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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산 - 장재인
비가 오면 생각난다 ... 그때 그 사람 ...
오래전, 길을 걷다가 ...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우산도 없고 ...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신발은 빗물이 들어가 찔꺽거리고 몸은 젖어서 으실으실 떨렸다.
... 뒤쪽에서 버럭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리꺼져, 이 미친년아 ... 재수없게 ... 씨발 ”
돌아보니 아저씨가 웬 여자한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여자는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두리번거리며 대합실 안을 돌아다녔다.
꽃무늬 치마에 윗도리는 두툼하게 몇 벌 겹쳐 입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쓰레빠를 질질 끌고 뚤레뚤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여자는 내쪽으로 다가와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제 왔어? ...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데 ...”
그러더니 앞에 쭈그려 앉아 ...
“나 좀 데려가 ... 내가 잘못했어 ... ”
아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며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저씨를 쳐다보자 자기는 이 여자랑 아무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몇 번 저었다. 여자는 아저씨의 손을 잡더니 ...
“사랑해 ... 여보 ... 제발 나 좀 데려가 ... 응 ... ”
아저씨는 뻘쭘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여자는 멀어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바로 그 아저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 주변에 있던 몇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더니 옷을 탁탁 털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순간, 자리를 뜰까 ... 생각하다가 ... 타이밍을 놓쳤다 ... 타이밍을 놓치니 일어서는 게 더 어색해서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눌러 앉아 있었다.
여자는 멍하니 앞을 쳐다보며 들릴듯 말듯 노래를 흥얼거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 흩날리더라~”
언제쯤 일어설까 ...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 여자가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제 왔어? ...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데 ...”
고개를 돌리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가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음 ... 뭐라고 하지 ... 말문이 막혔다 ...
그녀가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나 좀 데려가 ... 여보 ... 내가 잘못했어 ... ”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대로 가만있자니 더 뻘쭘했다.
“ ... 그쪽 분 남편이 저랑 많이 닮았나봐요 ...”
잠시 후 그녀의 이빨사이로 꺽꺽대는 울음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 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 ... 용서해주세요 ... 여보 ... 내가 잘못했어 ...”
가만 있기도 어색해서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
“ ... 저기 ... 집이 어디에요? ...”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집? ... 우리 집? ... 몰라 ... 집에 가야하는데 ... 우리 남편이 나 기다리는데 ... 우리 집이 어디지? ... 아들 ... 아들 낳으면 집에 갈 수 있어 ... ”
그녀는 주머니에서 부시럭부시럭 뭘 꺼냈다 ... ‘보름달 빵’ ...
그녀는 빵을 내게 건네주며 ...
“넌 내 남편이야 ... 사랑해 ...”
빵을 받고 엉거주춤 인사를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꽉
껴안았다. ... 어, 뭐냐 이거 ... 대합실에 있던 사람들 시선이 동시에 우리에게 쏠렸다. 게다가 찌든 땀냄새와 불쾌한 냄새에 숨이 턱 막혔다 ... 떼어내자니 ... 빵까지 받고 ... 왠지 미안해서 ... 한참 있다가 ... 조심스럽게 말했다.
“ ... 저 ...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팔을 풀었다.
“... 나 좀 데려가 ... ”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앞을 멍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이 ... 영 ... 남 ... 남자 이름 같지? ... 이.영.남”
“경찰서로 같이 가서 집이 어딘지 찾아볼까요? ... ”
“아니 ... 가기 싫어 ... 집에 가면 나주로 가야해”
나주 ... 국립정신병원이 있는 곳.
도망쳐 나온 것일까? ...
경찰서에 데려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에라 ... 나도 모르겠다 ...
“ ... 빵 잘 먹을께요 ... ”
“ ... 갈거야? ... 그럼, 나도 데려가 ... ”
나는 대합실을 나왔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있었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있는데 ... 누군가 팔짱을 슬며시 끼었다 ... 이영남 ...
“ ... 아직 안 갔어? ... ”
“ ... 비가 더 그치면 ... ”
“ ... 너 내 남편 닮았어 ... ”
그녀는 잠깐 동안 내 팔짱을 끼고 있다가 비척비척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새 한 짝을 잃어버렸는지 쓰레빠 한 짝만 끌고 절룩거리며 ...
그녀가 떠난 후 담배 한 대를 더 피우고 나도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그뒤 어떻게 되었을까? ...
비가 오면 가끔씩 생각난다. 그때 그사람 ... 이영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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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