나를 기사로 부릴라고 새끼쥴을 맞췄는데 ... 막상 와보니 ... 아부지가 한의원에 안가겠다고 뻗대고 계신거다. 엄니는 옷까지 다 차려입었는데 ... 엄니가 전에 몇 번 “이참에 한약 지으러 갑시다 ... ” 그렇게 말했을때 아부지는 마치 갈 것처럼 가타부타 말이 없었단다. 엄니는 한편으론 요상하다 싶으면서도 별 말이 없으니 가는 걸로 철썩 같이 믿으셨다. 요상하다고 생각하신 건, 원래 아부지가 밖에서 외식도 잘 안하시고 쓸데없는 데 돈 쓰시는 걸 원체 싫어하시기 때문에 ...
아무튼 두 양반이 내가 오기 전에 한바탕 전투를 치른 모양이다. 아부지는 ‘보약 안묵어’ 신공으로 엄니 입을 댓발이나 나오게 했고 엄니는 ‘내가 못살어’ 신공으로 아부지를 벽에 거세게 몰아부쳤다. 현재 두 양반은 1라운드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 ... 두 분이 가끔씩 아웅다웅 다투시는 건 뭐 늘 있는 일이고 ... 기왕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 그것도 부모님 냉전 중에 ... 두 양반에게 상대방을 설득 할 수 있는 발언기회를 한차례씩 드렸다 ... 뭐 당연히 말꼬리 잡기가 이어지고 ... 엄니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시고 ... 아부지는 벽에 기대 텔레비전을 보시고 ... 한의원에 가시자고 살살 꼬드겼으나 ... 아부지는 ... 요지부동! ... “ ... 안갈란다 ...” “ ... 엄니한테 바가지 긁히고 사실라요? ... 아니면 편하게 사실라요? ... ” “ ... 쓸데없이 뭔 한약을 묵어 ... 다 늙어가꼬 ... ” “ ... 그람 어디 가까운데 바람이라도 쐬러 가십시다 ... 엄니 옷까지 다 차려 입었는디 ... “ 평소 같았으면 “느그들끼리 가라”며 콧방귀도 안뀌셨을텐데 ... 한참 후에 ... ... 말없이 양말을 신으신다. 마누라가 당신 생각해서 추진한 일을 브레이크를 걸었으니 ... 찔리셨겠지. 엄니야 밖에 나가기를 좋아하시는 양반이라 ... 무조건 O.K! 마침 시간이 난 큰 누이까지 합류해서 일단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 30여분 거리에 있는 포충사로 차를 몰았다. ... 엄니는 배가 부르자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큰누이에게 ‘보약’을 거절한 아부지의 죄상을 미주알고주알 씹는다. 아부지는 아무소리 못하고 ...
포충사 ...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고경명 사당에 도착 ...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브라보콘 2개. 붕어싸만코 2개 ... 향을 피웠다 ... 엄니는 의병장 초상화 앞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거룩하게 한 번 때리시고, 아부지는 사당 현판 한문글자에 대해 아는 체를 한 번 하시고 ...
사당 건물이야 뭐 볼 것도 없고 ... 사당 옆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풍경이 괜찮다. 만약 날좋고 꽃까지 피어있으면 ... 아부지는 혼자 성큼성큼 언덕배기를 올라가시고 ... 같이 가자는 말에 “오냐” 그래놓고 또 성큼성큼 앞서가신다. 바람이 생각보다 차다. ... 배롱나무가 있었던가? ... 꽃이 피었을 때 왔으면 기억했을텐데 ... 앙상한 가지만 보고 가서 그런지 기억이 없다.
“엄니 ... 근육이 막 뒤틀린 것 같은 요 나무가 ... 배롱나무요” “근다냐? ... 근디 뭔 나무가 류마치스 관절염 걸린 것처럼 생겼다냐 ... 느 아부지 맹키로 성질 고약하게 생겼다이 ... 껍딱도 할딱 벳겨져불고 ... 오메, 춥겄다야 ...” 배롱나무를 아부지에 빗대 살짝 한 번 찍는 울 엄니의 뒤끝작렬! 추워서 아이스크림은 못 먹고 내려왔다. 언덕을 내려오면 오른편에 연못이 있다. 날이 따뜻할 때는 애들이 물고기 밥도 주고 그러는데 ... 한산하다. 물고기들을 보자마자 ... 엄니 왈 ... “오메 ... 매운탕 해묵으믄 좋겄네 ... 근디 저 빨간 물괴기 ... 잉어냐? ... 쩌것은 색깔이 그래서 매운탕은 못해묵겄다 ... ”
물고기들이 우리 일행이 가는 쪽으로 따라온다 ... 공원비둘기처럼 먹이 던져주기를 기다리는 걸까? ... 사람이 별로 없어 반가워서 따라오는 것일까? ... 게눈 감추듯 후딱 한바퀴 돌고 차에 올라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행히 많이 녹지는 않았다. 그렇게 변변찮은 나들이나마 하고 나니 ... 아이스크림이 녹듯 ... 그렇게 ... ... 두 분 다툼의 앙금도 ... 시나브로 ... 녹았다 ... 엄니 왈 ... “아이고 ... 서방이랑 자주 싸워야 쓰겄다 ... 그래야 아들놈 차타고 바람도 쐬고, 맛난 것도 묵으러 다니제 ...”
| 
)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